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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박목월 시 청노루

by 빗방울이네 2024.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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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목월 시인님의 시 '청노루'를 만납니다. 깊은 산속 아무도 없는 공간으로 가고 싶어지는 시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박목월 시 '청노루' 읽기

 
청노루
 
- 박목월(1916~1978, 경북 경주)
 
머언 산 청운사(靑雲寺)
낡은 기와집
 
산은 자하산(紫霞山)
봄눈 녹으면
 
느름나무
속ㅅ잎 피어가는 열두 구비를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 「박목월 시 전집」(이남호 엮음·해설, 민음사) 중에서

 
2. 푸른 구름 머무는 청운사, 자주빛 노을 끼는 자하산


박목월 시인님의 '청노루'는 1946년에 나온,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의 3인 시집 「청록집」 게재된 시입니다. 이 시 제목 '청노루'를 따서 3인 시집 제목 「靑鹿集」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공동 시집으로 인해 세 사람은 '청록파'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고요.
 
'청록집(靑鹿集)'. 사전에서 '청록(靑鹿)'을 찾아보니, 백두산사슴이라고 합니다. 몸은 여름에 푸른빛을 띤 회색이고 겨울에는 회색을 띤 갈색이라고 하네요.

노루의 한자는 '獐(장)'입니다. 그러나 사슴 '鹿(록)'은 사슴과에 속하는 포유류를 통칭하는 글자이고, 노루도 사슴과이니 시 '청노루'의 노루가 시집 「청록집」의 사슴으로 전이되었을까요?
 
'청노루'. 푸른 몸빛을 지닌 노루의 실존 여부를 떠나, 시인님이 이 시의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노루의 몸에 푸른빛이 돈다고 생각하니 신령스러운 느낌이 드네요.
 
이 시 '청노루'가 세상에 나온 때가 1946년이니까 해방직후입니다. 세상은 얼마나 어수선했을까요? 일제 강점기를 지나오느라 사람들의 마음은 그동안 얼마나 어둡고 황폐해졌을까요?

그때 자연을 소재로 한 고요하고 맑은 서정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목욕시켜 주었던 시가 '청노루' 같은 청록파들의 시였네요.
 
'청노루'를 만나볼까요?
 
머언 산 청운사(靑雲寺) / 낡은 기와집
산은 자하산(紫霞山) / 봄눈 녹으면

- 박목월 시 '청노루' 중에서

 
시인님은 우리를 이제껏 가본 적이 없는 공간으로 데려왔네요.

과연 어떤 곳일까요?

‘머언 산’이라고 합니다. 인적이 없는 곳입니다. 거기 청운사(靑雲寺)라는 이름의 절이 있네요. ‘푸른 구름(靑雲)’이 절 이름에 들어있습니다. 예사롭지 않은 공간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산 이름도 자주색 ‘紫(자)’, 노을 ‘霞(하)’의 자하산(紫霞山)이네요. 자주색 노을이 드는 산, 푸른 구름이 머무는 절. 이곳은 얼마나 신령스러운 장소일까요? 환상적인 세계일 것만 같습니다.

'봄눈'. 겨우내 쌓인 잔설이 녹고 있습니다. 봄눈이 녹는 시간, 얼었던 대지가 풀리고 움츠렸던 만물이 약동하는 시간이네요.
 

"청노루맑은눈에도는구름"-박목월시'청노루'중에서.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 박목월 시 '청노루' 중에서.

 

 


3.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느름나무 / 속ㅅ잎 피어가는 열두 구비를
청노루 / 맑은 눈에 / 도는 구름 

- 박목월 시 '청노루' 중에서

 
느릅나무(느름나무) 속잎이 피는 시간입니다. 겨우내 몸을 닫고 있던 느릅나무들이 살며시 연둣빛 속잎을 꺼내고 있습니다. 자주빛 노을이 드는 자하산(紫霞山) 골짜기에서요.

‘속ㅅ잎 피어가는 열두 구비를’. 지금까지 짧게 이어오던 시행이 여기서 길어졌습니다. 이 때문에 시를 읽던 우리의 호흡도 덩달아 길어졌는데, 바로 다음 행에서 ‘청노루’ 한 마리가 등장했네요. 그래서 우리는 그 ‘열두 구비를’ 청노루가 거쳐 왔다는 사실을 짐작하게 됩니다.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몸에 푸른빛이 도는 신비로운 청노루는 구불구불한 산골짜기 ‘열 두 구비를’ 지나왔습니다. 그런데 청노루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며 왔네요. 구름을 보면서요. 그리하여 청노루의 맑고 깊은 눈동자에 구름이 돌고 있습니다.
 
구름을 쳐다보며 걷는 청노루!
 
시 속의 계절은 봄입니다. 청노루도 겨우내 추위에 몸과 마음을 웅크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나뭇가지마다 연둣빛 속잎이 돋아나는 시간, 신령스러운 청노루도 봄기운에 온몸이 간질거렸을까요? 꿈틀거리는 봄의 정취에 못 이겨 산골짜기를 여기저기 쏘아다니고 싶었을까요?
 
이 구절을 곰곰 되새김질하며 읽으니, 문득 우리도 하늘의 구름을 쳐다보며 걷는 청노루가 된 듯 마음이 간질거리고 이 골짝 저 골짝 기웃거리고 싶어지네요.
 
이 낭만 청노루가 어느 산어귀에 도착했습니다. 구름을 담고 있던 그 청노루의 맑고 깊은 눈동자에 잡힌 풍경입니다.
 
머언 산 청운사(靑雲寺) / 낡은 기와집 / 산은 자하산(紫霞山)

- 박목월 시 '청노루' 중에서


우리는 저마다 서정적인 청노루가 되었네요. 우리 눈앞에 자주빛 노을로 감싸인 자하산(紫霞山)이 있고요, 푸릇한 기운의 구름이 머무는 청운사(紫霞山)의 오래된 절집이 보이네요.

이 신비롭고 아름다운 자연, 그 너른 품 속에 아무 걱정 없이, 구별 없이, 욕망 없이 퐁당 빠져버리고 싶습니다. 얼마나 포근하겠는지요?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박목월 시인님의 시를 더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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