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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안도현 시 너에게 묻는다 읽기

by 빗방울이네 2023.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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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습니다. 이렇게 추우니까 문득 연탄이 생각나네요. 오늘은 연탄재를 소재로 한 안도현 시인님의 시를 읽으며 마음목욕을 하려 합니다.

1.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안도현 시인님의 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은 1994년 2월에 나왔습니다. 이 시집을 여니 첫 시가 '너에게 묻는다'이네요. 시인이 독자인 우리에게 “너에게 묻는다”라면서 돌직구를 날리는 형국입니다.

너에게 묻는다

-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안도현 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문학동네) 중에서


우선 이 시집의 뒤쪽에 실린 해설 중에서 '너에게 묻는다'에 관련된 부분을 읽으며 이 시에 한 걸음 다가가 보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시인과 우리는 꽤나 뜨겁게 살아왔다고 자부할 수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속내 한 겹만 더 들어가서 다시 물어보면 정말 뜨거웠던가? 스스로 뜨거웠던 것이 아니라, 뜨거운 사우나 속의 몸뚱어리가 그 습기의 뜨거움을 자신의 뜨거움으로 착각하듯이 역사 스스로의 뜨거움을 자신의 뜨거움으로 오인하지는 않았는지, 시인 자신과 우리에게 보내는 준열한 질책이자 나무람이 아닐 수 없다.

- 위 책 이성욱 문학평론가의 시집 해설 중에서

 

2. 외롭고 높고 쓸쓸한, 그러나 뜨거운 사람


발표된 지 30년이 다 되어 가는 시입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세 줄짜리 이 짧은 시를 사랑합니다. 첫 행이 너무 강렬한 이미지여서 많은 이들이 시 제목이 '연탄재'인 줄 알 정도입니다. 시인이 혈기왕성한 30대 초반에 쓴 시여서 그런지 매우 저돌적인 분위기입니다. 아무렇게나, 그냥 미지근하게 살지 않겠다는 비장한 각오 같은 것이 느껴지시지요? 삶과 세상과 사람에 대한 경건함마저 느껴집니다. 그래서 시를 읽다 보면 독자도 스스로 그렇게 마음을 다지게 되는 시입니다.

저는 이 시를 이 시집의 제목과 연결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안도현 시인님은 참으로 백석 시인님을 사랑하는 시인입니다. 그는 스무 살 때부터 백석을 짝사랑했다고 합니다. 2014년에는 아주 멋진 「백석평전」(다산책방)을 내기도 했습니다.

안 시인님은 시집 제목 「외롭고 높고 쓸쓸한」을 백석 시인님의 시 '흰 바람벽이 있어'에서 따온 것임에 분명합니다. 백석 시인님의 그 시에 이런 빛나는 구절이 있습니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 「백석시전집」(이동순 편, 창비) 중에서


보셨지요? 이 시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라는 구절이 나오지요? 하필 이 구절을 자신의 시집 제목으로 삼은 까닭이 무엇일까요?

백석의 저 시 구절에는, 하늘이 가장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정의가 들어있습니다. 외롭고 높고 쓸쓸하지만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연탄처럼 남을 데워주는 뜨거운 사람 아닐까요? 자신은 하얀 슬픔 속에 사위어가도 말입니다.

누구에게한번이라도뜨거운사람이었느냐안도현시중에서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안도현 시 중에서

 

 

3. 독자들이 만들어준 시인의 대표 시


어느 해 여름, 일광해수욕장에서 열린 해변축제에서 안도현 시인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이날 초대손님으로 무대에 올랐는데, 사회자가 농담으로 이렇게 물었습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고 하셨는데, 요즘 연탄 때는 가정이 드물어서 시를 연탄재가 아니라 보일러로 바꿔야겠습니다." 그러니까 안 시인님은 "하하, 그럴까요? 그런데 그런 질문은 여기서 처음 받아봅니다."면서 무대에서 환하게 웃었어요.

그는 이날 자신이 '연탄재 시인'으로 불리는 것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약간은 너스레를 떨었어요. 다른 야들야들하고 반짝이는 자신의 서정시도 많은데 하필 시커먼 연탄이냐면서요. 나중에 그를 만나면 분명히 전해드려야겠어요. 그의 이미지는 전혀 까맣지 않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곳에서 따뜻함을 길어다 우리에게 전해주는, 하늘이 귀해하는 사람이라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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