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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김수영 시 사령

by 빗방울이네 2024.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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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시인님의 시 '사령(死靈)'을 만납니다. 현실의 안일을 넘어 자유를 추구하는 삶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시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김수영 시 '사령(死靈)' 읽기

 
사령(死靈)
 
김수영(1921~1968, 서울)
 
······ 활자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나의 영(靈)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벗이여
그대의 말을 고개 숙이고 듣는 것이
그대는 마음에 들지 않겠지
마음에 들지 않아라
 
모두 다 마음에 들지 않아라
이 황혼도 저 돌벽 아래 잡초도
담장의 푸른 페인트빛도
저 고요함도 이 고요함도
 
그대의 정의도 우리들의 섬세도
행동이 죽음에서 나오는
이 욕된 교외에서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마음에 들지 않아라
 
그대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우스워라 나의 영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김수영 시집 「달나라의 장난」(1959년 춘조사 발행, 2018년 민음사 리뉴얼 에디션 2판 2쇄) 중에서.
 

2. 김수영 첫 시집의 첫 시 '사령(死靈)'

 
'풀'의 시인 김수영 시인님은 생전에 단 한 권의 시집을 남겼습니다.
 
제목은 「달나라의 장난」입니다.
 
이 시집이 나온 때는 1959년 11월 25일, 시인님 39세 때입니다.
 
「김수영 전집 1 -시」(민음사)에 따르면, 시집  「달나라의 장난」은 장만영 시인님이 운영했던 춘조사(春潮社)에서 '오늘의 시인 선집' 제1권으로 기획 출간된 것입니다.
 
이 시집은 시인님 사후 50주기를 기념해서 2018년 민음사에 의해 리뉴얼 에디션으로 다시 나왔습니다.
 
다시 나온 시집을 펼쳐보니, 시집의 맨 앞에 첫 번째 시로 오늘 만나는 시 '사령(死靈)'이 실려 있네요.
 
이 시는 어떻게 첫 시로 실리게 되었을까요?
 
시집 맨 뒤쪽에 시인님의 '후기'를 잠깐 읽습니다.
 
이 시집은 1948년부터 1959년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잡지와 신문 등속에 발표되었던 것을 추려 모아 놓은 것이다.
(중략)
목차는 대체로 제작 역순으로 되어 있다.
▷김수영 시집 「달나라의 장난」 중에서.
 
시 '사령(死靈)'은 1959년에 발표된 시입니다.
 
시인님의 '후기'대로 시집의 시 배열 순서는 1948년~1959년 사이 발표된 시의 제작 역순(逆順)이니까 맨 앞에 있는 시 '사령(死靈)'은 가장 최근 쓴 작품이었네요.
 
시인님은 자신의 최신작을 독자에게 가장 먼저 소개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시 '사령(死靈)'으로 들어갑니다.
 
'······ 활자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 자유를 말하는데 / 나의 영(靈)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이 구절의 '활자'는 책 속의 글자를 말하겠네요.
 
말줄임표 '······'는 화자의 시선이 활자를 계속 따라온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동시에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화자의 답답한 사연이 들었을 것도 같고요.
 
'자유를 말하는데'라는 구절에서 화자가 읽고 있는 책에 '자유'에 대한 내용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의 영(靈)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이 구절에 이 시의 제목 '사령(死靈)'이 들어 있네요.
 
'사령(死靈)'은 원래 '죽은 사람의 넋'을 뜻합니다. 화자 스스로 자신의 정신이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라고 추궁하고 있네요.
 
1연에서는 '자유'와 '사령'이 대비되어 있습니다.
 
'벗이여 / 그대의 말을 고개 숙이고 듣는 것이
그대는 마음에 들지 않겠지 / 마음에 들지 않아라'
 
여기서 '벗'이나 '그대'는 활자/책을 말하겠지요?
 
화자가 ’고개를 숙이고‘ 책을 읽고 있습니다. 
 
활자/책이 그런 화자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리가 있겠는지요?
 
'그대는 마음에 들지 않겠지'. 이 구절은 결국 화자 스스로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진술로 읽힙니다.
 
이것은 결국 1연의 '자유'와 연결되겠네요.
 
화자는 '자유'를 읽으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있습니다.
 
세상에 대하여 '고개를 숙이고' 있는 자신을 말입니다.
 
현실에 얽매여서, 삶에 구속되어 보다 큰 '자유'를 실천하지 못하는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말이네요.
 
왜 그럴까요?
 

"나의 영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 김수영 시 '사령' 중에서.

 

 

 

3. '나의 영은 죽어있는 것이 아니냐'라고 묻는 시

 
'모두 다 마음에 들지 않아라 /이 황혼도 저 돌벽 아래 잡초도
담장의 푸른 페인트빛도 / 저 고요함도 이 고요함도'
 
'모두 다 마음에 들지 않아라'. 화자는 2개의 자아와의 심리적인 갈등으로 괴로워합니다.
 
'자유'에 대한 갈망대로 행동하고 싶은 순수한 자아와 이런저런 제약에 묶인 현실적인 자아와의 싸움 말입니다.
 
이 '고요함' 속에는 얼마나 많은 부조리가 꿈틀거리고 있는 현실이겠는지요?
 
병들고 아픈 세상인데 아무도 비명을 지르지 않는 세상, 비명을 지를 용기조차 없이 무기력에 빠져있는 자신이 화자는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대의 정의도 우리들의 섬세도 / 행동이 죽음에서 나오는
이 욕된 교외에서는 /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마음에 들지 않아라'
 
이 시기(1959년)는 반부정(反不正) 반정부(反政府) 항쟁인 4·19 혁명(1960년)의 열기가 축적되어 가던 시간입니다.
 
독재 권력과 부패 정치가 판을 치던 시간이었네요.
 
그런 부정과 비리의 시간과 공간을 살아가는 스스로에 대한 비판은 증폭됩니다.
 
책 속의 정의와 자유, 관념적인 정의와 자유에 공감하면서도 현실에서 그 정의와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실천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우리들의 섬세'. 부정부패의 시대 상황 속에서 화자는 자신이 너무 자신의 일상을 위한 소소한 이익이나 무사안일만을 챙기느라 급급하지 않은지 묻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나 개인이나 가족의 안위보다 인간의 자유와 권리, 사회의 공동선에 대한 책임을 지키는 실천을 위해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시인님은 그 시절 실제로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그는 활화산처럼 터져 나오는 혁명의 열기와 보폭을 같이 하면서
규범적 의미의 시를 부정하고, 시를 넘어서 자유에 이르고자 했다.
▷「김수영 전집 1 -시」(민음사)의 '작가 연보' 중에서.
 
이렇게 시인님은 현실에 대해 부릅뜬 눈으로 깨어 시대의 모순을 뛰어넘고자 했네요.
 
시인님의 시 '눈'이 떠오릅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 김수영 시 '눈' 중에서
 
시 '사령(死靈)'의 마지막 5연을 만납니다.
 
'그대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우스워라 나의 영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화자는 이렇게 현실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바라보고 '나의 영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라고 비판하고 거듭 추궁합니다.
 
그 비판과 추궁은 어쩐지 우리를 향해 있는 것 같기만 합니다.
 
그러면서 화자는 시대의 아픔을 직시하며 그 모순을 뛰어넘을 수 있는 실천적 삶을 살고자 몸부림칩니다.
 
'자유를 말하는데'. 화자는 관념/머리/말 속에 갇힌 자유가 아니라 실천을 부르는 자유를 갈망합니다.
 
'우스워라 나의 영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이 구절 속의 '나의 영'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영'을 들여다보게 하네요.
 
나의 영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이 문장을 읽고나니 불현듯 「그리스인 조르바」 속의 한 문장이 떠오릅니다.
 
시 '사령(死靈)'의 끄트머리에서 그 문장을 함께 읽으며 '나의 영'을 돌아보게 되는 시간입니다.
 
이 인간은 육신과 피로 살아왔다 - 싸우고, 죽이고, 키스하면서 -
내가 혼자서 펜대와 잉크를 통해 배우려고 끙끙대던 그 모든 것들을,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고독하게 하나하나 짚어 가며 풀어 보려고 기를 쓰던 그 모든 문제들을,
이 인간은 칼을 차고 산속 그 신선한 공기 속을 누비면서 다 풀어 버렸다.
▷「그리스인 조르바」(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강이경 옮김, 아름다운날, 2012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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