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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이형기 시 낙화 읽기

by 빗방울이네 2023.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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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기 시인님의 시 '낙화'를 만납니다. 시인님은 떨어지는 꽃을 보고 어떤 깨달음을 얻었을까요? 우리 함께 시인님이 이루어놓은 통찰의 자양분으로 마음을 씻으며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이형기 시 '낙화' 읽기


낙화(落花)
 
-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 「한국 대표 명시선 100 : 이형기 낙화」(이형기 지음, 만해사상실천선양회 뽑음, 시인생각) 중에서
 
이형기 시인님(1933~2005)은 경남 사천 출신으로 고교 재학 중 17세이던 1950년 「문예」에 '비 오는 날', '코스모스' '강가에서' 등이 추천되어 그 당시 '최연소 등단 기록'으로 시인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서울신문 등 기자를 거쳐 대한일보 정치부장 및 문화부장, 국제신문 논설위원 및 편집국장, 부산산업대학교와 동국대학교 교수 등을 지냈습니다.
첫 시집 「적막강산」을 시작으로 시집  「돌베개의 시」 「꿈꾸는 한발」 「절벽」 「존재하지 않는 나무」 등이, 수필집 「서서 흐르는 강물」 「바람으로 만든 조약돌」 등이, 평론집 「감성의 논리」 「한국문학의 반성」 등이 있습니다.
대한민국문학상, 예술원상, 서울시문화상, 한국문학가협회상, 시인협회상, 한국문학작가상 등을 수상했으며,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하였습니다.


2. 이별은 슬픔이기만 할까요? 


이 시는 1963년 나온 이형기 시인님의 첫 시집 「적막강산」 에 실렸습니다. 시인님이 20대에 쓴 시네요. 시 제목을 '낙화(落花)'라고 해놓고, 꽃이 진다고 해놓고 시의 첫 줄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 이형기 시 '낙화' 중에서

 
이형기 시인님이 빚어놓은 가장 빛나는 시구(詩句)입니다. 현대 시사의 '솟대'같은 시구입니다. 제목 '낙화'에서 '떨어지는 꽃'을 떠올렸던 우리는 시의 첫 구절을 접하고는 불현듯 '떠나는 이'를 떠올립니다. 그래서 '떨어지는 꽃'과 '떠나는 이'의 이미지가 서로 겹치면서 생긴 파문이 우리 내면으로 번져갑니다.
 
그 파문의 근원은 꽃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갖게 되는 보통의 심상이 '슬픔'이나 '안타까움'인데, 이와는 반대로 시인님은 '아름다움'이라고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로 이 같은 심상의 낙폭에 우리는 긴장되어 시를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떨어지는 꽃'과 '떠나는 이', 이 두 가지 모두를 꿰고 있는 것은 자연의 섭리입니다. 꽃이 떨어지지 않으려 버틸 수 없듯이,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떠나는 일'도 자연의 섭리에 따라 이루어진다고 시인님은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 머지않아 열매 맺는 / 가을을 향하여

- 이형기 시 '낙화' 중에서 

 
시인님이 '낙화'에서 '아름다움'을 읽어낸 것은 낙화에 새로운 축복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낙화는 소멸과 쇠락이 아니라 열매를 맺기 위한 필연적인 생명의 과정이라는 것이 시인님의 성찰입니다. 우리네 삶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헤어짐도 성숙과 결실로 가는 길이라고 시인님은 말하고 있네요. 
 
나의 사랑, 나의 결별 /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 내 영혼의 슬픈 눈

- 이형기 시 '낙화' 중에서

 
샘터에는 물이 솟아납니다. 고여있던 물이 나가고 그 자리엔 깊은 곳에서 올라온 맑고 차가운 새 물이 고입니다. 그처럼 결별과 결별을 겪으면서 시의 화자는 성숙해지고 있습니다. 맑고 깊어진 눈이겠네요. 그런 눈은 얼마나 서늘히 슬프겠는지요. 깊은 우물처럼 말입니다. 
 

이형기시낙화중에서
이형기 시 '낙화' 중에서

 

 

3. 이별에 대한 자세를 생각하게 하는 시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 이형기 시 '낙화' 중에서

 
다시 이 시의 첫 구절을 읽어봅니다. 많은 사람들은 시인님의 이 빛나는 통찰에 기대어 솟대 같은 이 시구를 자주 인용합니다. 이별의 자리에서 말입니다. 이 아름다운 시구가 있었기에 우리는 떠나는 일도, 보내는 일도 담담한 마음으로 한 발 떨어져 아름답게 관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크고 작은 이별도, 죽음까지도 말입니다. 그것이 자연의 순리라는 점을 가만히 떠올리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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