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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박목월 시 나그네 읽기

by 빗방울이네 2023.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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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목월 시인님의 시 '나그네'를 만납니다. 이 시는 우리를 하염없이 걷게 합니다. 시인님의 손을 잡고 함께 걸으며 저녁 노을에 마음을 담가 맑히며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박목월 시 '나그네' 읽기


나그네

-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여 - 지훈


- 박목월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南道) 삼백리(三百里)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 「박목월 시 전집」(이남호 엮음·해설, 민음사) 중에서


박목월 시인님(1915~1978)의 '나그네'는 조지훈 시인님(1920~1968)의 '완화삼'에 대한 답시입니다. 그래서 작은 제목을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여 - 지훈'이라고 했네요.

이에 앞서 조지훈 시인님은 1946년 '완화삼'이라는 제목의 시에 '목월에게'라는 작은 제목을 써 발표했습니다. 26세 지훈이 31세 목월 형님에게 보낸 '완화삼'을 잠깐 읽어볼까요?

완화삼

- 목월에게


- 조지훈

차운 산 바위 우에 하늘은 멀어 / 산새가 구슬피 우름 운다
구름 흘러가는 / 물길은 칠백 리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이냥 하여 /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

- 조지훈 시선(오형엽 해설, 지식을만드는지식) 중에서

2. 목월과 지훈, 두 시인의 '인생 샷'은?


이렇게 시를 주거니 받거니 했던 두 시인님의 낭만과 우정이 부럽기만 합니다.

그런데요, 이 두 시에 같이 등장하는 풍경, 우리 시사에서 가장 빛나는 시구의 하나가 된 풍경, '술 익는 마을의 저녁노을'입니다. 지훈이 목월에게 처음 보낸 시 '완화삼'에 등장한 이 풍경의 시구를 다시 보시죠.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여

- 조지훈 시 '완화삼' 중에서

목월은 지훈에게 보낸 답시 '나그네'의 작은 제목으로 지훈이 '완화삼'에 썼던 구절을 그대로 따와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여 - 지훈'이라고 붙였다고 했지요? 그런데 이 분위기는요, "그래, 지훈이 니 말 맞데이. 그날 우리가 본 노을 풍경 진짜 멋 있었제, 그쟈?"라고, 경주 사람 목월은 말하는 것만 같습니다. 1음절에 강세가 들어가는 투박하지만 다정한 경북지방 어투로 말입니다.

그래놓고는 목월은 지훈의 이 문장을 자신의 시('나그네') 본문에 이렇게 가져옵니다. 

술 익는 마을마다 / 타는 저녁 놀

- 박목월 시 '나그네' 중에서

이 두 시가 쓰이기 전, 두 사람은 경주에서 만나 의기투합합니다. 일제의 압제에서 막 벗어났던 시기, 암울한 현실과 보이지 않는 미래에 답답해하던 그들은 나그네가 되어 훌훌 여행을 떠났을 것입니다. 어디쯤이었을까요? 울주에서 발원하여 경주와 포항의 도심을 거쳐 영일만으로 흘러드는 형산강 어디쯤의 마을이었을까요? 이 시구는 그들이 긴 도보여행 중에 함께 본 풍경이었을 것만 같네요.
 
두 시만 보더라도 ‘술 익는 마을의 저녁 노을’은 목월과 지훈의 뇌리에 깊이 각인된 '인생 샷'이었네요. 강가에서 만났던 감동적인 풍경 하나가 두 시인을 위로해 주는 시가 되고, 80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네 둘 데 없는 마음도 붉게 물들이며 데워주네요. 

박목월시나그네중에서
박목월 시 '나그네' 중에서.

 

 

 

3. 정처없는 나그네의 종착점은 어디일까요?


술 익는 마을마다 / 타는 저녁 놀

- 박목월 시 '나그네' 중에서

이 시구를 천천히 열 번 쯤 읽은 그대, 얼굴이 붉어졌겠군요.

먼길을 오느라 지친 나그네, 그대는 술 생각만으로, 술 냄새만으로도 마음이 달아오르는 것 같습니다. 술을 마셨다면 몸이 뜨거워졌을 것입니다. 뜨거워진 몸과 마음은 붉게 붉게 온 세상으로 번져가는 저녁 놀을 망연히 보고 있었네요. 어느 순간, 그대의 몸과 마음 그리고 저녁 놀이 서서히 스며들었겠네요. 뜨겁게요. 종래에는 어느 것이 어느 것을 물들이는지 알지 못한 채 하나가 되어 사방으로 붉게 번져갔을 것입니다. 경이로운 자연 앞에서 이렇게 우리는 스며들어 자연이 되는 걸까요?

구름에 달 가듯이 / 가는 나그네

- 박목월 시 '나그네' 중에서


이 구절은 나그네의 보폭을 떠올립니다. 달의 속도 말입니다. 나그네인 그대는 먼길 위에서 달의 속도에 맞추어 그렇게 자신을 들여다보며 걷고 있었네요. 과연 어디에 도착했을까요? 정처없는 나그네의 종착점, 그건 바로 자신 아니겠는지요? 이렇게 멀고 고독한 인생의 항로에서 만나 직시해야 하는 건 자기 자신 아니겠는지요? 그리고는 다짐했을 것만 같습니다.

저 달처럼 가리라. 가야 할 길이 어떤 길일지라도 달의 행로를 따라 달이 가듯이, 자연의 법칙에 따라 나에게 주어진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리라, 라고요.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박목월 시인님이 답시로 '나그네'를 쓰게했던, '나그네'의 짝궁인 조지훈 시인님의 시 '완화삼'을 만나보세요.

 

조지훈 시 완화삼 읽기

조지훈 시인님의 시 '완화삼'을 읽습니다. 완화삼은 무슨 뜻일까요? 이 시는 과연 무얼 말하고 있을까요?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며 독서 목욕을 하십시다. 1. 조지훈 시 '완화삼' 읽기 완화삼(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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