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 시인님의 시 '흔들리며 피는 꽃'을 만납니다. 우리가 만나는 많은 시들은 우리의 고통을 이해하고 치유하는 약이 되기도 합니다. 오늘은 도종환 시인님이 우리를 위해 데워 놓으신 따뜻한 위안의 온탕 속에 마음을 푹 담그고 독서목욕을 해보십시다.
1. 도종환 시 '흔들리며 피는 꽃' 읽기
흔들리며 피는 꽃
-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 도종환 시집 「흔들리며 피는 꽃」(문학동네) 중에서
1954년 충북 청주 출생인 도종환 시인님은 충북대 국어교육과 졸업하고 1984년 동인지 「분단시대」, 1985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했습니다. 시집 「고두미 마을에서」, 「접시꽃 당신」, 「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 등이 있습니다.
도종환 시인님은 '소박하고 순수한 시어로 사랑과 슬픔 등의 감정을 서정적으로 노래하면서 역사적 상상력에 기반한 결백(潔白)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는 시인입니다. 신동엽창작상, 정지용문학상, 윤동주문학대상, 백석문학상, 공초문학상 등을 받았습니다.
도종환 시인님이 마흔 고개를 넘어 썼다는 '흔들리며 피는 꽃'은 우리에게 어떤 말을 해줄까요?
2. 위안을 주는 탕약 같은 첫 행 15글자
이 시는 읽으면서 속으로 '맞아, 맞아' 하게 되는 시입니다. 그러면서 저절로 자신을 바라보게 되는 시입니다. 시가 마법을 부려서, 읽는 우리를 저만치 1미터쯤 앞에 홀로그램처럼 세워두게 하는 시입니다.
저 앞에 홀로그램처럼 서 있는 '나'에게 흔들림이 보이네요. 상처와 고통이 보입니다. 그 상처와 고통이 나에게만 있는 줄 알았는데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 도종환 시 '흔들리며 피는 꽃' 중에서
이 첫 행으로 시인의 전언(傳言)은 모두 끝났습니다. 이 첫 행 15개의 글자는 세상의 보약이 되었습니다. 흔들리는 사람들에게, 상처와 고통 투성이인 '나'에게 약이 되었습니다. 아, 나만 아픈 것이 아니구나, 사람들은 다 아프구나! 어떤 이는 나보다 더 아프구나!
세상에 나만 아프면 얼마나 힘들까요? 나만 흔들린다면 얼마나 억울할까요? 시인이 '그대만 흔들리는 게 아닙니다, 우리 모두 흔들리고 있답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나의 상처와 고통은 어느새 봄눈 녹듯 세상 사람들 속으로 스며드는 것만 같습니다.
이렇게 도종환 시인님은 아픈 우리에게 효험있는 탕약을 한 열 첩쯤 지어주신 걸까요? 우리는 그 소중한 탕약을 받아 달여 마시며, 탕약에 스미며 나의 아픔과 고통을 바라보고 이해하고 벗어나는 힘을 얻게 됩니다. 참말로 신기한 일입니다.
3. 상처와 고통이 약이라고 합니다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 도종환 시 '흔들리며 피는 꽃' 중에서
도종환 시인님의 두번째 처방입니다. 첫 번째는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하면서 그대만 흔들리는 것이 아니다, 모두 흔들린다고 다독이더니, 이제는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하고 두 번째 탕약을 우리에게 건네줍니다.
그렇습니다. 흔들리지 않으면 줄기가 곧게 설 수 없다는 의미가 숨어 있네요. 상처와 고통이 있었기에 내가 더 곧게 강하게 설 수 있다는 시인의 말은 지금 이 시간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주는 약입니다. 늘 피하려고, 벗어나려고만 했던 상처와 고통이었는데, 그것이 오히려 약이 된다고 하네요. 상처와 고통이 없으면 곧게 설 수가 없다고 합니다. 오, 상처가 약이라니, 가여운 꽃, 가여운 나!
그리하여 우리는 저마다의 상처와 고통을 직시하면서 그 원인을 들여다고 보게 됩니다. 그동안 우리는 상처와 고통에 절망하며 원망했는데 이제는 다시 일어서는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만약 지금 그대가 힘든 일로 흔들리고 있다면 그대만의 꽃을 피우고 있는 중이라는 뜻이겠네요. 꽃은 비와 바람에 오랜 시간 흔들리며 기어이 피어납니다. 우리도 꽃처럼 피어난다고 시인은 말합니다. 그게 꽃의 운명이자 우리의 운명이라니, 얼마나 큰 위안인지요.
글 읽고 마음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따뜻한 탕약 같은 시를 더 음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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