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목월 시인님의 시 '부활절 아침의 기도'를 듣습니다. '내 귀엔 금강산 옥류동 물소리인 듯 쪽빛으로 흐르며 구르는 목월 선생의 음성'(이근배 시인)으로 들려주시는 기도입니다. 함께 읽으며 기도하며 마음을 씻으며 독서목욕을 해보십시다.
1. 박목월 시 '부활절 아침의 기도' 읽기
부활절 아침의 기도
- 박목월
주여
저에게
이름을 주옵소서.
당신의
부르심을 입어
저도 무엇이 되고 싶습니다.
주여
주여
주여
태어나기 전의
이 혼돈과 어둠의 세계에서
새로운 탄생의
빛을 보게 하시고
진실로 혼매한 심령에
눈동자를 베풀어 주십시오.
'나'라는
이 완고한 돌문을
열리게 하옵시고
당신의 음성이
불길이 되어
저를 태워 주십시오.
그리하여
바람과 동굴의
저의 입에
신앙의 신선한
열매를 물리게 하옵시고
당신의
부르심을 입어
저도
무엇이 되고 싶습니다.
주여
간절한
새벽의 기도를 들으시고
저에게 이름을 주옵소서.
- 박목월 유고시집 「크고 부드러운 손」(민예원) 중에서
경북 경주 출신인 박목월 시인님(1916~1978)은 등단하면서 김소월 시인님에 비견될 만큼 각광받은 서정시인이었습니다. 1939년 「문장」지에 그를 추천한 정지용 시인님은 추천 사유를 "북에 김소월이 있었거니 남에는 박목월이가 날 만하다."고 적었습니다.
그렇게 극찬을 받은 서정시인의 내면에 각별한 신앙심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잘 눈치채지 못하는 때가 많습니다. 오늘은 박목월 시인님의 유고시집 「크고 부드러운 손」에서 한 편을 읽습니다. 이 시집은 박목월 시인님의 아내 유익순 님이 남편의 '신앙시'를 별도로 정리해 펴낸 특별한 시집입니다. 이 시집의 뒤쪽에 실려있는 이근배 시인님의 글의 일부를 함께 읽겠습니다.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지만 시단의 선배들이 기독교에 대한 신앙을 바탕으로 공간적으로 우주적이고 시간적으로 영원성을 종횡하는 시적 완성에 배우는 바가 크다. 이 시집(「크고 부드러운 손」)을 머리맡에 두고 몇 번이고 새겨 읽으면서 선생(박목월 시인님)의 기도 속으로 나도 들어가고 싶다. 기도의, 시의 무한한 공간과 시간 속으로.
- 이근배 시인의 글 '영혼을 씻어주는 목소리 - 목월선생의 기도의 시' 중에서
2. '이 완고한 돌문을 열리게 하옵시고'
우리도 박목월 시인님의 기도 속으로 들어가고 싶습니다. 기도의, 시의 무한한 공간과 시간 속으로요. 그대는 이 시 '부활절 아침의 기도'의 어느 구절에 마음이 움직였는지요?
'나'라는 / 이 완고한 돌문을 / 열리게 하옵시고
- 박목월 시 '부활절 아침의 기도' 중에서
빗방울이네는 이 구절에서 시선이 머물렀습니다. 저에게 '완고한 돌문'은 무얼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날 산행에서 있었던 '탁족(濯足)'이 떠올랐습니다.
그날 산행은 오랜만에 만난 K형과 함께였습니다. 어른 키를 훌쩍 넘는 연분홍 진달래가 숲속에 가득한 봄날이었습니다. 우리는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면서 산 발치쯤에 난 개울물에 기고만장하여 등산화를 벗어던지고 맨발을 담갔습니다. 그런데 저는 맨발을 개울에 넣자마다 바로 빼내야 했습니다. 참을 수 없이 차가웠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요? K형은 그 얼음장같은 초봄의 찬물에 조용히 맨발을 담그고 있는 게 아닌가요? 이게 뭐가 찹다고 그라노? 하면서요.
저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둘이서 같은 개울물에 발을 담갔는데 어떻게 이만큼 차이가 날까요? 저는 하산을 하면서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사물에 대해 느끼는 서로의 감각이 이렇게 엄연히 차이가 나는데도 '상대방이 나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이것이 저의 '완고한 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3. 내가 열어야할 완고한 돌문에 대하여
내가 좋아하는 것을 상대방도 좋아할 것이라는 '완고한 돌문' 말입니다. 내가 홍삼차를 좋아한다고 상대방도 홍삼차를 좋아할까요? 상대방은 몸에 열이 많은 체질이어서 홍삼을 먹지 않는 사람일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돼지국밥을 좋아하지만 몸이 찬 상대방은 찬 기운인 돼지고기를 삼가는 사람일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싫어하는 것을 상대방도 싫어할 것이라는 '완고한 돌문' 말입니다. 어떤 이는 화단의 고양이 오줌냄새를 싫어하지만 어떤 이는 그 냄새를 반가워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 너무나 다른 존재인 것만 같습니다.
개울물에 대한 촉각이 K형과 제가 이렇게 다른데, 우리의 다른 감각, 즉 시각 청각 미각 후각과 의식은 말해 무엇하겠는지요. 얼마나 많은 변수를 서로 다르게 지니고 있겠는지요.
그런데도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상대방이 좋아해주기를 바라거나, 내가 싫어하는 것을 상대방도 싫어해주기를 바라는 '완고한 돌문' 속에 갇혀 있다면 얼마나 힘든 일이 잇달아 벌어지겠는지요? 박목월 시인님의 '부활절 아침의 기도'를 읽으며 '완고한 돌문'에 대해 생각해보는 부활절 새벽입니다.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박목월 시인님의 시를 더 읽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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