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시인님(1921~1968년, 서울)의 시 4편을 만납니다.
우리에게 지금 맑고 차게 깨어있는 정신이냐고 묻는 시들입니다.
우리에게 지금 눈을 부릅뜨고 있는 정신이냐고 묻는 시들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김수영 시 '풀' 읽기
김수영 시인님의 시 '풀'을 만납니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 김수영 시 '풀' 중에서.
이 시에 나오는 '풀'은 흔히 힘없는 민초(民草)로 읽히곤 합니다.
시는 다양한 창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풀'을 자신의 권력이나 부, 명예를 위해 불의에 굴복하는 사람들로 새겨 시를 만나 봅니다.
이런 사람들은 국가나 국민보다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더 큰 권력('바람')에 복종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풀'은 '바람'에 예속되어 '바람'에 너무나 잘 길들여진 족속들입니다.
시 '풀'은 1968년 발표된 시입니다.
50년도 더 지난 이 시간, 그 시대의 그런 '풀'의 족속들은 지금은 과연 사라졌을까요?
불의와 억압의 시대를 힘겹게 건너가던 시인님입니다.
'바람'에 눕지 않고 당당히 맞서는 푸릇푸릇한 힘을 간절히 원했던 시인님의 마음을 헤아려봅니다.
시 '풀' 해설 전문을 이 글 맨 아래 링크에서 만나 보세요.
2. 김수영 시 '눈' 읽기
김수영 시인님의 시 '눈'을 만납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기침을 하자
- 김수영 시 '눈' 중에서.
'젊은 시인'은 깨어있는 시대 정신의 소유자여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 속의 상황은 그렇지 못한 상태인가 봅니다.
'젊은 시인'은 잔뜩 움츠려 기를 펴지 못하는 상태인가 봅니다.
시대의 부조리와 억압에 눌려 가재미처럼 납작 엎드려 있나 봅니다.
그런 '젊은 시인'에게 '기침을 하자'라고 권유하고 있네요.
그 '젊은 시인'은 시인 자신이기도 할 것입니다.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라는 구절에서 하얀 눈 위에 가슴 속에 맺힌 어떤 뜨거운 것이 울컥 쏟아질 것만 같습니다.
1956년에 쓰인 시입니다.
그 시대의 부조리와 억압, 70년이 다 되어가는 이 시대에는 좀 나아졌을까요?
우리의 시간은 뒷걸음질치고 있지는 않은지요?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라는 구절이 '사람들이여, 기침을 하자!'라고 읽히는 시간입니다.
시 '눈' 해설 전문을 이 글 맨 아래 링크에서 만나 보세요.
3. 김수영 시 '사령(死靈)' 읽기
김수영 시인님의 시 '사령(死靈)'을 만납니다.
그대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우스워라 나의 영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 김수영 시 '사령(死靈)' 중에서
시 제목 '사령(死靈)'은 죽은 사람의 혼을 뜻합니다.
이 시가 발표된 1959년은 독재 권력과 부정부패의 정치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던 시대입니다.
그런 암울한 시대의 절망 속에서 젊은 시인님은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우스워라 나의 영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이런 반성과 참회 속에서 시인님은 스스로 정신을 일으키며 희망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1960년에는 이승만 정권의 독재에 항거해 시민들이 일어선 4·19혁명이 있었습니다.
시 '사령(死靈)'은 그 민중의 뜨거운 에너지가 잉태되던 시간에 나온 시입니다.
'우스워라 나의 영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시인님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 민주화된 오늘의 시대에 돌아와 왜 우리의 가슴을 떨리게 하는 걸까요?
시 '사령(死靈)' 해설 전문을 이 글 맨 아래 링크에서 만나 보세요.
4. 김수영 시 '절망' 읽기
김수영 시인님의 시 '절망'을 만납니다.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 김수영 시 '절망' 중에서
이 시의 '절망'이라는 단어 앞에 '시대의'라는 수식을 넣어 다시 읽어 봅니다.
'시대의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시대의 암울한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시인님은 그런 절망의 속성을 잘 인식해야한다고 우리에게 말하는 것만 같습니다.
시대의 절망을 낳는 세력들의 속성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고 우리에게 말하는 것만 같습니다.
그런 '절망'을 주도하는 주체들이란 얼마나 괴물 같은 존재인지요.
1965년 발표된 시입니다.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는 왜 그런 괴물 같은 '절망'을 아프게 사유해야 하는 걸까요?
왜 '졸렬과 수치'에 떨며 분노하고 불안해 해야하는지요?
희망은 그저 오는 걸까요?
시인님은 이 시에서 절망을 넘어서려는 민중의 뜨거운 힘이 희망을 잉태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만 같습니다.
시 '절망' 해설 전문을 아래 링크에서 만나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