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 시인님의 시 '새벽별'을 만납니다.
읽고 나면 옆에 있는 사랑하는 이가 더없이 소중하게 여겨지는 시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정호승 시 '새벽별' 읽기
새벽별
정호승(1950년~ , 경남 하동)
새벽별 중에서
가장 맑고 밝은 별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다
새벽별 중에서
가장 어둡고 슬픈 별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정호승 시선집 「내가 사랑하는 사람」(정호승 지음, 김영사, 2021년 2쇄) 중에서.
2. 시선집의 270편 중 마지막 시 '새벽별'
정호승 시인님의 시 '새벽별'을 만나기 전에 이 시가 실린 시선집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두루 살펴봅니다.
'나를 떠나버린 시들을 불러 모아 몇 날 며칠 어루만져보다가 다시 세상 밖으로 떠나보낸다.
나무 밑에 있다가 새똥이 내 눈에 들어가 그만 장님이 된 심정이다.'
이 문장은 시선집 맨 앞에 실려있는 '시인의 말'의 일부입니다.
그렇게 '몇 날 며칠 어루만져보다가' 정호승 시인님이 지금까지 쓴 수많은 시 중에서 270편을 고르게 되었네요.
그렇게 270편을 골라 시인님은 시선집의 첫 시로 '슬픔이 기쁨에게'를, 마지막 시로 '새벽별'을 배치해 놓았네요.
시선집의 첫 시 '슬픔이 기쁨에게'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 정호승 시 '슬픔이 기쁨에게' 중에서.
오로지 기쁨을 추구하는 일에 열심인 우리에게, 슬픔을 만나지 않으려는 우리에게, 슬픔을 벗어나려는 우리에게 시인님은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라고 하시네요.
시인님, 우리는 언제나 기쁨이 필요한데요?
그러나 시인님은 이제 슬픔에 대해서도, 슬픔이 얼마나 소중한 지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고 하시네요.
이렇게 시선집의 첫 시에서 시인님은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슬픔의 힘'을, 슬픔의 효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느 시집이라도 첫 시는 시집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암시하는 시로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첫 시 '슬픔이 기쁨에게'는 이번 시선집에 실린 정호승 시인님의 시 270편을 만나러 가는 등대 같은 시로 읽힙니다.
그리고는 시인님은 시선집의 마지막 시로 '새벽별'을 배치해 두셨네요.
'새벽별 중에서 / 가장 맑고 밝은 별은 /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다
새벽별 중에서 / 가장 어둡고 슬픈 별은 /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 정호승 시 '새벽별' 전문.
6행 2연짜리 짧은 시인데, 음영이 깊은 시여서 쉽사리 가슴으로 뛰어들어오지 않네요.
그런데요, 시 '새벽별'도 어쩐지 뭉근하게 뭉근하게 배어있는 슬픔이 느껴지는 시인 것만 같습니다.
첫 시 '슬픔이 기쁨에게'의 슬픔이 마지막 시 '새벽별'로 연결되어 있는 것만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시 '새벽별'에서 우리는 왜 자꾸만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슬픔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걸까요?
근원을 알 수 없는 아스라한 슬픔, 이런 느낌만으로도 시 '새벽별'은 마냥 좋지만, 그러나 빗방울이네는 '새벽별' 속으로 조금 더 들어가 보려 합니다.
3. 그대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
정호승 시인님의 시 '새벽별'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새벽별 중에서 / 가장 맑고 밝은 별은 /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다'
- 정호승 시 '새벽별' 1연.
그런데 시인님의 수많은 시 중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제목의 아름다운 시가 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구절을 시 '새벽별'에서 발견하곤 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 정호승 시 '내가 사랑하는 사람' 중에서.
시 '새벽별'과 시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서 우리는 시인님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시인님이 사랑하는 사람은 그늘이 있는 사람, 그늘을 사랑하는 사람,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이네요.
그늘이 있는 사람, 그늘을 사랑하는 사람,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는 시인님의 마음은 얼마나 높은 마음인지요?
세상에서 햇살같이 반짝이는 사람이 되고 싶은 우리는, 세상에서 그늘이 되기 싫은 우리는 시인님의 전언(傳言)을 만나 무릎이 스르륵 꺾이는 것만 같네요.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 정호승 시 '내가 사랑하는 사람' 중에서.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 정호승 시 '슬픔이 기쁨에게' 중에서.
그래서 위의 두 구절은 서로 같은 말인 것만 같습니다.
'그늘'이 있는 사람을 사랑하고 '슬픔'이 더 소중하다고 하는 시인님의 전언 말입니다.
그러면 시 속의 '나'는 어떤 사람일까요?
'그늘'이 있는 사람을 사랑하고, '슬픔'이 기쁨보다 소중하다고 하는 시인님이니까 시 속의 '나'도 그런 사람이겠지요?
시 속에서 '그늘'이 있는 사람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나'는 햇빛만 좋아하는 사람이겠는지요?
시 속에서 '슬픔'이 소중하다고 하면서 '나'는 기쁨만 쫓아가는 사람이겠는지요?
'나'도 그렇다는 전언이 느껴집니다. '나'도 그늘과 슬픔을 더 아끼고 귀해하는 사람이라는 말요.
시인님이 270편을 뽑은 시선집 제목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오늘의 시 '새벽별'을 만나 봅니다.
새벽별 중에서 / 가장 밝고 맑은 별은 /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다
새벽별 중에서 / 가장 어둡고 슬픈 별은 /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 정호승 시 '새벽별' 전문.
1연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가장 밝고 맑은 별'이라고 합니다.
시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 따르면, '가장 밝은 맑은 별'이란 그늘이 있는 사람, 그늘을 사랑하는 사람,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연에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가장 어둡고 슬픈 별'이라고 합니다.
'가장 어둡고 슬픈 별'은 어떤 별일까요?
그늘이 있는 사람, 그늘을 사랑하는 사람,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 아닐까요?
기쁨보다 슬픔을 소중히 하고 귀해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앞의 시 '사랑하는 사람' '슬픔이 기쁨에게'에서 '나'는 그런 사람들을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그런 사람들, 즉 '가장 어둡고 슬픈 별들'은 '나'를 사랑한다고 하네요.
그 말은 바로 '나'도 그늘이 있는 사람, 그늘을 사랑하는 사람,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 기쁨보다 슬픔을 소중히 하고 귀해하는 사람이라는 말이네요.
그러니 '새벽별' 속에 등장하는 이는 모두 그렇다는 말이네요. 물론 그 '새벽별'을 바라보는 '나'도 그렇고요.
이 시의 가장 높은 우듬지는 어디일까요?
이 시에는 '새벽별'이라는 말이 세번이나 등장합니다. 제목이 '새벽별'이고, 1연과 2연의 첫행이 각각 '새벽별 중에서'입니다.
'새벽별 중에서'
'새벽별'은 어떤 별일까요?
조만간 사라질 별입니다.
먼동이 트면 사라지게 되는 별입니다.
그러니 '새벽별'이라는 시어 속에는 긴장이 가득하네요.
'새벽별'은 우리들인 것만 같습니다.
먼동이 트면 사라지게 되는 새벽별의 운명처럼 곧 사라지게 될 우리들인 것만 같습니다.
우리는 유한한 시간 속을 유영하고 있지만 종종 그런 사실을 잊고 무한한 시간 쪽을 바라보며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살고 있는 걸까요?
그리하여 어리석게도 우리는 서로 미워하고 질투하고 작은 일에도 분노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걸까요?
'새벽별 중에서'
시인님은 이 시를 통해 누구라도 우리 모두 '새벽별'이라는 사실을 떠올려 주는 것만 같습니다.
아무리 찬란히 빛나는 별이라도, 아무리 어둡고 먼 초라한 별이라도 해가 뜨면 다 사라지게 됩니다.
한밤중 별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새벽별'은 얼마나 애연한지!
이렇게 우리가 모두 먼동을 앞둔 '새벽별'이라는 생각에 이르러 보니 우리 곁의 수많은 '새벽별'들이 아름답고 귀해 보이는 것만 같습니다.
새벽처럼 짧은 우리네 삶은 서로 사랑하기에도 너무나 짧은 시간인 것만 같습니다.
그대는 어느 하늘에 외로이 떠 있는 '새벽별'인지요?
다가가 손이라도 한번 잡아주고 싶은 '새벽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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