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정호승 시인님의 사랑 시 한 편을 읽습니다. 제목은 ‘풍경 달다’입니다. 이 시에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없는데도 절절한 사랑이 느껴지는 노래입니다. 함께 읽고 생각하면서 마음목욕을 하십시다.
1.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
풍경 달다
- 정호승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그대 가슴의 처마 끝에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
먼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
- 정호승 시선집 「내가 사랑하는 사람」(비채) 중에서
정호승 시인님은 전남 화순의 운주사에 가서 와불님을 뵙고 왔다고 합니다. 이 와불은 모로 누워 머리에 팔을 괸 형태가 아닙니다. 등을 바닥에 대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목구비 뚜렷한 부처님 형상이 아닙니다. 둥그스름한 너럭바위를 최소한으로 다듬어 매우 친근한 인상을 풍깁니다.
그런데요, 이 와불은 혼자가 아니라 한 쌍입니다. 한 분은 다른 분에 비해 키가 큽니다. 높고 한적한 솔숲에 다정하게 누워 푸르고 깊은 하늘을 하염없이 보며 쉬고 있는 편안한 부부 같고 연인 같고 친구 같습니다. 정 시인님은 누군가가 그리워졌겠습니다.
정호승 시인님은 시에서 ‘그대 가슴의 처마 끝에 /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고 합니다. '풍경(風磬)'은 처마 끝에 다는 작은 종입니다. 이 종 안에는 물고기 모양의 쇳조각이 있는데, 바람 부는 대로 흔들리며 종에 부딪혀 소리를 냅니다. 물고기는 도저히 눈을 감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정 시인님은 누군가를 쉬지 않고 생각하는군요.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군요.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은 곧 누구를 끊임없이 생각한다는 것’이라는 문장(김용옥 「논어」 중에서)이 떠오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 그 에너지가 기어이 그리운 이에게 전해지겠지요? 만약 어느 날 당신 가슴에서 종소리가 나면 누군가 당신을 끊임없이 생각한다는 것이네요. 그건 정말 지극한 사랑!
2. 당신에 의해 내가 드러난다
정호승 시인님이 어느 대학에서 ‘인생의 가장 소중한 가치는 무엇일까?’라는 제목으로 특별강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날 강연 내용을 적어두었던 저의 수첩을 꺼내 읽어봅니다.
정 시인님은 이 강연에서 ‘풍경 달다’라는 시를 소개하면서 ‘관계’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바람과 풍경의 관계 말입니다. 풍경이 소리를 내려면 바람이 있어야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은 풍경에 의해 그 존재가 드러난다고 하시면서요.
당신에게 그런 존재는 누구인가요? 그 누군가에 의해 내가 드러난다는 것은 얼마나 큰 사랑일까요? 그 존재가 얼마나 고마운 것인가요? 그런 관계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라고 하시네요.
그런데 그 관계란 것이 늘 좋을 순 없겠지요? 정 시인님은 자신의 컴퓨터 바탕화면에 헨리 나우웬의 말이 적혀있다고 했습니다.
- 관계가 힘이 들 때 사랑을 선택하라.
정호승 시인님은 "관계의 본질은 고통."이라면서, "관계가 힘들 때마다 사랑을 선택하라는 말을 떠올리니까 도움이 되더라."고 하셨습니다.
3. 당신 가슴에 종소리가 울리나요?
우리 문득 운주사에 가고 싶습니다. 거기 별이 내리는 언덕 솔숲에 나란히 누워 하늘을 보고 있는 와불님을 뵙고 싶습니다.
우리도 그 옆에 눕고만 싶습니다. 하염없이 누워있고 싶습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이 추운 밤에도 사랑하는 우리 함께라면 편안하고 행복할 것입니다.
이 먼데서 당신을 생각하고 또 생각합니다. 바람을 보냅니다. 지금 당신 가슴에 종소리가 울리나요?
글 읽고 마음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정호승 시를 더 읽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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