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의 뜻을 알아봅니다.
불교 경전 「금강경」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로 꼽힙니다.
나무꾼이 시장통에서 이 문장을 듣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바로 그 구절입니다.
그 나무꾼이 바로 당나라 육조대사 혜능 스님입니다.
어떤 문장이기에 그랬을까요?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뜻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 어떤 것에도 머물지 않고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니까야로 읽는 금강경」(이중표 지음, 민족사, 2017년 2쇄) 중에서.
한 글자씩 그 뜻을 헤아려봅니다.
應: 응할 '응'
無: 없을 '무'
所: 바 '소'
住: 살 '주'
而: 말 이을 '이'
生: 날 '생'
其: 그 '기'
心: 마음 '심'
한 구절씩 그 뜻을 헤아려봅니다.
먼저 '應無所住(응무소주)'부터 파봅니다.
응할 '應(응)'은 '응하다'의 뜻도 있지만 '응당 ~하여야 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마땅히, 당연히, 꼭'의 뜻인 '應當(응당)'에 든 글자네요.
이 구절 속의 '應(응)'의 뜻을 '마땅히 꼭 ~하여야 한다'라고 새겨봅니다.
없을 '無(무)'는 '없다, 아니다, 말다, 금지하다, ~하지 않다, ~에 관계없이'의 뜻입니다. 그러니 이 구절에서는 '~에 관계없이, ~없이'의 뜻으로 쓰였습니다.
바 '所(소)'는 '바, 것, 곳, 있다, 거처하다'의 뜻입니다. 이때의 '바'는 '일의 방법이나 방도'를 뜻합니다. 예로 '어찌할 바를 모르다'라고 할 때의 '바'입니다.
살 '住(주)'는 '살다, 거주하다, 머무르다, 멈추다'의 뜻인데, 여기서는 '머무르다'의 뜻으로 새겼네요.
이 네 글자를 연결해 뜻을 짚어봅니다.
應無所住(응무소주) : '마땅히 꼭 하여야 한다(應)', '~에 관계없이, 없이(無)', '바(所)', '머무르다(住)'
그러니 '應無所住(응무소주)'의 뜻은 '마땅히 머무르는 바(방법, 방도) 없이'가 되겠습니다.
다음은 '而生其心(이생기심)'을 파봅니다.
말 이을 '而(이)'는 '그리고'의 뜻으로 많이 쓰입니다. 같은 맥락으로 '~로서, ~하면서'의 뜻으로도 쓰입니다.
날 '生(생)'은 '나다, 자라다, 기르다, 생기다, 발생하다, 만들다'의 뜻입니다.
그 '其(기)'는 '그, 그것'의 뜻과 함께 '이미, 마땅히'의 뜻도 있습니다. 여기서는 '그'의 뜻으로 쓰였습니다.
마음 '心(심)'은 '마음, 뜻, 의지, 생각'의 뜻입니다.
이 네 글자를 연결해 뜻을 헤아려봅니다.
而生其心(이생기심) : '그리고, ~로서, ~하면서(而)', '생기다, 발생하다(生)', '그, 그것(其)', '마음, 뜻, 의미, 생각(心)'
그러니 '而生其心(이생기심)'의 뜻은 '그러면서 그 마음을 내야 한다'가 되겠네요.
그리하여 '應無所住 而生其心(응무소주 이생기심)'은 '마땅히 머무르는 바 없이, 그러면서 그 마음을 내야 한다'라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석해 보아도 문장의 뜻을 정확히 헤아리기가 매우 어렵게 다가옵니다.
과연 숨겨진 의미는 무얼까요?
2. 應無所住 而生其心(응무소주 이생기심)에 숨겨진 뜻은?
'應無所住 而生其心(응무소주 이생기심)'은 「금강경」 제10 장엄정토분(莊嚴淨土分)에 등장하는 문장입니다.
이 문장의 앞에 연결된 문장을 함께 읽겠습니다.
제자 수보리(須菩提)에게 가르침을 주시는 부처님의 육성입니다. 범어(梵語)가 한자로 번역된 것입니다.
是故 須菩提(시고 수보리)
諸菩薩摩訶薩應如是生淸淨心(제보살마하살응여시생청정심)
不應住色生心(불응주색생심)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불응주성향미촉법생심)
應無所住而生其心(응무소주이생기심)
▷「니까야로 읽는 금강경」(이중표 지음, 민족사, 2017년 2쇄) 중에서.
'그러므로(是故) 수보리(須菩提)야'라고 운을 떼시네요.
앞의 어떤 내용을 받아 '그러므로'라고 하셨을까요?
이 앞의 문장에서는 '나'와 '세계'라는 분별을 버린, 즉 '아상'(我相: 오온이 화합하여 생긴 몸과 마음에 참다운 '나'가 있다고 집착하는 견해)을 버린 보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래서 그렇게 아상을 버린 보살이 어떻게 마음을 내는지에 대해 말씀하고 계신 겁니다.
부처님은 보살의 마음 내는 방법을 우선 뭉뚱그려 이렇게 말하십니다.
'諸菩薩摩訶薩應如是生淸淨心(제보살마하살응여시생청정심)'
즉, '모든(諸) 보살(菩薩)과 마하살(摩訶薩)들은 마땅히(應) 이와 같이(如是) 맑고 깨끗한 마음(淸淨心)을 내야(生) 한다'라는 뜻입니다.
'맑고 깨끗한 마음'을 내야 한다는 것이 요지였네요.
그러고 나서 세부적으로 그 방법을 이렇게 일러 주시네요.
'不應住色生心(불응주색생심)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불응주성향미촉법생심)'
이 문장의 뜻을 짚어봅니다.
'형색(色)에 마땅히 머물지 않고(不應住) 마음(心)을 일으켜야(生) 한다.
소리(聲), 냄새(香), 맛(味), 촉감(觸), 지각대상(法)에 마땅히 머물지 않고(不應住) 마음(心)을 일으켜야(生) 한다'라는 뜻이네요.
우리가 눈(眼)으로 형색(色)을 보고, 귀(耳)로 소리(聲)를 듣고, 코(鼻)로 냄새(香)를 맡고, 혀(舌)로 맛(味)을 보고, 몸(身)으로 촉감(觸)을 느끼고, 마음(意)으로 지각대상(法)을 인식할 때 머물지 않고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후 오늘의 문장이 등장합니다.
'應無所住 而生其心(응무소주 이생기심)'
그 뜻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마땅히(應) 머무르는(住) 바(所) 없이(無), 그러면서(而) 그(其) 마음(心)을 내야 한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문장에서 우리에게 가장 난해한 부분은 '무소주(無所住)'입니다.
'무소주(無所住) - 머무르는 바 없이'
이는 과연 어떤 뜻일까요?
3. 사물을 바르게 인식하는 방법에 대하여
'무소주(無所住)', 즉, '머무르는 바 없이'라는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아래 문장을 함께 읽어봅니다.
제자 아난다에게 가르침을 주시는 부처님의 육성입니다.
아난다여, 비구가 시각활동(眼)으로 형색(色)을 보면,
좋은 느낌이 나타나고, 싫은 느낌이 나타나고, 좋지도 싫지도 않은 느낌이 나타난다.
그는 '나에게 나타난 이 좋은 느낌, 싫은 느낌, 좋지도 싫지도 않은 느낌은 유위(有爲)이고 저열하고 연기한 것이며,
평온하고 훌륭한 것은 평정한 마음이다.'라고 통찰하여 안다.
▷위 같은 책 중에서.
이 문장과 '應無所住 而生其心(응무소주 이생기심)'를 연결해 읽으니 이해가 쉬워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應無所住 而生其心(응무소주 이생기심)' 속에 있는 '無所住(무소주)', 즉 '머무르는 바 없이'는 대상(色)에 대하여 마음을 뺏기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대상을 접했을 때 일어나게 되어 있는, '좋다' '싫다' '좋지도 싫지도 않다' 같은 느낌에 휩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대상이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 법(法) 모두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이 대목에서 아래 문장이 떠오르네요.
일체의 산 것들이 좋다·언짢다의 두 갈라짐에 이끌려 나면서부터 미망에 빠졌느니라.
▷「바가바드 기타」(함석헌 주석, 한길사, 2021년 16쇄) 중에서.
애욕입니다. 어떤 대상을 애욕 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참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어떤 대상을 접했을 때 나타나는 느낌의 실체는 그럼 무엇일까요?
'나에게 나타난 이 좋은 느낌, 싫은 느낌, 좋지도 싫지도 않은 느낌은 유위(有爲)이고 저열하고 연기한 것이며,
평온하고 훌륭한 것은 평정한 마음이다.'라고 통찰하여 안다.
부처님은 대상을 접했을 때 일어나는 마음의 실체는 '유위(有爲)이고 저열하고 연기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른바 참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행에 의해 허구적으로 조작된 것(유위), 질이 낮고 변변치 못한 것(저열), 조건에 의해 일어난 것(연기)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맛있는 음식, 몸에 좋은 보약이 누구에게나 맛있고 유익한 것일까요?
배가 잔뜩 부르면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거들떠보기도 싫어집니다.
인삼이 보약이라고 해도 열이 많은 사람에게는 해롭다고 합니다.
어떤 대상에 대한 관심과 욕망은 그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게 합니다.
우리 마음에 일어나는 좋은 느낌, 싫은 느낌, 좋지도 싫지도 않은 느낌은 혼란스러운 느낌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어떤 대상에 접촉해 마음이 일어날 때, 거기에 '머무르는 바 없이(無所住)' 그렇게 일어난 나의 마음은 유위이고 저열하고 연기한 것이라는 점을 통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통찰하는 일에 대해 부처님은 이렇게 참 멋지게 비유해 주시네요.
아난다여, 비유하면 눈 있는 사람이 눈을 깜박이듯이, 아난다여, 이와 같이 순식간에, 이와 같이 빠르게, 이와 같이 쉽게,
그에게 나타난 좋은 느낌, 싫은 느낌, 좋지도 싫지도 않은 느낌은 소멸하고, 평정한 마음이 확립된다.
▷「니까야로 읽는 금강경」(이중표 지음, 민족사, 2017년 2쇄) 중에서.
눈을 깜박이듯이!
거기에 '머무르는 바 없이(無所住)' 통찰하는 일을 '눈을 깜박이듯이' 하라고 합니다.
순식간에, 빠르게, 쉽게 말입니다.
대상 접촉으로 일어난 마음에 대한 통찰을 그렇게 '눈을 깜박이듯이' '순식간에, 빠르게, 쉽게'해야 한다고 하시네요.
이렇게 말입니다.
지금 일어난 나의 마음은 '유위이고 저열하고 연기한 것이다'라고요.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 마땅히 머무르는 바 없이, 그러면서 그 마음을 내야한다.'
이 문장의 근원을 따져오다 보니, '마땅히' '그러면서'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점을 느끼게 됩니다.
마음이 출현할 때 '마땅히' 머무르는 바 없이, '그러면서' 마음을 내야한다는 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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