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귀 가려움으로 오랫동안 고생하다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해결 팁입니다.
귓속이 가려워 애를 먹고 있는 분들, 또는 어떤 종류의 '중독(addiction)'에 빠져 힘들어하는 분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함께 읽으며 귀 가려움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무조건 참아라'라고요?
'긁어 부스럼'이라는 속담은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진리임에 틀림없습니다.
귀 가려움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렵다고 긁어 건드리면 걱정이 생기게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귀 가려움을 해결하는 거의 유일한 팁은 '무조건 참아라'입니다. 시원하게 긁고 싶은 욕망을 누르라는 말입니다.
속 시원한 한방의 해결책을 원하셨겠지만, 안타깝게도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가려운 귓속을 긁지 말고 무조건 참아라'.
이 단순하고도 쉬운, 그러나 실천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방법 밖에 달리 해결책이 없다는 점을, 오랫동안 가려움으로 고생해 온 그대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가려움을 참지 못해 긁고 싶어 환장(이 단어는 가려움의 유혹에 얼마나 적절한지!)할 지경일 때, 참을 수 있는 유용한 한 가지 팁이 있습니다.
무언가를 바쁘게 하는 것입니다. 머리를 감거나 양치질을 하거나 아령을 들거나 설거지를 하거나 밖으로 나가거나! 몸을 움직여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말입니다.
그중 이런 팁도 유용합니다. 브러시로 두피를 긁어라!
머리를 빗는 쿠션 브러시로 천천히 누르며 두피 전체를 긁습니다.
그러는 동안 두피에 닿는 감각에 초집중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귀 가려움이 서서히 가라앉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성동격서(聲東擊西)'라고 할까요? 동쪽에서 소리를 내고 서쪽에서 적을 치는 형국입니다.
스피노자의 문장이 떠오릅니다.
감정은 그것과 반대되는, 그리고 억제되어야 할 그 감정보다
더 강력한 어떤 감정에 의해서가 아니면,
억제될 수도 없고, 제거될 수도 없다.
▷「에티카」(스피노자 지음, 황태연 옮김, 비홍출판사, 2015년) 중에서.
브러시로 두피를 긁는 일이 귀 가려움을 누르는 더 강력한 감정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요, 귀 가려움을 극복하는 일에 이렇게 딱딱한 철학서적의 문장까지 들이대는 것은 이 문제가 예사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브러시로 두피를 긁는 일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귀 가려움, 이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좀 더 깊고 진지한 통찰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2.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려움!
사람들에게 대놓고 하기는, 귀 가려움에 대한 이야기는 좀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
자신의 욕망을 조절하지 못하는 박약한 의지의 소유자, 감각적인 자극에 종속된 허약한 사람이라는 고백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변에 의외로 귀 가려움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은, 정확히 말하면 '귀 가려움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아니라 '귀 가려움의 쾌감에 빠져 있는 사람'입니다.
가려운 부위를 긁으면 쾌감이 생깁니다. 자신도 모르게 이 쾌감에 중독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꾸 긁게 됩니다. 부서럼은 긁으면 그 부위에 상처가 생기게 됩니다.
병원에 가면 되지 않느냐고요?
'한 가려움 하시는 중인 그대'라면 금방 아시겠지요? 병원도 근원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요.
이비인후과에 가면 의사 선생님이 야단치십니다. 그새 가려움을 참지 못하고 그걸 또 긁었느냐고 말입니다.
의사 선생님 앞에 앉으면, 가려움을 참으라는 숙제를 못한 어린아이처럼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
그렇게 자꾸 야단을 맞으면 병원 가기도 민망해집니다.
병원에 가서 해결된다면야 민망함이 문젤까요? 당연히 병원 가야지요.
문제는 병원 치료로 가라앉았던 가려움이라는 적병이 또다시 귓속에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그 적병이 말입니다.
그러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귓구멍을 파고 있는 손가락을 발견하게 됩니다.
한심하기 그지없습니다.
가려움을 긁는 그 쾌감에 눈이 스르르 감기기까지 합니다.
이 녀석은 더 큰 쾌감을 원합니다.
손가락은 귀속으로 점점 더 깊이 들어갑니다.
평상시에는 들어가지 않던 손가락이 좁은 귓구멍을 들락날락거리는 지경이 이릅니다.
손가락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 면봉을 동원합니다.
가느다란 면봉은 귓속 더 깊이 들어갑니다.
면봉은 이제 고막 근처까지 도달합니다.
귓속을 긁어주는 면봉의 현란한 움직임에 육체는 점점 더 강한 쾌감 속에 빠집니다.
그러다가 면봉 솜뭉치가 귓속 깊은 데서 빠지는 바람에 병원에 달려가야 하는 사태에 이릅니다.
그러면 병원 처치와 약으로 치료되었던 귓속은 다시 짓물러 엉망이 되고 진물이 흐르고 통증이 옵니다.
가려움 → 쾌감 → 고통 → 자존감 상실 → 삶의 질 저하! 이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려움'을 어찌해야 할까요?
3. 피가 났는데도 아프지 않다니!
그렇게 면봉이 주는 쾌감에 빠져 살다 보면 어느 날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깁니다.
한참 동안 귓속에서 쾌감의 소용돌이를 선사해 준 면봉을 꺼내는 순간, 면봉에 묻은 붉은 핏자국을 발견하게 됩니다.
맙소사!
이게 어찌 된 일일까요?
그렇게 시원하게 긁었는데 왜 면봉에 피가 묻어 나왔을까요?
피는 상처를 의미합니다. 귓속을 볼 수 없지만, 면봉으로 긁는 바람에 귓속 외이도 피부가 벗겨졌다는 말입니다.
맨살이 벗겨져 피가 날 정도로 긁었다는 말!
이해하기 힘든 일은 그렇게 맨살을 벗길 정도의 긁기 자극에도 맙소사, 쾌감을 느꼈다는 점!
면봉으로 손등을 문질러 피부를 벗겨냈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의 강도인지 짐작할 수 있겠네요.
그런데도 아픔을 느끼지 못하고 쾌감을 느꼈다는 점!
이게 어찌 된 일일까요? 이 희대의 '오류'는 어떻게 작동되는 걸까요?
면봉에 묻은 핏자국이 주는 큰 충격 속에서 곰곰 생각하게 됩니다.
인지작용에 무슨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요?
분명 피가 날 정도로 상처가 났는데 왜 아프지 않고 쾌감이 느껴졌을까요?
가려움 해결 팁은 바로 이 어처구니없는,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상황 속에 숨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4. 무언가에 속고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바로 무언가에 속고 있는 것입니다.
나 자신이 무언가에 속고 있다고요?
피가 나는 통증을 고통이 아니라 쾌감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무엇이 있는 것입니다.
쾌감만 준다면 피가 나도 상관없다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녀석은 무얼까요?
뇌!
바로 나의 뇌입니다.
그렇게 철석같이 믿고 있는 나의 뇌입니다.
뇌가 쾌감에 예속되어 버렸습니다.
쾌감의 정보가 뇌를 장악해 버린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요?
습관과 신념은 뇌 속에 신경회로의 형태로 존재하고
이 회로들은 반복해서 사용할수록 더 견고해진다.
▷「CHANGE」(이승헌 지음, 한문화, 2013년) 중에서.
뇌가 '습관'에 견고하게 고정되어 버렸네요.
가려움이라는 자신의 감각적 충동을 만족시키기 위해 반복적으로 귓속을 긁는 습관에 말입니다.
'반복해서 사용할수록 더 견고해진다'는 문장은 '반복해서 긁을수록 자꾸 더 긁게 된다'는 문장과 같은 말이네요.
긁을 때 느껴지는 쾌감에 뇌가 종속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렇게 믿었던 '나의 뇌'가 어처구니없게도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었네요.
뇌는 바로 나 자신일 텐데, 뇌는 자기 멋대로 쾌감을 추구하고 있었네요.
나 자신도 모르게, 나의 허락도 없이 말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런 나의 뇌가 불쌍하기도 합니다.
주인 잘못 만나, 쾌감에 종속되어 자꾸 그 쾌감을 추구하는 주인을 더 만족시켜 주기 위해, 뇌는 더 큰 쾌감을 추구하고 있었네요.
이런 상황을 곰곰이 생각하니 기이한 느낌이 드네요.
그동안 나와 뇌를 동일시해 오던 인식에서 나와 뇌가 분리되어 있는 듯한 느낌요.
나는 그동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려움'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 가려움에 빠져나오고 싶었습니다(진정으로!).
그러나 그 가려움이 주는 쾌감에서 벗어나지 못해 차일피일 결단을 미루며 게을렀습니다.
그 사이 나의 뇌는 주인이 습관적으로 추구하는 이 쾌감을 너무너무 좋아하는 줄 인식하고 그 정보에 고정되어 버린 것입니다.
자, 그러면 어찌해야 할까요?
뇌! 네가 가는 그 길은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니다!
이렇게 뇌에게 명령해야 합니다. 단호하게요.
이것이 귀 가려움의 궁극적인 해결 팁입니다.
뇌에 끌려다니면 안 됩니다. 뇌의 작용을 내가 주도해야 합니다.
뇌를 주도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뇌를 객관적으로 보아야 하겠네요.
귀 가려움을 긁어 쾌감에 빠지려는 뇌를 야단쳐야 합니다.
네 마음대로 하지 말라, 주인인 나를 따라야 한다고 명료하게 명령해야 합니다.
그런 명령이 습관화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위의 책에서 알 수 있듯, 뇌가 새로운 습관(가려움을 참는 습관)의 정보에 고정화되겠지요?
뇌는 가려움을 긁지 않고 참는 습관에 예속되는 것입니다.
뇌가 가려움을 참는 습관에 굳어지면 가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됩니다.
가려움을 긁지 않고 오래 참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가려움을 오래 참을 수 있게 되면 놀랍게도 가려움이라는 적병은 꼬리를 내리고 슬그머니 사라집니다.
이런 뇌의 작동과정은 흡사 가려움은 약이 아니라 마음으로 치료하는 질병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습니다.
귀 가려움은 피부병이 아니라 정신질환이라고요!
이런 사실을 명료하게 인식하는 것, 드디어 가려움 치료로 가는 지름길로 들어선 것입니다.
이는 비단 귀 가려움 해결 팁만이 아닙니다.
게임(도박), 성적 쾌감, 술, 담배, 약물 같은 크고 작은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기도 할 것입니다.
자, 그렇게 해서 귀 가려움에서 완전히 탈출했을까요?
안타깝게도 '완전히'는 없는 것 같습니다.
고요히 혼자 있을 때 이 복병이 귓속에서 스멀거리며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말합니다.
어이, 가려움 너 왔니? 반가워. 조금만 갉아먹고 가도록 해.
그러면서 긁지 않고 참고 있으면, 가려움이라는 적병이 잠시 주뼛대다 스스로 민망하여 슬그머니 사라집니다.
가려움에는 무관심이 최고의 명약입니다.
모른 체하고 절대 손대지 않으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려움'에서 해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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