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고 쓰고 스미기

논어 학이 16장 불환인지불기지 환부지인야

by 빗방울이네 2025. 2. 18.
반응형

「논어」 학이편 제16장의 문장을 만납니다.

 

남이 나를 알아주기만을 너무 바라지 말라는 공자님 말씀이네요.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논어  학이편 제16장 문장 읽기

 

子曰(자왈)

不患人之不己知(불환인지불기지)

患不知人也(환부지인야)

공자께서 말했다.

"남들이 나를 몰라준다고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모르는 것을 걱정하라."

▷「사람인가를 묻는 논어」(윤재근 지음, 동학사, 2008년 3쇄) 중에서.

 

2. 남들이 나를 몰라준다고 걱정하는 편인가요?

 

오늘 만나는 제16장이 「논어 학이편의 마지막 문장입니다.

 

2개의 문장으로 구성된 짧은 16장이네요. 첫 문장부터 봅니다.

 

'不患人之不己知(불환인지불기지)'

 

첫 번째 나오는 아닐 '不(불)'은 '아니다'의 뜻과 함께 '못하다, 없다, 말다, 금지하다'의 뜻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말다, 금지하다'의 뜻으로 쓰였습니다.

 

근심 '患(환)'은 동사로 '근심하다, 걱정하다, 염려하다'의 뜻입니다. 꿸 '串(관)'이 마음 '心(심)'과 결합하여, 꼬챙이가 심장을 관통한 형상이네요. 언제나 우리의 마음을 찌르는 근심, 걱정입니다.

 

'不患'이 문장의 맨 앞에 나와 '걱정하지 말라'라는 명령어 문장이 되었네요.

 

사람 '人(인)'은 '사람, 인간'의 뜻과 함께, 이 문장에서처럼 '다른 사람, 타인'이라는 뜻으로 많이 쓰입니다.

 

이 문장의 두 번째로 나오는 '不(불)'은 '아니다, 못하다'의 뜻입니다. 첫 번째 나온 '不(불)'은 '말다, 금지하다'의 뜻이었고요.

 

몸 '己(기)'는 '몸'이라는 뜻, 그리고 이 문장에서처럼 '자기, 자아'의 뜻이 있습니다.

 

알 '知(지)'는 '알다, 알리다, 알게 하다'의 뜻입니다.

 

그래서 '不患人之不己知'는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까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 드러나네요.

 

그다음 문장입니다.

 

'患不知人也(환부지인야)'

 

근심 '患(환)'은 앞 문장처럼 '근심하다, 걱정하다, 염려하다'의 뜻입니다. 여기서는 문장 맨 앞에 나와 '걱정하라'의 명령어로 쓰였네요.

 

'不'은 초성이 'ㄷ'과 'ㅈ' 음 앞에서는 '불'이 아니라 '부'로 발음된다는 점을 다시 새깁니다. 그런데 '不實'은 그 예외로 '불실'이 아니라 '부실'로 발음된다는 점도 곁들여 알아둡니다.

 

알 '知(지)'와 사람 '人(인)'의 뜻은 앞의 문장과 같습니다. 

 

그래서 '患不知人也'라는 문장은 '남을 모르는 것을 걱정하라'는 뜻이 되네요.

 

"남들이_나를_몰라준다고_걱정하지_말고_내가_남을_모르는_일을_걱정하라"-<논어>-학이편_제16장_중에서.
"남들이 나를 모르는 일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모르는 일을 걱정하라" - 「논어」 학이편 중에서.

 

3. 2,500년 전에도, 지금도 여전한 '남이 나를 좀 알아주었으면!'

 

오늘의 문장 '不患人之不己知(불환인지불기지) 患不知人也(환부지인야)'의 뜻은 어디선가 본 듯합니다.

 

바로 「논어의 첫 문장이자 학이편 첫 문장에 같은 맥락의 문장이 등장합니다. 바로 아래의 문장입니다.

 

子曰(자왈) 學而時習之(학이시습지)면 不亦說乎(불역열호)아

有朋(유붕)이 自遠方來(자원방래)면 不亦樂乎(불역락호)아

人不知而不慍(인부지이불온)이면 不亦君子乎(불역군자호)아

공자께서 말했다. "배우거나 본받거나 터득해 늘 그것을 익히니 기쁘지 아니한가?

함께 배우려는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니 즐겁지 아니한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니 군자가 아니겠는가?

▷위의 같은 책 중에서

 

공자님은 '남이 나를 알아주는 일'에 대한 테마로 「논어 학이편 첫머리를 열었다가, 같은 테마로 학이편을 마무리하시네요.

 

그만큼 '남이 나를 알아주는 일'이 삶에서 중요한 주제인 것 같습니다.

 

공자님(B.C.551 ~ B.C.479)은 지금으로부터 2,500여 년 전의 사상가입니다.

 

그 당시에도 사람들이 '남이 나를 알아주는 일'에 하염없이 매달리고,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으면 분노하고 미워하고 절연하고 그랬나 봅니다.

 

2,500여 년이 흐른 후인 지금 세상은 그 사정이 좀 나아졌겠는지요?

 

SNS에 저마다 자신을 드러내고 자랑하면서 부디 '나'를 알아봐 달라는 요청이 넘쳐난 것이 현실입니다.

 

대화에서도 상대방의 말을 듣는 사람보다 자기 말, 자기 자랑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만큼 남이 나를 알아주면 기분이 좋은 것은 2,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한 인간의 본성인가 봅니다.

 

인간의 기본욕구가 식욕, 수면욕, 배설욕인데, 인정욕/명예욕도 중요한 욕구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공자님은 '남이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지 말라'라고 하셨네요.

 

'不患人之不己知(불환인지불기지) 患不知人也(환부지인야)

남들이 나를 몰라준다고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모르는 것을 걱정하라.'

 

'人不知而不慍(인부지이불온) 不亦君子乎(불역군자호)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니 군자가 아니겠는가?'

 

학이편의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을 겹쳐 읽어봅니다.

 

이 두 문장을 읽으니, 우선은 타인의 평판에 일희일비(一喜一悲) 하지 않는 삶이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나의 삶을, 타인은 타인의 삶을 살아갑니다.

 

남이 아니라 나의 삶에 온전히 집중한다면 내가 타인의 인정이나 칭찬을 받으려 애쓰는 일에 둔감해질 것입니다.

 

남이 나를 알아주고 칭찬해 주는 것을 좋아하고 길들여지면, 나의 삶은 타인의 칭찬에 매인 삶이 된다는 사실을 생각해 봅니다.

 

나의 삶을 뚜벅뚜벅 살아가는 사람을 생각합니다.

 

남과 비교하느라 좌고우면 하지 않고 우왕좌왕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삶을 생각합니다.

 

공자님이 말씀하신 '내가 남을 모르는 것을 걱정하라'라는 문장을 '내가 나를 모르는 것을 걱정하라'라는 문장으로 바꿔 읽어봅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고, 그 아상(我相)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일을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이라면 언젠가는 남이 알아주기를 원하지 않아도 남이 알아볼 수밖에 없는 낭중지추(囊中之錐)가 되어 있을까요?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행복한 삶의 팁을 주는 문장을 더 만나 보세요.

2025.02.08 - [읽고 쓰고 스미기] - 일일시호일 뜻 유래 운문록 벽암록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