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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윤동주 시 별 헤는 밤 읽기

by 빗방울이네 2023.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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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인님의 시 '별 헤는 밤'을 원본으로 만나봅니다. 시인님이 밝혀 내려주시는 별빛으로 샤워를 하면서 저마다의 마음을 씻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윤동주 시 '별 헤는 밤' 원본으로 읽기


별 헤는 밤

- 윤동주(1917~1945, 북간도 명동촌)

季節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헤일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오,
來日 밤이 남은 까닭이오,
아직 나의 靑春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追憶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憧憬과
별 하나에 詩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小學校 때 冊床을 같이 햇든 아이들의 일흠과 佩, 鏡, 玉 이런 異國少女들의 일흠과, 벌써 애기 어마니 된 계집애들의 일흠과, 가난한 이웃사람들의 일흠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푸랑시스·짬」 「라이넬·마리아·릴케」 이런 詩人의 일흠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이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北間道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 우에
일흠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덥허 버리습니다.

따는 밤을 새워 우는 버레
부끄러운 일흠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1941. 11. 5)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에 파란 잔디가 피나듯이
일흠자 묻힌 언덕 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고운기 지음, 도서출판 산하, 2006년 1쇄, 2007년 2쇄) 중에서


2. 시를 만나기 전에 만나는 몇 가지 이야기들


위의 시는 윤동주 시인님의 자필 원고를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청색 글자들은 오자가 아니라 원본 표기 그대로라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참으로 좋아하는 윤동주 시인님의 대표 시 '별 헤는 밤'을 원본 그대로 읽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위의 책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에 실린 윤동주 시인님의 자필 원고를 한 자씩 옮겨 적었습니다. 시인님의 숨결을 느끼면서요. 
 
시인님이 써놓은 원본은 어떤 모양일까요?
 
원본의 용지는 400자 원고지입니다. 그 원고지 위에 시 '별 헤는 밤'의 시어들이 별처럼 반짝이고 있네요. 시는 한 행씩 세로로 쓰여있고요. 그래서 400자 원고지 두장 반에 시가 가득 차 있습니다. 가을 밤하늘에 별이 가득하듯이요. 이 시는 시인님의 시 중에서 가장 긴 시입니다.
 
그런데요, 이 원고지를 자세히 보니, 각 장마다 양옆에 세로로 철끈 구멍이 네 개씩 나 있네요. 400자 원고지의 중간은 세로로 접힌 자국이 있고요. 원래 400자 원고지를 반으로 접어서 묶었던 것을 풀어서 폈다는 말이네요.
 
이 제본방식을 '자루매기'라고 합니다. 한 장을 넘기면, 접혀있는 2장이 넘어가는 셈입니다.
 
백석 시인님의 시집 「사슴」이 이런 제본방식입니다. 1936년에 나온 「사슴」의 제본방식과 활자를 그대로 옮긴 복원본(도서출판 소와다리, 2016년)을 보면, 이는 요즘 볼 수 없는 제본입니다. 
 
윤동주 시인님은 다섯 살 선배 문인인 백석 시인님을 흠모했습니다. 윤동주 시인님은 당시 100부 한정본으로 나온 「사슴」을 구하지 못해 나중에 빌려서 시를 한 편씩 공책에 옮겨 적어서 읽었을 정도였으니까요.
 
윤동주 시인님은 연희전문학교 졸업기념으로 첫 시집을 발간하려고 했습니다. 시집 속에 들어갈 시 19편을 적어서 필사본 시집 3부를 만들어두었습니다. 이 시집은 윤동주 시인님의 계획대로 나오지 못했지만요.
 
윤동주 시인님의 자필 원고에 세로로 뚫린 철끈 구멍은 필사본을 자루매기 제본으로 만들었다는 말이네요. 「사슴」처럼요. 그때는 자루매기 제본이 유행이었을까요? 이 독특한 제본방법이 두 시인님을 더 가까이 묶어주는 느낌이 드네요.
 

윤동주시별헤는밤중에서
윤동주 시 '별 헤는 밤' 중에서.

 


3. '부끄러운 일흠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1941년 11월 5일입니다. 윤동주 시인님이 연희전문학교(연세대학교) 졸업(12월 27일) 직전이네요. 
 
시인님은 만년필에 검은색 잉크를 가득 채웠겠습니다. '별 헤는 밤' 초고를 옆에 두고 400자 원고지에 세로로 옮기기 시작합니다. 한 자씩 또박또박 오탈자 나지 않도록 조심조심하면서요.
 
季節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 가을로 가득 차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 별들을 다 헤일듯합니다

- 윤동주 시 '별 헤는 밤' 중에서

 
늦가을, '만추(晩秋)'였네요. 하늘에 가을이 가득 찼다고 합니다. 대학 졸업을 앞둔 시인님의 마음일 것입니다. 북간도에서 서울까지 와서 어렵게 대학을 마쳤다는 안도감, 해냈다는 성취감 같은 것이었을까요? 이런 시인님의 느꺼운 감정이 우리에게 실려와 우리의 마음에도 무언가 몽글몽글한 기분이 가득 차오르는 것만 같습니다. 
 
원고지에 보면 시인님은 마지막 4행에 '가을 속의'이라는 시어를 추가했네요.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듯합니다
 
그래서 시의 둘레가 더 넓어지고 '가을 속의 별'을 생각하는 우리의 상상은 더 무한대로 뻗어가게 되었습니다. 참 아득해서 좋네요.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오 / 來日 밤이 남은 까닭이오 / 아직 나의 靑春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 윤동주 시 '별 헤는 밤' 중에서

 
밤하늘의 별을 헤아려본 적이 언제였나요? 별을 헤는 마음은 얼마나 동심이겠는지요? 우리도 동심이 되어, 동심이 된 시인님을 따라 함께 별을 헤어봅시다. 
 
별 하나에 追憶과 / 별 하나에 사랑과 / 별 하나에 쓸쓸함과 / 별 하나에 憧憬과 / 별 하나에 詩와 /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 윤동주 시 '별 헤는 밤' 중에서

 
어머니! 별을 보고 어머니를 부르는 시인님은 얼마나 애틋한지요? 다른 건 별 하나에 하나씩이지만 어머니는 두 번이나 불렀네요. 얼마나 그리울까요? 지금 고향 북간도에서 어머니도 같은 별을 보고 있을까요? 나-별-어머니, 이렇게 이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삼각형을 이루고 있었을까요?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小學校 때 冊床을 같이 햇든 아이들의 일흠과 佩, 鏡, 玉 이런 異國少女들의 일흠과, 벌써 애기 어마니 된 계집애들의 일흠과, 가난한 이웃사람들의 일흠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푸랑시스·짬」  「라이넬·마리아·릴케」 이런 詩人의 일흠을 불러봅니다

- 윤동주 시 '별 헤는 밤' 중에서

 
보셔요, 시인님이 꼽은 '아름다운 말 한마디'. 얼마나 소박하고 다정한지요? 어릴적 친구들과 가난한 이웃들과 순하디 순한 동물들! 시인님의 선한 심성이 그대로 각인된 구절입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붙이고 있는 시인님은 얼마나 천진난만한지요!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푸랑시스·짬」 「라이넬·마리아·릴케」 이런 詩人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그런데 위의 이 구절은 기시감이 있습니다.
 
하눌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서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 백석 시 '흰 바람벽이 있어'(「정본 백석 시집」, 고형진 엮음, 문학동네, 2007년 1쇄, 2019년 32쇄) 중에서

 
두 시의 구절(녹색)이 서로 많이 닮았네요. '흰 바람벽이 있어'(1941년 4월)가 '별 헤는 밤'(1941년 11월)에 앞서 발표된 시입니다. 좋은 영향을 주며 또 받으며 어려운 시대를 헤쳐온 두 사람의 이 뜨거운 존경과 사랑을 어찌할까요?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 이 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 우에 / 내 일흠자를 써 보고 / 흙으로 덮허 버리습니다.
따는 밤을 새워 우는 버레는 / 부끄러운 일흠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 윤동주 시 '별 헤는 밤' 중에서

 
이 시 '별 헤는 밤'은 어느 구절이라도 다 좋지만 특히 이 부문이 좋네요. 별빛과 이름모를 벌레소리가 소란한 밤의 언덕 위에 시인님이 서 있습니다. 흙바닥에 이름을 쓰고 흙으로 덮어버렸다고 하네요. 부끄러움! 일제 강점기, 현실을 타개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자신이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대학 공부를 마치고 어엿한 지식인이 되었으면서도 이토록 무력한 자신의 모습이 아까 별 하나에 붙였던 아름다운 이름들, 어머니와 친구들, 가난한 이웃들,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에게, 또 프랑시스 짬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에게 부끄럽다고 합니다. 시인님의 고독과 허무, 좌절감이 가슴 깊이 파고드네요. 

그런데 초고에서는 여기서 시가 끝난 흔적이 있네요. 이 구절 뒤에 시를 쓴 연월일이 이렇게 표기되어 있습니다.
 
(1941. 11. 5)
 
시 끝에 쓰인 이 연월일은 윤동주 시인님의 서명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시인님은 자신의 시가 마음에 차지 않았네요. 부끄러움에 이름자를 흙으로 덮어버렸다 하면서 시를 끝내기에는 무언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내내 했겠지요? 그래서 나중에 이 구절이 덧붙였습니다. 원고지 칸이 모자라 맨 마지막 행은 여백에 깨알같이 써두었네요.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 무덤 에 파란 잔디가 피나듯이 / 내 일흠자 묻힌 언덕 에도 /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 윤동주 시 '별 헤는 밤' 중에서

 
아마 이 구절이 없었다면 우리 모두 고독과 허무, 좌절감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시인님은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이 우리에게도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온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시인님이 별에 붙여주었던 아름다운 이름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자신도 무언가 자랑이 될 일을 하며 살아가겠다는 각오도 느껴지네요.
 
이때가 1941년 11월 5일입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윤동주 시인님은 이렇게 아름답고 찬란한 별 같은 시를 쓴 지 3년 3개월 후 1945년 2월 16일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모진 고문에 시달리다 애통하게도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북간도 명동촌 뒷산에 묻힌 그때 그의 나이 겨우 29세였습니다.
 
시인님이 시 '별 헤는 밤'에서 밝힌, '나의 별'에 사는 '아름다운 이름'들을 향하여 '자랑처럼' 무성할 풀은 어떤 일을 암시했을까요?
 
시인님이 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돌아가시게 되었는지 공식 확인된 것은 1979년이었습니다. 사후 34년 뒤의 일이네요.
 
일본 사법부형사국 발행의 극비문서 「사상월보」 제109호(1944.4~6월)에 실린
송몽규에 대한 판결문과 관련자 처분 결과 일람표가 입수되었다.
송몽규, 윤동주의 형량 등이 알려지게 되었고,
혐의는 '독립운동'이었음이 확인되었다.

- 「윤동주 평전」(송우혜 지음, 서정시학, 2018년 9쇄) 중에서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윤동주 시인님의 시 '자화상'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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