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래 변호사님이 쓴 「전태일 평전」 속의 문장을 만납니다. 이런 문장 속엔 얼마나 큰 하늘이 들어있는지요. 그래서 우리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하늘 같은 문장을 온몸으로 맞으며 마음을 맑히며 독서목욕을 합니다.
1. 조영래 변호사의 '전태일 평전' 읽기
사랑하는 친우여, 받아 읽어주게.
친우여, 나를 아는 모든 나여.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
부탁이 있네. 나를,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 주게.
그리고 바라네. 그대들 소중한 추억의 서재에 간직하여 주게.
뇌성 번개가 이 작은 육신을 태우고 꺾어버린다고 해도,
하늘이 나에게만 꺼져 내려온다 해도,
그대 소중한 추억에 간직된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을 걸세.
그리고 만약 또 두려움이 남는다면 나는 나를 영원히 버릴 걸세.
그대들이 아는, 그대 영역의 일부인 나.
그대들의 앉은 좌석에 보이지 않게 참석했네.
미안하네. 용서하게. 테이블 중간에 나의 좌석을 마련하여 주게.
원섭이와 재철이 중간이면 더욱 좋겠네.
좌석을 마련했으면 내 말을 들어주게.
그대들이 아는, 그대들의 전체의 일부인 나.
힘에 겨워 힘에 겨워 굴리다 다 못 굴린,
그리고 또 굴려야 할 덩이를 나의 나인 그대들에게 맡긴 채.
잠시 다니러 간다네. 잠시 쉬러 간다네.
어쩌면 반지의 무게와 총칼의 질타에
구애되지 않을지도 모르는, 않기를 바라는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내 생애 다 못 굴린 덩이를, 덩이를,
목적지까지 굴리려 하네.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또다시 추방당한다 하더라도
굴리는 데, 굴리는 데, 도울 수만 있다면,
이룰 수만 있다면 ···
- 「전태일 평전」(조영래 지음, 아름다운전태일)에 실린 '전태일 유서' 전문
전태일 열사님(1948~1970)은 대구 출신으로 남대문초등학교와 청옥고등공민학교를 다니다 어려운 환경으로 학업을 계속하지 못하고 신문을 팔고 구두를 닦는 일들을 하며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17세이던 1965년 평화시장의 삼일사에 취직, 근로기준법조차 지키지 않는 평화시장의 참혹한 노동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분투했습니다. 그러나 사업주의 횡포와 당국의 멸시만 겪게 되자 22세이던 1970년 분신 항거했습니다.
전태일 열사님의 일대기를 담은 「전태일 평전」 저자인 조영래 변호사님(1947~1990)은 대구 출신으로 사회개혁가이자 인권변호사로 활동했습니다. 유고집 「진실을 영원히 감옥에 가둘 수는 없습니다」 「조영래 변호사 변호 선집」 등이 있습니다. 2020년 민주주의 발전 유공자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습니다.
2. 전태일 열사, 그 최후의 장면을 기억하며
떠올리기엔 너무 아프지만, 전태일 열사가 우리 곁을 떠나기 직전의 마지막 장면, 우리 내내 기억하려고요. 전태일 열사님이 "영원히 나를 잊지 말아 달라"라고 했으니까요.
약 10분 후에 전태일이 근로기준법 책을 가슴에 품고 내려왔다. 전태일이 몇 발자국을 내디뎠을까? 갑자기 전태일의 옷 위로 불길이 확 치솟았다. 불길은 순식간에 전태일의 전신을 휩쌌다. 불타는 몸으로 그는 사람들이 아직 많이 서성거리고 있는 국민은행 앞길로 뛰어나갔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그는 몇 마디의 구호를 짐승의 소리처럼 외치다가 그 자리에 쓰러졌다.
- 「전태일평전」(조영래 지음, 아름다운전태일) 중에서
재단사라는 이름의 청년 노동자이자 노동운동가였던 전태일 열사님. 그는 1970년 11월 13일 서울 평화시장 앞 길거리에서 이렇게 스스로 몸을 불살랐습니다. 저임금으로 혹사당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도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요구'가 있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아, 이 얼마나 참혹한 일인지요?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않는 악덕 기업가를 세상에 고발하여 노동자들의 '사람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 이렇게 자기 몸을 불태워야만 했던 청년이 있어야 했다니요. 근로기준법이 실린 법전과 함께 자기를 불사르며 세상의 불의에 항거하며 외쳤던 말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였습니다. 아, 이 얼마나 억울하고 비통한 일인지요.
3. '우린 모두 연결된 커다란 하나!'
그때 그의 나이 겨우 22세였습니다. 전태일 열사님은 어떤 '생각 줄기'를 가진 분이었을까요? 전태일 열사님의 아주 특별한 면모를 그대에게 전합니다. 「전태일평전」에 소개된, 전태일 열사님의 일기장 곳곳에 등장하는 구절들입니다. 천천히 곱씹으며 읽습니다.
'얼마나 위로해야 할 나의 전체의 일부냐!'(216쪽)
'나의 또 다른 나들이여.'(246쪽)
'친구여 나를 아는 모든 나여.'(267쪽)
- 「전태일평전」(조영래 지음,아름다운전태일) 중에서
나를 전체의 일부로 보고, 타자를 또 다른 나로 보는 이 놀라운 문장들 좀 보셔요. 이는 문장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동원한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전태일 열사님의 확고한 신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우리가 '모두 연결되어 있는 커다란 하나'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랬으므로 멸시당하고 천대받던 동료 노동자를 향해 "얼마나 위로해야 할 나의 전체의 일부냐!"라고 하는 가슴 서늘한 통찰이 나왔을 것입니다.
'나의 전체의 일부'인 봉제공장 누이들을 위해, 열악한 근로환경 속에 내팽개쳐져 있던 불쌍한, 사랑하는 동료들을 위해 기꺼이 몸을 불살랐던 전태일 열사님이 그립습니다.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말입니다. 그렇지만 그의 성찰대로라면, 그는 빗방울이네의 일부이고 빗방울이네는 그의 일부이니까 만난 적이 없다는 말은 사실이 아닌 것만 같습니다. 그대도 마찬가지겠지요. 전태일 열사님의 신념대로라면, 그대도 '나를 아는 모든 나'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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