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시인님의 시 '절망'을 만납니다.
시대의 아픔, 그 절망의 속성과 그것을 넘어서는 힘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시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김수영 시 '절망' 읽기
절망
김수영(1921~1968년, 서울)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여름이 여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속도가 속도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졸렬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김수영 시집 「사랑의 변주곡」(창비, 2017년) 중에서.
2.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게 하는 낯선 언어 배치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 김수영 시 '풀' 중에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시 '풀'을 쓴 김수영 시인님의 다른 시 '절망'을 만납니다.
시 '절망'은 1965년 8월 28일 발표된 시라고 시 아래에 표기되어 있네요.
이 시기는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탄생한 군사정부 이후 전개된 시대의 격변기를 살아내던 때였네요.
이 시는 어떤 풍경을 담고 있을까요?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여름이 여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 속도가 속도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졸렬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시 '절망'의 첫인상은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인님에게 묻고만 싶습니다.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다니요?
곰팡이가 곰팡을, 여름이 여름을, 속도가 속도를 반성하지 않다니요?
또, 풍경과 곰팡이와 여름과 속도는 도대체 서로 어떤 연관성이 있단 말인가요?
이렇게 시인님에게 항의하던 우리는 아래의 5행에 이르러 심상치 않은 무언가를 감지하게 됩니다.
'졸렬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졸렬(拙劣)'은 '옹졸하고 천하여 서투르다'는 뜻을, '수치'는 '다른 사람들을 볼 낯이 없거나 스스로 떳떳하지 못함'을 말합니다.
이 5행에서 우리는 지금 시인님이 '졸렬'하고 '수치'스러운 현실에 직면해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졸렬하고 수치스러운 현실, 그렇게 억압된 현실을 도무지 견딜 수 없어하는 시인님의 절망을 느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1~4행에 등장한 '풍경' '곰팡' '여름' '속도' 같은 단어 때문입니다.
서로 아무런 상관성이 없어 보이는 4개의 단어들은 이성을 가진, 즉 스스로 사유하는 능력이 없는 무감(無感)한 사물들입니다.
1~5행은 각각 '~ 것처럼'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풍경 = 곰팡 = 여름 = 속도 = 졸렬 = 수치
시인님은 지금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졸렬'하고 '수치'스럽게 만든 주체(예를 들면 독재 정권)를 스스로 사유할 수 없는, 스스로 돌아볼 수 없는 사물과 등치 시켜 놓았습니다.
그래서 이 '졸렬'과 '수치'가 스스로 반성하고 거기서 벗어나는 일은 단지 어려운 일이 아니라 아예 불가능하다는 느낌이 들게 됩니다.
이 같은 언어의 낯선 배치가 평범한 언어로는 잘 닿을 수 없는 이해의 영역에 우리를 데려다 준 것입니다.
이로써 이 난해한 시를 처음 접하며 당황했던 우리는 지금 시인님이 처한 시대의 어둠이 얼마나 절망스러운 상태인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3. 시대의 어둠, 그 아픈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이 구절들은 무슨 뜻일까요?
이 구절들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앞의 구절과 연결해 읽어봅니다.
'졸렬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이렇게 이어서 읽어보니 '졸렬'과 '수치'가그 자체로 존재하듯이 '바람'이나 '구원'도 존재한다(!)는 의미로 새겨집니다.
그 '바람'이나 '구원'이 오는 방식은 '딴 데'에서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온다고 합니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도 올 것은 온다는 뉘앙스가 느껴지네요.
아무리 힘들어도 희망은 불현듯 생길 수 있다는 느낌 말입니다.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이 마지막 행은 어떤 의미일까요?
앞에서 우리가 만나 보았듯이 이 마지막행의 '절망'도 '풍경'이나 '곰팡'이나 '여름'이나 '속도'나 '졸렬'이나 '수치'와 등가관계에 놓여 있네요.
풍경 = 곰팡 = 여름 = 속도 = 졸렬 = 수치 = 절망
시대의 어둠, 그 아픈 '절망'은 '풍경'이나 '곰팡'이나 '여름'이나 '속도'나 '졸렬'이나 '수치'와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 속성은 바로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라는 점입니다.
그렇게 읽고 나니 암담하고 참담한 '절망'이 느껴집니다.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라고 했으니 시대의 어둠, 그 아픈 '절망'을 어찌해야겠는지요?
앞의 6행과 7행을 다시 읽어봅니다.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이 구절로 보면 언뜻 '바람'과 '구원'은 저절로 오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어떻게 그 소중한 것이 그저 오겠는지요?
'절망'을 넘어설 수 있는 '바람'과 '구원'의 에너지는 언제부터인가 서서히 내부에서 필연적으로 차오르고 있는 중입니다.
그 에너지가 임계점을 넘어서는 순간을 예상할 수는 없지만, 그 순간은 반드시 오게 되어 있는 순간입니다.
여기서 그 에너지는 민중의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되네요.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라는 그 무서운 시대의 '절망'을 넘어설 수 있는 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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