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우리 모두 사랑하고 우러르는 윤동주 시인님(1917~1945)의 '서시'를 읽습니다. 그가 25세 때 쓴 이 시는 우리가 가장 많이 애송하는 시가 되었습니다. 아홉 줄짜리 짧은 시이지만 매우 두꺼운 책인 것만 같습니다. 우리 함께 천천히 읽으며 생각하며 마음목욕을 해보십시다.
1. 25세의 청년 윤동주가 쓴 '서시'
지금 저는 '서시'의 육필 원고를 보고 있습니다. 200자 원고지에 검은색 잉크로 한 자씩 또박또박 세로로 글자를 쓰고 있는 청년 윤동주의 고요한 숨결이 느껴지는 것만 같습니다. 마치 하늘의 별을 보려 까치발을 한 듯, 글자는 길쭉하고 세로획들이 약간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네요.
서시
-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윤동주의 삶과 문학」(고운기 지음, 산하) 중에서
2. '서시'로 들어가는 열쇳말은 '별'
그는 1941년 어느 날, 자신의 첫 시집에 들어갈 시 18편을 고르고 그 앞에 '서시'의 원고를 쓴 뒤 서명처럼 '1941. 11. 20.'이라고 썼습니다. 그러니까 이 시는 원래 제목이 없었습니다. 자신의 시집 맨 앞에 들어갈 서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서문이 그의 사후 시집이 나오면서 '서시'로 탄생했습니다.
서문은 시집 전체를 아우르는 '길잡이' 역할을 합니다. 시인 자신의 문학과 삶을 응축적으로 보여주고, 시집에 든 낱낱의 시들을 하나의 큰 주제 아래로 모여들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서문을 수필 쓰듯 붓 가는 대로 쓴 때문인지 '서시'는 막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글 속에는 누구보다 절망적인 당대를 살다 간 시인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높은 도덕성을 지향하는 한 인간의 삶에 대한 염결한 자세가 스며 있습니다.
저는 '서시'를 읽고 윤동주 시인님이 이 시에 '별'을 열쇳말로 심어두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에 있는 '별'의 역할에 주목하면 시 속으로 즐겁게 들어갈 수 있습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 '별이 바람에 스친다.'라는 구절이 있지요? 이 두 구절의 모호성 때문에 '서시'의 아우라가 넓어지기도 하고, 그래서 더욱 독자들의 애를 태우게도 합니다. 과연 어떤 의미일까요?
독일 철학자 임마뉴엘 칸트의 묘비명을 아시는지요?
Two things awe me most, the starry sky above me and the moral law within me.
나를 가장 경외심에 들게 하는 두 가지, 내 위의 별 총총한 밤하늘과 내 안의 도덕률.
밤하늘의 별들은 어쩌면 그리도 조화로울까요?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북극성을 중심으로 화려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간 스스로 숭고해지려는 도덕률이 인간 안에 있다는 것 또한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칸트는 이 분명한 두 가지가 자신에게 가장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고 하네요. 별들의 조화롭고 화려한 운행처럼 인간을 품격 있고 인간답게 만드는 도덕률이 우리 내면에 빛나고 있습니다. 하늘의 질서가 땅 위 인간의 내면에 그대로 연결되어 있네요. 이 무변광대함 속에 내재한 이 어김없는 자연의 법칙!
윤동주 시인님의 '별을 노래하는 마음'은 이 같은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는 마음입니다. 별의 운행처럼 엄정한 내 속의 도덕률을 상기하며 존엄한 인격을 가꾸고 지키면서 살겠다는 다짐입니다. 그런 마음은 쉬이 잊히는 마음이어서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면서 그런 나의 다짐을 일깨워주는군요. 공자의 '중성공지(衆星共之)'도 떠오릅니다. '모든 별들이(衆星) 북극성(之:북극성 지칭)을 에워싸듯(共) 한다'는 뜻입니다. 덕(德)이 있으면 가만히 그 자리에 있어도 사람들이 그를 향한다는 말입니다. '서시'를 통해 언제나 높은 도덕성을 지향하며 살아가고자 했던 윤동주 시인님의 순정한 삶의 자세를 배우고 싶습니다.
3. 못다 쓴 시 보려 밤하늘을 올려다보다
윤동주 시인님을 앗아간 일본 규슈의 후쿠오카 형무소 앞을 찾아가본 적이 있습니다. 규슈의 하늘은 흐렸고 우리 일행의 마음도 낮게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아무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밖에서 보이던 철창살의 어느 방에서 그는 겨우 29세에 저 세상으로 갔습니다. '서시'가 쓰여진 지 4년 후였습니다. 우리 일행은 높은 담벼락을 따라 형무소 건물을 한바퀴 돌면서 그의 '서시'를 속으로 되뇌면서 그를 그리워했습니다.
그가 못다 쓴 많은 시들, 별처럼 빛났을 시들이 보고 싶어 깜깜하고 차가운 하늘을 하염없이 올려다보는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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