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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천상병 시 그날은 - 새

by 빗방울이네 2025.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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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병 시인님의 시 '그날은 - 새'를 만납니다.

 

부조리한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지켜낸 자유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시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천상병 시 '그날은 - 새' 읽기

 

그날은

- 새

 

천상병(1930~1993, 일본 출생 창원 성장)

 

이젠 몇 년이었는가

아이론 밑 와이샤스 같이

당한 그날은 ···

 

이젠 몇 년이었는가

무서운 집 뒷창가에 여름 곤충 한 마리

땀 흘리는 나에게 악수를 청한 그날은  ···

 

내 살과 뼈는 알고 있다.

진실과 고통

그 어느 쪽이 강자인가를  ···

 

내 마음 하늘

한편 가에서

새는 소스라치게 날개 편다.

 

▷천상병 시집 「새」(1971년 간행된 시집을 도서출판 '답게'가 1992년 번각해 출판) 중에서

 

2. '아이론 밑 와이샤스 같이 당한 그날'의 이야기

 

천상병 시인님의 시 '그날은 - 새'는 1971년 2월 「월간문학」에 발표된 시입니다.

 

시인님의 첫 시집 「새」에 실려 있습니다.

 

시집 「새」는 천상병 시인님의 친구들이 십시일반 모아서 1971년 발간해 준 시집입니다.

 

행방불명되어 죽은 줄로만 알았던 친구 천상병을 위해서 친구들이 내준 '유고시집'입니다.

 

시 '그날은 - 새'의 발표 연도와 시집의 발표 연도가 같은 1971년입니다.

 

이 말은 이 시가 시인님 행방불명 직전 가장 최근 쓰인 시라는 뜻입니다.

 

이 시를 쓴 직후 사라졌던 것입니다.

 

당시 거리에서 쓰러져 행려병자로 서울시립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었다고 합니다.

 

어쩌다, 왜 거리에서 쓰러져 행려병자 취급을 받았을까요?

 

'이젠 몇 년이었는가 / 아이론 밑 와이샤스 같이 / 당한 그날은 ···'

 

이 시는 1967년 시인님이 '동백림 사건'에 연루 체포되어 약 6개월 간 옥고를 치른 사연을 담고 있습니다.

 

1971년 시가 쓰였으니 5년 전에 자신에게 일어났던, 믿을 수 없는 참혹한 사건을 시에 선연히 기록하고 있네요.

 

그 기록은 너무 아파 차마 읽어나갈 수가 없네요.

 

'아이론 밑 와이샤스 같이 당한 그날'

 

'아이론'은 다리미를 말하는데, 바닥이 판판하고 매끄럽게 된 쇠붙이로 숯불이나 전기로 바닥을 뜨겁게 달구어 '와이샤스' 같은 옷을 다림질을 하는 기구입니다.

 

시인님 자신이 그 뜨거운 '아이론 밑 와이샤스' 같이 당했다고 합니다.

 

자신에게 가해진 고문을 이처럼 짧고 강렬하게 표현한 문장 앞에서 우리도 가슴 한편을 데이는 것만 같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이젠 몇 년이었는가 / 무서운 집 뒷창가에 여름 곤충 한 마리 / 땀 흘리는 나에게 악수를 청한 그날은 ···'

 

'무서운 집'이라고 합니다. 고문을 당한 장소네요.

 

고문으로 까무러쳤다가 눈을 떴을 때 눈앞에 곤충 한 마리가 나타났나 봅니다.

 

시인님은 그날 '무서운 집'에 대한 묘사를 일절 하지 않았네요.

 

고문 기구가 어땠는지, 고문 기술자의 표정이 어땠는지 따위는 언급되지 않았네요.

 

다만 잃었던 정신을 차렸을 때 만난 곤충 한 마리를 소개했네요.

 

사람하고는 교감이 불가능한 공간입니다.

 

도저히 나를 이해시킬 수 없고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시간입니다.

 

그때 만난, 사람이 아닌 곤충 한 마리와의 '악수'는 시인님의 절망의 심연을 고스란히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만 같습니다.

 

시인님은 4연으로 된 이 시에서 말줄임표를 세 번이나 사용하고 있습니다.

 

차마 말하지 못할 때 쓰이는 말줄임표 ···.

 

우리는 시인님이 남긴 산문을 통해 그 말줄임표 안에 든 시인님의 육성을 들어봅니다.

 

다정한 친구로 인해 동백림 사건에 걸려들어 심한 전기 고문을 세 번 받았고,

그로 인해 정신병원에도 갔고, 아이를 낳지 못하는 몸이 되었지만 나는 지금의 좋은 아내를 얻었다.

남들은 내가 술로 인해 몸이 망가졌다고 말하지만 잘 모르는 사람들의 추측일 뿐이다.

▷「천상병 전집 -산문」(평민사), 천상병 시인의 산문 '외할머니 손잡고 걷던 바닷가'(1990년 발표) 중에서

 

천상병 시인님은 산문에서 '정보부'에 끌려가 전기고문을 세 번 받았다고 합니다.

 

그로 인해 정신병원에도 가고 아이마저 낳지 못하는 몸이 되고 말았다고 합니다.

 

왜 고문을 당했을까요? 어떤 죄명이었을까요?

 

북한을 다녀온 친구(강빈구)가 자기(천상병)에게

북한을 갔다 왔다는 얘기를 했는데도

그걸 당국에 고발하지 않은 죄였다고 (천상병은) 밝혔다.

▷「천상병 시선」(박승희 엮음, 지식을만드는지식) 박승희 글 '지은이에 대하여' 중에서.

 

다정한 친구를 고발하지 않은 죄였다고 합니다.

 

시인님이 직접적인 이적 행위를 한 것이 아닌, 다만 친구를 고발하지 않은 죄였다고 합니다.

 

군사정권의 서슬 퍼런 억압의 시간입니다.

"아이론_밑_와이샤스_같이_당한_그날은"-천상병_시_'그날은-새'_중에서.
"아이론 밑 와이샤스 같이 당한 그날은···" - 천상병 시 '그날은-새' 중에서.

 

 

 

3. 진실을 지켜 '마음 하늘'의 자유를 지켰다

 

이 시의 3연을 만납니다.

 

'내 살과 뼈는 알고 있다 / 진실과 고통 / 그 어느 쪽이 강자인가를 ···'

 

시인님은 그 모진 고문 속에서도 결코 타협하지 않았네요.

 

불의에, 거짓에 지지 않았네요.

 

권력을 지키려는 비루한 쪽에 한 발도 다가가지 않았네요.

 

이 3연의 말줄임표 속에 들어있는 문장도 찾아 이어봅니다.

 

죄 없는 나는 몇 차례고 까무러쳤을망정 끝내 살아났다.

지금의 내 다리는 비틀거리며 걸어 다니지만

진실과 허위 중에서 어느 것이 강자인가를 나는 알고 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몸서리쳐진다.

고문을 한 놈을 찾아 죽이고 싶은 심정일 때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겼으니 이것으로 만족한다. 

▷위 책 「천상병 전집 -산문」(평민사) 중에서

 

고통에 못 이겨 불의가 요구하는 대로 만약 거짓 자백이라도 했더라면 시인님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아무 일 없는, 건강하고 편안한 삶을 살았을까요?

 

'내 살과 뼈는 알고 있다'

 

진실을 거짓으로 조작할 수 있는 것이 고문입니다.

 

그러나 시인님은 '내 살과 뼈는 알고 있다'라고 하네요.

 

진실이 무엇인지는 누구보다 내가 잘 알 고 있습니다.

 

그 진실은 무엇으로도 바뀌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진실이 강압에 의해 거짓으로 둔갑하는 일을 시인님은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고문에 굴복하지 않음으로써 시인님은 자유를 얻게 되었네요.

 

평생 거짓의 굴레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의 수레바퀴를 굴려갈 수 있게 되었네요.

 

그래서 시인님은 '나는 이겼으니 이것으로 만족한다'하고 했네요.

 

'내 마음 하늘 / 한편 가에서 / 새는 소스라치게 날개 편다'

 

'소스라치게'라는 말속에는 '깜짝 놀란다'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가만히 있다가 무언가에 놀라 갑자기 '소스라치게 날개'를 펴고 후드득 날아오르는 새가 마지막 4연에 등장했네요.

 

세월이 흐른 후에도 시인님은 '아이론 밑 와이샤스' 같이 당하던 때가 불쑥불쑥 떠올랐겠지요?

 

그 고통이 어찌 잊힐 수 있겠는지요?

 

'새는 소스라치게 날개 편다'

 

그 고문의 시간을 생각하기만 해도 조그만 새가슴이 되어 '소스라치게' 놀라는 시인님의 심정이 느껴지는 구절입니다.

 

그래서 이 시 속의 새의 비상(飛翔)에는 자유로움보다 시인님의 고통이 더 진하게 느껴지네요.

 

그러나 우리 이제 더 이상 시인님의 고통만 말하지 않기로 합니다.

 

'새는 소스라치게 날개 편다'

 

이제 새처럼 자유롭게 하늘을 날고 싶었던 시인님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현실의 억압과 부조리에 지지 않고 저항하며 진실 하나를 지켰던 시인님입니다.

 

그렇게 지킨 진실 하나는 그 뒤 수많은 다른 진실로 이어졌을 것입니다.

 

그랬기에 시인님의 '마음 하늘' 만큼은 자유로 열린 세상 큰 하늘이었을 것 같습니다. 

 

진실이 호도되고 불의가 큰 소리 치는 세상, 시인님은 진실이 강자라고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만 같습니다.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 목욕'에서 천상병 시인님의 시를 더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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