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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엽 시 껍데기는 가라 읽기

by 빗방울이네 2023.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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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엽 시인님의 '껍데기는 가라'를 만납니다. 신동엽 시인님의 대표 시이자 한국 현대시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 시입니다. '껍데기는 가라'라고 외치는 시인님의 비장한 목소리에 우리 함께 마음을 씻으며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신동엽 시 '껍데기는 가라' 읽기


껍데기는 가라
 
-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사월(四月)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漢拏)에서 백두(白頭)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 「한국현대시인연구 11- 신동엽」(성민엽 편저, 문학세계사) 중에서

 
신동엽 시인님(1930~1969)은 충남 부여 출신으로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의 가작 입선으로 등단했습니다. 1963년 첫 시집이자 마지막 시집인 「아사녀」를 발간했고, 1967년 총 4,800행에 이르는 대작 장편 서사시 '금강'을 발표했습니다. 
그의 사후에 「신동엽 전집」, 시선집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시집 「껍데기는 가라」, 미발표작 시집 「꽃같이 그대 쓰러진 」, 일기 수필 등 미발표 산문집 「젊은 시인의 사랑」, 서사시 단행본 「금강」, 평전 「시인 신동엽」 등이 발간됐습니다.
1982년부터 신동엽문학상이 제정 운영되고 있으며, 2013년 생가가 있는 부여에 신동엽문학관이 건립되었습니다. 2003년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이 추서 됐습니다.


2. 참여시의 절정이자 기념비적 저항시

 
이 시는 참여시의 절정이자 기념비적 저항시로 평가받고 있는데요, 구체적인 현실과 역사를 시 속에 과감히 들여와서 삶과 역사의 변화를 추구하는 시입니다. 

껍데기는 가라 / 4월도 알맹이만 남고 / 껍데기는 가라

- 신동엽 시 '껍데기는 가라' 중에서


여기서 '4월'은 1960년에 발생한 4·19 혁명을 말합니다. 4·19 혁명은 학생과 시민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반독재 민주주의 운동입니다. 1960년 3월 15일 제4대 정·부통령 선거를 위한 선거가 실시됐는데요, 당시 집권당인 자유당은 반공개 투표, 투표함 바꿔치기, 득표수 조작 등 부정선거를 저질렀습니다.

이를 규탄하는 시위가 전국에서 이어지고 마산 시위에서 실종됐던 고교생 김주열 군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처참한 시체로 발견된 것에 분노한 학생과 시민들이 4월 19일 총궐기했고, 노도와 같은 군중 시위가 이어짐에 따라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하고 자유당 정권은 붕괴되었습니다.

시 '껍데기는 가라'는 4·19 혁명이 일어난 지 7년 뒤인 1967년 「52인 시집」에 발표됐습니다. 4·19 혁명 이듬해인 1961년 5·16 군사 정변이 일어나고, 그 후부터 4월의 정신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역사가 흘러갔을 때, 신동엽 시인님은 시 '껍데기는 가라'를 통해 4월의 푸른 정신을 다시 우리 앞에 불러냈던 것입니다.

시인은 껍데기 즉, 불의와 부조리와 폭력은 물러가라고 외칩니다. 가짜인 것, 거짓된 것, 올바르지 못한 것, 참된 민족의 발전과 통일을 훼방 놓는 것, 우리를 파멸로 이끄는 것, 이런 '껍데기는 가라'라고 준엄하게 외치고 있네요.

껍데기는 가라 /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 껍데기는 가라

- 신동엽 시 '껍데기는 가라' 중에서

 
'동학년'은 동학농민혁명을 말합니다. 동학혁명은 1894년 봉건체제의 개혁과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국권을 지키기 위해 봉기하여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농민중심의 혁명입니다. 시인님은 자유와 평등, 인권 수호와 같은 가치를 지키기 위한 민중의 뜨거운 몸부림이었던 4·19 혁명과 동학농민혁명의 동질성을 상기시키면서 이 두 역사적 사건에 이어진 민족의 힘, 바로 그 '알맹이'가 우리에게 있음을 환기시켜 주고 있네요. 
 

신동엽시껍데기는가라중에서
신동엽 시 '껍데기는 가라' 중에서

 

 

3. 여전히 카랑카랑한 56년 전 시인의 목소리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 논 / 아사달 아사녀가 / 중립(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 부끄럼 빛내며 / 맞절할지니

- 신동엽 시 '껍데기는 가라' 중에서

 
초례청은 전통혼례를 하는 장소를 말합니다. '중립의 초례청'은 대립과 갈등이 없는 평화의 대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 구절에서 남녀의 맞절 , 좌우의 맞절, 남북의 맞절이 잇달아 떠오르네요. 시인은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 논' 원초적인 순수성을 바탕으로 한 거룩한 합일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알맹이'이자, 미래의 가치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껍데기는 가라 / 한라(漢拏)에서 백두(白頭)까지 /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 신동엽 시 '껍데기는 가라' 중에서


시의 앞 부문에서 등장했던 그 '알맹이'는 이 시의 끝자락에 와서 '향그러운 흙가슴'에 뿌려지네요. 그러니 부디 우리의 평화와 순수를 파괴하는 폭력, 즉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고 합니다. 이 행에서 '쇠붙이'의 상징성이 무겁게 다가옵니다. 전쟁과 같은 무력, 또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는 외세도 쇠붙이라는 이미지에 자석처럼 따라 붙어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게 합니다.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고 했으니, 그런 쇠붙이들이 사라지지 않고 상존하고 있다는 말이네요. 

56년 전에 이 시를 썼던 시인의 음성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카랑카랑하게 들리는 것만 같은 까닭은 무엇일까요? 지금 우리는 그때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무엇이 나아지고 무엇이 나빠졌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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