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랑 시인님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만납니다. '찬란한 슬픔의 봄'이라는 현대시사의 솟대 같은 구절이 든 시입니다. 봄을 보내면서 시인님이 건네주는 시의 자양분으로 우리 함께 마음을 맑히며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김영랑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 읽기
모란이 피기까지는
-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즉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잇슬테요
모란이 뚝뚝 떠러져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흰 서름에 잠길테요
오월 어느날 그 하로 무덥든 날
떠러져누은 꼿닙마져 시드러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최도 업서지고
뻐쳐오르든 내보람 서운케 문허졌느니
모란이 지고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말아
삼백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즉 기둘리고 잇슬테요 찰란한 슬픔의 봄을
- 「원본 김영랑 시집」(허윤회 주해, 깊은샘) 중에서
김영랑 시인님(본명 김윤식, 1903~1950)은 전남 강진 출신으로 1930년 「시문학」 1호에 '동백닙에 빗나는 마음' 등 13편의 작품을 발표하면서 본격 시인으로 데뷔했습니다. 시인님은 1935년 첫 시집 「영랑시집」과 1949년 「영랑시선」 등 2권의 시집을 냈습니다. 한국전쟁 때인 1950년 9월 29일 서울에서 은신하던 중 수복을 앞둔 양군의 공방전 때 날아온 포탄 파편을 맞고 안타깝게도 4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2008년 금관문화훈장을 수훈했습니다.
2. 시인의 숨결 느껴지는 원본으로 읽기
오늘은 김영랑 시인님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처음 발표된 때의 원본으로 읽습니다. 김영랑 시인님이야말로 자신만의 고유한 시어를 매우 소중히 여긴 시인이기 때문에 원본에 쏟은 시인님의 정성을 고스란히 느껴보기 위해서입니다.
자신의 고유한 시어를 통하여 그만의 독특한 시적 개성을 발휘한 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시적 개성은 언어의 표현에 기반하고 있다. 아마도 자신만의 고유한 시어를 일반 독자들에게 각인시킨 몇 안 되는 시인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된다.
- 「원본 김영랑 시집」의 주해자인 허윤회의 '시와 표현 - 김영랑 시의 계보 3' 중에서
이 시의 원본을 읽어 보니 어떤가요? 다시 한번 아래의 예시(현대어 → 원본)에서 시구(詩句)의 맛을 음미해 보셔요. 빗방울이네에겐요, 뒤에 있는 청색 볼드체의 원본 시구를 읽으니 김영랑 시인님의 다정한 숨결이 바로 곁에 있는 것만 같네요.
-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 봄을 기둘리고 잇슬테요
-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테요 → 봄을 여흰 서름에 잠길테요
-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 천지에 모란은 자최도 업서지고
- 내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 내보람 서운케 문허졌느니
이처럼 언어의 세공에 정성을 들이고 지방의 토속어를 소중히 여긴 김영랑 시인님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 속으로 들어갑니다.
이 시는 시인님 32세 때인 1934년 4월 「문학」 3호에 처음 발표됐습니다. 김영랑 시인님은 생전에 2권의 시집을 냈습니다. 첫 시집 「영랑시집」과 두 번째 시집 「영랑시선」이 그것입니다. 이 두 시집에 '모란이 피기까지는'이 다 실려 있는데요, 특이하게도 두 시집의 모든 시에 제목 없이(!) 시가 앉은 순서대로 '번호'가 붙어있습니다.
시인들이 시집을 내면서 모든 시에 각각의 제목을 붙이는 통례에 비추어 이는 매우 이례적입니다. 나중에 ‘모란이 피기까지는’으로 이름 붙은 이 시는 제목 대신 첫 시집에서는 '45', 두 번째 시집에서는 '3'이라는 번호가 표기되어 있네요.
이는 시의 제목에서 혹여나 선입견을 갖지 말고 시를 음미해 달라는 시인님의 눈짓인 것만 같습니다. 마치 모란꽃 한송이를 '모란'이라는 이름 없이, 이름에 딸린 이런저런 사전정보(편견이나 오해 등) 없이 시 한 편 한 편을 완상 해달라는 듯이요. 김영랑 시인님의 매우 섬세한 면모가 드러나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3. 그대에게 '모란'은 무엇인가요?
그런데요, 김영랑 시인님의 첫 시집 「영랑시집」의 첫 쪽을 보니, 영어 문장 하나가 덩그러니 한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네요.
A thing of beauty is a joy forever. - Keats
- 「영랑시집」 속표지 중에서
'아름다운 것은 영원한 기쁨이다'로 읽힙니다. 19세기 영국 문학을 대표하는 천재시인, 낭만주의 시인인 존 키이츠(1795~1821)의 문장이네요. '제목 없는 시'로 가득한 「영랑시집」에 다가갈 수 있게 인도해 주는 등대입니다. 김영랑 시인님은 키이츠의 문장을 통해 "저는 무엇보다 '아름다움'을 추구합니다."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네요.
그러니까 '모란이 피기까지는'은 '아름다움'에 대한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인님은 모란이 지천으로 피어난 황홀한 시간, 더할 수 없이 높고 순수한 아름다움, 그런 극치의 시간을 추구하고 있네요.
그러나 아름다움의 시간은 매우 짧습니다. 아름다움은 천지에 찬란하게 빛을 발하다가 신기루처럼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그래서 그런 봄의 시간을 시인님은 '찬란한 슬픔'이라고 표현했네요.
찬란한 슬픔!
'찬란함'과 '슬픔'이라는 서로 모순된 단어를 연결해 화자가 전달하려고 하는 핵심을 강조하는 역설법입니다. 이는 '행복한 고민' '즐거운 비명' '창조적 파괴'처럼 우리가 일상에서도 많이 쓰는 수사법입니다. 유치환 시인님의 '깃발' 중 '소리 없는 아우성', 조지훈 님의 '승무' 중 '고와서 서러워라' 같은 표현도 떠오르네요.
'찬란한 슬픔'이라는 시구에서는 슬픔보다 찬란함이 강조되는 느낌입니다. 황홀하게 피었던 모란은 금방 뚝뚝 떨어지고 천지에 그 아름다움이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마는 '슬픔의 봄'이지만, 시인님은 그 찬란한 시간을 기다린다고 합니다. 시인님에게 아름다움은 영원한 기쁨이니까요. A thing of beauty is a joy forever!
김영랑 시인님 스스로도 '찬란한 슬픔'이라는 자신의 시구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시집에서는 총 53편의 시 중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45번으로 매우 뒤쪽 순서로 편집하지만, 14년 후 자신의 두 번째 시집에서는 '찬란한 슬픔'이라는 챕터를 별도로 두고 거기 29편 중 3번으로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를 전진 배치했습니다.
'찬란한 슬픔'이라는 현대시사의 솟대 같은 구절에서 우리는 슬픔과 기쁨이 별도로 분리되어 있는 듯해도 이 둘은 이처럼 공존한다는 점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쁨 속에 이미 슬픔이 잉태되어 있음을 안다면 마냥 쾌락의 감정에 빠지지만은 않으려 할 것입니다. 슬픔 속에도 보이지는 않지만 기쁨의 씨앗이 들어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우리는 이런저런 슬픔에도 덜 슬퍼하면서 보다 담담한 자세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오늘 시를 읽고 나니 문득, 나에게 '모란'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저마다 간절히 기다리는 '찬란한 시간' 말입니다. 김영랑 시인님도 우리에게 그렇게 묻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대에게 '모란'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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