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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학이 15장 빈이무첨 부이무교 미약빈이락 부이호례자야

by 빗방울이네 2025.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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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학이편 제15장을 만납니다.
 
가난하다고 비굴하지 않고 오히려 즐기는 삶, 부자라고 교만하지 않고 도리를 다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논어 학이편 제15장 읽기

 
子貢曰(자공왈) 貧而無諂(빈이무첨)하며 富而無驕(부이무교)하되 何如(하여)입니까.
子曰(자왈) 可也(가야)나 未若貧而樂(미약빈이락)하며 富而好禮者也(부이호례자야)니라.
子貢曰(자공왈) 詩云(시운) 如切如磋(여절여차)하며 如琢如磨(여탁여마)라 하니 其斯之謂與(기사지위여)인저.
子曰(자왈) 賜也(사야)는 始可與言詩已矣(시가여언시이의)로다 告諸往而知來者(고저왕이지래자)이로다
 
자공이 여쭈었다. "가난해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해도 교만하지 않으면 어떻겠습니까?"
공자께서 말해주었다. "괜찮겠지. 허나 가난하지만 삶을 즐거워하고, 부유하면서 예(禮)를 좋아하는 이만 못하지."
자공이 여쭈었다. "시에 말하기를 절차탁마라 하는데,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입니까?"
공자께서 말해주었다. "사야(賜也)! 비로소 너와 더불어 시를 논할 수 있겠구나. 과거를 말해주면 미래를 아니 말이다." 
 
▷「사람인가를 묻는 논어」(윤재근 지음, 동학사, 2008년 3쇄) 중에서.
 

2. 가난하더라도 즐기는 삶, 부자의 도리를 다하는 삶에 대하여

 
제자 자공(子貢)이 스승 공자에게 묻고 있네요. 이렇게요.
 
'貧而無諂(빈이무첨) 富而無驕(부이무교) 何如(하여)'

어떤 질문일까요?
 
'貧而無諂(빈이무첨)'
 
가난할 '貧(빈)', 말 이을 '而(이)', 없을 '無(무)', 아첨할 '諂(첨)'으로 구성된 문장이네요.
 
'而(이)'는 '그리고, ~하면서, 그러나'의 뜻으로 쓰이는데 여기서는 '그러나, 그런데도'의 의미로 쓰였습니다.
 
'無(무)'는 '없다, 아니다, 하지 않다, 말다, 금지하다'의 뜻인데, 여기서는 '하지 않다'의 뜻입니다.
 
그러니 이 네 글자를 이으면 뜻은 이렇습니다.
 
'貧而無諂(빈이무첨), 가난하지만 아첨하지 않는다.'
 
그다음 문장을 새겨봅니다.
 
'富而無驕(부이무교)'
 
이 문장은 앞의 '貧而無諂(빈이무첨)'과 같은 구성이네요.
 
부유할 '富(부)', 교만할 '驕(교)'가 앞 문장의 가난할 '貧(빈)'과 아첨할 '諂(첨)'의 대구가 됩니다.
 
그러니 이 네 글자의 뜻은 이렇게 되네요.
 
'富而無驕(부이무교), 부유하지만 교만하지 않는다.'
 
자공은 공자의 애제자입니다.
 
그 애제자인 자공이 가난함과 부유함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있네요.
 
- 스승님, 제 생각으로는 가난해도 비굴하게 아첨하지 않는 것, 부유하다고 교만하지 않는 것이 삶에서 중요한 거 같습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이렇게 덧붙이네요.
 
'何如(하여)'
 
어찌 '何(하)' 같은 '如(여)'로 구성됐네요. 뜻은 '어떻습니까?'.

 

- 스승님, 이런 '빈/부'의 자세에 대한 제 생각이 어떤 것 같습니까?
 
스승에게 질문하는 제자의 질문에서 조심스러운 자세가 느껴집니다.
 
여기에 스승은 뭐라고 답했을까요?
 
'可也(가야) 未若貧而樂(미약빈이락) 富而好禮者也(부이호례자야)'
 
스승은 우선 이렇게 말합니다.
 
'可也(가야)'
 
옳을 '可(가)', 어조사 '也(야)'. 그러니 '可也(가야)'는 '옳다, 좋다'의 뜻입니다.
 
가난해도 아첨하지 않는 것, 부유해도 교만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제자의 생각에 대한 스승의 답입니다.
 
위 책에서는 '可也(가야)'를 '괜찮겠지'라고 풀이합니다. 그러니 이 대답은 완전한 긍정은 아닌, 약간의 부정이 담긴 뉘앙스를 풍기네요.
 
그러면서 스승은 이렇게 덧붙이네요.
 
'未若貧而樂(미약빈이락)'
 
아닐 '未(미)', 같을 '若(약)', 가난할 '貧(빈)', 말 이을 '而(이)', 즐길 '樂(락)'으로 구성되었네요.
 
여기서 '未(미)'는 '아니다'의 뜻도 있지만 '못하다'의 뜻도 있습니다.
 
'而(이)'는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그러나, 그런데도'의 뜻으로 쓰였습니다.
 
그러니 '貧而樂'은 '가난하지만 즐긴다'라는 뜻이네요.
 
앞에 붙은 '未若(미약)'은 '같지 못하다'의 뜻이 되네요.
 
그러니 '未若貧而樂(미약빈이락)'은 '가난하지만 즐기는 것만 못하다'는 뜻이 됩니다.
 
즉, 제자가 앞에서 한 말 '貧而無諂(빈이무첨)', 즉 '가난하지만 아첨하지 않는다'에 대한 스승의 생각을 말한 것입니다.
 
맥락을 살펴보면, 스승은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 가난하지만 비굴하지 않는 것에 머무는 것은 하수(下手)야. 가난하지만 삶을 즐기는 삶이 더 상수(上手)지.
 
아래의 문장이 생각나네요.
 
나는 가난할지라도 진정한 부를 즐기고 싶다
▷「월든」(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김석희 옮김, 열림원, 2021년 9쇄) 중에서.
 
'가난하다고 비굴하게 굴지 않는다'라는 삶의 자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입니다.
 
가난할지라도 즐기는 삶만큼 부유한 삶도 없겠다는 생각이 드는 문장이네요.
 
'진정한 부'란 무얼까요?

 

더 가지려는 데 혈안이 되어 지금의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요?

 

욕망에 집착하지 않는 삶, 현재에 감사하는 자족의 삶이 중요하겠지요?
 
'未若(미약)'은 아래의 뒷문장까지 연결되어 있습니다.
 
'富而好禮者也(부이호례자야)'
 
부유할 '富(부)', 말 이을 '而(이)', 좋을 '好(호)', 예절 '禮(예)', 놈 '者(자)'로 구성되었네요.
 
앞의 '貧而樂'과 이 '富而好禮'가 대구네요.
 
그러니 '富而好禮者'는 '부유하지만 예도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네요.
 
앞의 '未若(미약)'이 연결되어 '부유하지만 예도를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다'라는 뜻입니다.
 
'者'는 앞의 '貧而樂'의 뒤에도 연결되어 있겠습니다. '가난하지만 즐기는 사람'이 되네요.
 
제자가 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富而無驕(부이무교), 부유하지만 교만하지 않는다.'라고 말한 데 대한 스승의 답입니다.
 
- 부유하지만 교만하지 않는 것도 괜찮겠지만, 그건 부유하면서도 예도를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겠지.
 
'예도'로 풀이된 '禮'는 어떤 의미일까요?
 
사전에 보니 '禮(예)'는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예의로써 지켜야 할 규범'이라는 뜻입니다.
 
부자가 마땅히 지켜야할 도리, 즉 '禮(예)'는 무얼까요?
 
자신의 부()를 자신이 속한 사회를 위해 사용하는 일일 것입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 oblige)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합니다.
 

'富而好禮者也(부이호례자야)'


부자라고 교만하지 않는다는 삶의 자세도 중요하지만, 그 부를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일, 그리하여 가난한 사회 구성원들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실천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스승의 가르침이네요.
 
이 같은 스승의 가르침에 제자는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빗방울이네가 자공이었다면 조금 서운했을 것만 같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공부하고 실천하면서 나름대로 '빈부'에 대한 삶의 자세를 깨달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나름 의기양양해서 그 정리된 생각을 스승님께 조심스럽게 여쭈었는데 전혀 다른 차원의 말씀을 하셨으니까요.
 
과연 제자는 스승의 대답에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가난하더라도_삶을_즐기고_부유하면서도_예도를_좋아하는_사람"-논어-학이편_15장_중에서.
"가난하더라도 삶을 즐기고, 부유하면서도 예도를 좋아하는 사람" - 논어 학이편 제15장 중에서.

 

 

 

 

 

 

 

3.  '뼈를 간 듯, 상아를 간 듯, 구슬을 간 듯, 돌을 간 듯' 끊임없는 수양

 
제자 자공의 반응은 이랬네요. 바로 이 문장입니다.
 
'詩云(시운) 如切如磋(여절여차) 如琢如磨(여탁여마) 其斯之謂與(기사지위여)'
 
'詩云(시운)'. 여기의 '詩(시)'는 '詩經(시경)'을 말합니다. 공자가 편찬한 시집입니다.
 
말할 '云(운)'을 이으면 '詩云'은 '시경이 말하다'의 뜻이네요.
 
'如切如磋(여절여차) 如琢如磨(여탁여마)'
 
끓을 '切(절)', 갈 '磋(차)', 다듬을 '琢(탁)', 갈 '磨(마)'가 들어있네요.
 
앞에 각각 같을 '如(여)'가 붙었습니다. 뜻을 이으면 이렇습니다.
 
'如切如磋(여절여차) 如琢如磨(여탁여마) 끊은 듯, 간 듯, 다듬은 듯, 문지른 듯'
 
위 책에서는 이 문장이 '뼈를 간 듯, 상아를 간 듯, 구슬을 간 듯, 돌을 간 듯'으로 풀이되어 있습니다.
 
이 문장은 바로 우리가 잘 아는 '切磋琢磨(절차탁마)'의 기원이 되는 문장입니다.
 
시경 '위풍'편의 첫 시로 나오는 '기욱(淇奧)'('기오'라고도 함)이라는 제목의 시에 나옵니다.
 
그렇게 시경의 시 한 구절을 인용한 제자는 스승에게 이렇게 덧붙이네요.
 
'其斯之謂與(기사지위여)'
 
그 '其(기)', 이 '斯(사)', 이를 '謂(위)', 어조사 '與(여)'.
 
그러니 '其(기)'는 시경의 시 구절('절차탁마')을, '斯'는 방금 스승이 자신에게 해준 말씀을 가리키고 있네요.
 
그러면 이 문장은 이렇게 풀이되네요.
 
'其斯之謂與(기사지위여), 그 시 구절가 바로 스승님의 말씀을 이르는 것이겠지요?'
 
참 절묘한 대답이네요.
 
이 문장에는 제자의 깨달음이 들어 있네요.
 
자신의 빈부에 대한 생각을 더 확장시켜 준 스승의 대답을 듣고 불현듯 시경의 한 문장(절차탁마)이 떠오른 것입니다.
 
더 공부하겠다는 결심의 말이네요.
 
더 열심히 갈고닦겠다, 절차탁마하겠다는 말이네요.
 
옥석을 갈아 보석을 만들 듯 인격 완성을 위해 끊임없이 수련하겠다는 말이네요.
 
그런 제자의 다짐을 듣고 스승은 이렇게 말합니다.
 
'賜也(사야) 始可與言詩已矣(시가여언시이의) 告諸往而知來者(고저왕이지래자)'
 

무슨 말일까요?


'賜也(사야)'
 
'賜(사)'는 자공의 아이적 이름이라고 합니다. 아명이네요.
 
스승이 갑자기 제자의 아명을 부르는 이 장면은 정말 따뜻하네요.
 
스승의 기쁨이 묻어있는 것만 같습니다. 자신의 가르침을 재빨리 이해하고 각오를 밝히는 제자가 얼마나 대견해 보였겠는지요?
 
그렇게 제자를 아명으로 친근하게 부르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始可與言詩已矣(시가여언시이의)'
 
이 문장은, 비로소 '始(시)', 옳을 可(가), 더불 '與(여)', 말씀 '言(언)', 시 '詩(시)' 이미 '已(이)', 어조사 '矣(의)'로 구성되었네요.
 
이 문장의 '詩'도 앞에 나온 시경을 말합니다. '可'는 '가능하다'의 뜻, '言'은 동사로 '말하다'의 뜻입니다.
 
'始可與言詩已矣(시가여언시이의), 비로소 너와 더불어 시경을 말할 수 있겠구나'
 
그러면서 스승은 제자에게 이렇게 덧붙이네요.
 
'告諸而知者(고저왕이지래자)'
 
이 문장은, 고할 '告(고)', 어조사 '諸(저)' 갈 '往(왕)', 말 이을 '而(이)' 알 '知(지), 올 '來(래)' 놈 '者(자)'로 구성되었네요.
 
여기서 '往'과 '來'가 대비되어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지난 일(往)'과 '미래(來)'로 풀이되었네요. 말 이을 '而(이)'는 '그러면'의 뜻이고요. 
 
'告諸而知者(고저왕이지래자), 지난 일을 말해주니 미래를 아는구나'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이 글의 맥락상 이 구절은 이런 뉘앙스인 듯합니다.

- '아'하니 '어'하는구나!
 
하나를 말해 주었는데 열 가지를 알아듣는 제자라는 말이겠지요?
 
그러니 이 문장에서는 나날이 성장 발전하는 제자를 극찬하는 스승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것만 같습니다.

 

논어 학이편 15장은 가난하지만 즐기는 삶, 부유하지만 자만하지 않고 도리를 다하는 삶의 자세를 생각하게 하는 문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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