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홍 시인님의 시 '국도에서'를 만납니다. 이 시는 어떤 소중한 삶의 팁을 우리에게 건네줄까요? 우리 함께 시인님이 초대한 국섬에 올라가서 마음을 씻으며 독서목욕을 해보십시다.
1. 이주홍 시 '국도(國島)에서' 읽기
국도(國島)에서
- 이주홍
바람벽 같은
바위 새에
새집 같이
봄이 있어
열네 집
집집마다
고구마만
먹고
꽃 피면
봄이 온가
피를 뿜어
동녘인데
날 새면
미역 따고
또 날 새면
홍합 따고
올 이도
갈 데도 없이
한 바다에서 하늘 하고만 사는
내 고장 국섬
- 「이주홍과 수산대학」(류청로 남송우 윤한삼 엮음, 이주홍문학재단) 중에서
아동문학가이자 소설가, 그리고 시인인 향파 이주홍 님(1906~1987)은 경남 합천 출신으로 1928년 「신소년」에 창작동화 '배암색기의 무도'가 당선되고, 192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가난과 사랑' 입선, 「여성지우」에 단편소설 '결혼 전날'이 당선해 등단했습니다.
서울에서 「신소년」과 카프 아동문학기관지인 「별나라」 「풍림」 「영화연극」 「신세기」 등의 편집에 참여하면서 창작은 물론 출판, 미술, 편집, 만화 등 다방면에서 재능을 발휘했습니다.
이원수 님 등과 함께 아동문학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 노력해 온 그는 1947년 부산에 내려와 동래고 교사를 거처 1949부터 1972년까지 부산수산대(현 부경대) 교수를 지냈습니다. 그는 1958년 부산아동문학회를 처음 결성해 초대 회장을 지낸 일 외에는 일절 단체장 같은 자리에 나서지 않고 창작에 전념해 근현대 문학사에서 보기 드물게 동시 동화 시 소설 시나리오 등 다양한 장르에서 모두 200여 작품이라는 방대한 분량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주요 작품으로는 동시집 「현이네집」 등, 동화집 「메아리」 「톡톡 할아버지」 「사랑하는 악마」 등, 동화소설집 「못나도 울 엄마」 등, 소년소설 「이순신장군」 등, 우리나라 마당극의 효시로 꼽히는 「탈선춘향전」 등이 있습니다. 부산시문화상, 경상남도문화상, 부산시학술공로상, 대한민국예술원상, 한국불교아동문학상, 대한민국문화훈장, 대한민국문학상본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2. '날 새면 미역 따고 또 날 새면 홍합 따고'
이주홍 시인님은 51세 때인 1957년 4월 시 '국도(國島)에서'를 발표했습니다. 무려 66년 전의 일이네요. '국도(國島)'는 경남 최남단의 작은 섬입니다. 경남 통영시 욕지면 동항리에 속하고, 면적 0.56㎢, 해안선 길이 4.5㎞로 통영과 22.7㎞ 떨어져 있습니다.
바람벽 같은 / 바위 새에 / 새집 같이 / 봄이 있어
- 이주홍 시 '국섬에서' 중에서
국섬은 낭떠러지 바위 투성이라고 합니다. 그것을 본 시의 화자는 '바람벽 같은 바위'라고 했네요. 그 깎아지른 듯 높은 바위틈에 새집처럼 봄이 있다고 하네요. 그렇게 봄이 아주 높고 멀리 있어 다가갈 수 없고 다가오지도 않을 듯한 느낌을 줍니다. 화자의 희망은 가물거리는 것만 같습니다.
열네 집 / 집집마다 / 고구마만 먹고
- 이주홍 시 '국섬에서' 중에서
국섬에는 모두 열네 집 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인구도 11 가구 17명(2015년)으로 나옵니다. 그 당시는 고구마만 먹어야 할 정도로 가난했습니다. 국섬은 대부분 산지여서 경작지가 거의 없어서 다른 농사는 엄두도 못 내었겠네요.
꽃 피면 / 봄이 온가 / 피를 뿜어 동녘인데 // 날 새면 / 미역 따고 / 또 날 새면 / 홍합 따고
- 이주홍 시 '국섬에서' 중에서
꽃이 피면 아, 지금 계절이 봄이구나, 붉은 해가 뜨면 아, 저쪽이 동쪽이구나 했지만, 그게 화자의 삶에 커다란 변화나 희망을 주는 작용을 하지 못했다네요. '날 새면 미역 따고 또 날 새면 홍합 따고'라는 이 절창이야말로 이 시의 울음터인 것 같습니다. 이 섬에서의 삶이란, 미역 따고 홍합 따는 일, 지겹도록 반복되는 일상만 있을 뿐이라고 하네요. 이 구절에서 우리도 '날 새면 미역 따고 또 날 새면 홍합 따는' 섬사람이 되어 삶의 풍경에서 흐릿한 한 개의 점으로 멀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3. 국섬에서의 삶만 외로울까요?
올이도 갈 데도 없이 / 한 바다에서 하늘 하고만 사는 // 내 고장 국섬
- 이주홍 시 '국섬에서' 중에서
국섬 사진을 보니 섬 전체가 대부분 낭떠러지 바위로 되어 있네요. 이런 험하고 적막한 길을 누가 찾아오겠는지요? 또 바로 앞은 망망대해 대한해협이고 그쪽은 일본 대마도여서 어디 갈 데도 없는 외로운 섬이라고 합니다. 그런데요, 화자는 그런 바다 복판에서 '하늘 하고만 산다'라고 하네요. 지금까지 우리의 고립감을 극대화시켜 오던 시의 화자가 이 구절에서 우리의 시선을 불현듯 '하늘'로 이동시켜 줍니다. 이렇게 시의 종점에서 만난 하늘로 인해 문이 열리면서 우리는 저마다의 운명이나 자연의 섭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런데요, 국섬에서의 삶만 그토록 가난하고 힘들고 외로울까요?
이주홍 시인님은 국섬의 회화 속에 우리 모두의 삶을 투영시켜 놓았네요. 도회지의 삶이 화려하고 높아 보여도 우리는 너나없이 저마다의 '국섬'에서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요? 다양한 관계 속에서도 우리는 언제나 외롭고, 그래서 어디론가 가고 싶고 누군가 그립지만, 사방은 온통 '바람벽 같은 바위'이지 않던지요?
51세의 시인님은 국섬에서 느끼게 되었네요. 이처럼 고독한 섬에서 사는 것이 바로 삶이라는 것을요. 이렇게 외로운 처지의 삶이니 누구에게라도 미워하고 분노하고 상처 줄 수 있겠는지요?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 목욕'에서 이주홍 시인님의 시를 더 읽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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