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좌석 중간 팔걸이는 과연 누구의 것일까요? 서울역에서 중간 팔걸이를 옆좌석의 낯선 이에게 선점당하고 부산까지 오게 된 억울한 이의 이야기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중간 팔걸이를 선점당하면 생기는 일
KTX 좌석은 사이좋게 나란히 2개인데 그 중간에 팔걸이는 하나 뿐입니다. 서로 잘 아는 지인끼리 앉으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서로 팔을 부딪혀가며 번갈아 중간 팔걸이를 이용하면 되니까요.
그런데 낯선 사람이 옆자리에 앉는다면, 그리고 그 낯선 이가 유별나게 팔걸이에 집착한다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문제가 좀 커집니다. 중간 팔걸이를 차지하려는 신경전이 벌어지는 겁니다.
그날 서울역에서 부산행 KTX 열차를 탔습니다. 그런데요, 옆에 앉은 타인이 좌석 중간 팔걸이를, 하나뿐인 그 팔걸이를 독차지한 채 풀지를 않는 것입니다. 마치 절대 양보하지 않겠으니 그리 알고 있어라는 듯이 왼쪽 팔뚝을 팔걸이에 딱 붙이고 있는 거예요.
처음에는 이 사람 몸피가 좀 커서 팔을 둘 데가 없으니 힘들어 그러겠지, 날씬한 내가 좀 양보하면 되지 하고 아무렇지 않게 넘겼답니다.
그런데요, 시간이 지날수록 스멀스멀 어두운 기운이 발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겁니다.
중간 팔걸이를 선점당한 '나'는 나의 당연한 권리를 빼앗긴 기분이 들고, 같은 돈을 지불하고 이런 손해를 왜 내가 감수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고, 팔을 둘 데가 없다는 생각만으로 온몸이 더욱 뒤틀려오고 ···. 오만가지 생각에 부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때 문득 이런 시 구절까지 생각났답니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 김수영 시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중에서
급기야는 이 시 구절처럼 이런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 내가 싫어서 또 화가 나고요. 아, 이 너덜너덜해진 기분으로 부산까지 가야 한단 말인가!
2. 중간 팔걸이는 왜 하나 뿐이어서 사람을 힘들게 하는지!
그 팔뚝 한번 내리기만 해봐라, 그때는 내가 잽싸게 그 중간 팔걸이 차지하고 부산까지 절대 양보치 않으리라. 그러나 그런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답니다. 이 일을 어쩌면 좋을지요?
평소 같으면 그냥 중간 팔걸이 존재조차 잊고 차창 밖 풍경을 보면서 편안하게 부산까지 왔을 텐데, 중간 팔걸이를 비워주지 않으려는 상대방의 태도를 인지하고부터 밖으로 표출할 수 없는, 안에서 끓는 분노의 용광로 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이었습니다. 내 마음 나도 알 수 없네요.
아니, KTX 운영사는 왜 중간 팔걸이를 달랑 하나만 만들어 선량한 국민을 이런 난국에 직면하게 하는가? 폭이 5cm 정도밖에 안 되는 좁은 팔걸이를 어떻게 두 사람이 나눠 쓰라는 말인가?
두 눈이 앞쪽을 향하고 있다고 어찌 옆이 보이지 않겠는지요? 5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옆사람은 아예 나라는 사람은 투명인간 취급하려고 작정한 듯 중간 팔걸이를 차지한 채 수면 모드로 들어가 있었답니다.
아, 내 팔걸이여! 아니, '내 팔걸이'라니. 이 좌석에 앉은 후 한번이라도 내 것인 적이 있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래, 그냥 양보하자. '양보'라고? 양보는 개뿔, 포기 아닌가. 아니 패배 아닌가. 중간 팔걸이 하나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는 못난이 같으니라고!
그래, 너 잘 났다. 그 팔걸이 마음껏 써라. 아예 거기에 붙어살 것처럼 편안해 보이는군. 아, 저 편안함이라니! 열차가 어두운 터널 들어갔을 때 넘어지는 척 확 밀치고 팔걸이를 차지해 버릴까. 오, 쿼바디스!
"중간 팔걸이는 누구 것?" - 'KTX 좌석 중간 팔걸이에 대한 명상' 중에서
3. 열차 안 악몽 속에서 외치다!
저, 옆에 앉으신 분요, 저는 부산까지 가는 빗방울이네라고 합니다. 그쪽이 차지하고 있는 그 팔걸이 말인데요, 그걸 보다 공정하게 사용하는 문제에 대해서 말인데요. 저도 같은 돈을 지불하고 열차표를 끊었으니 팔걸이를 사용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왜 웃으시나요? 아니, 먼저 차지한 사람이 임자라고요? 너무 말씀을 막 하시는 거 아닌가요?
아니, 이럴 거면 우리 둘 다 이 팔걸이 사용하지 않기로 합시다. 종착지까지 이 팔걸이를 그냥 비워두자고요, 네? 아니면 접어서 위로 올려 두든가요. 이 팔걸이는 서로 넘어오지 말라고 중간에 그으진 금이라고 여기자고요.
아, 아니 차라리 가위바위보로 정하면 어떨까요? 이긴 사람이 먼저 1시간 동안 사용하기로 하면 안 될까요? 아, 그것도 아니라면 아예 서로의 팔을 꼬아 팔걸이에 올려 손이라도 잡고 갈까요!
저, KTX 운영사 대표님, 저는 부산까지 가는 빗방울이네라고 합니다. 좌석 중간 팔걸이 때문에 울화가 치밀어서요. 옆 사람이 독차지하고 비켜주지를 않네요. 왜 이렇게 팔걸이를 하나만 달랑 만들어서 사람을 힘들게 하시나요? 중간 팔걸이를 사용하지 않는 대신 소정의 금액을 차비에서 빼 주시는 것이 공정하지 않겠는지요?
그건 안 된다고요? 겨우 그런 문제로 그렇게 흥분하냐고요? 민주 시민이니 서로 민주적으로 잘 협의해 문제를 해결하라고요?
아니, 그러면 방송으로 안내 멘트라도 한 번씩 넣어주시든가요. 이렇게요.
'자, 지금부터는 옆사람에게 중간 팔걸이를 양보하는 시간입니다. 중간 팔걸이를 사용하고 계시는 분은 지금 중간 팔걸이에서 팔을 치워주시기 바랍니다.'
그때였습니다. 중간 팔걸이 선점자였던 옆사람이 어깨를 툭 치네요. 아저씨, 이제 그만 일어나세요! 부산역 다 왔습니다.
꿈이었습니다. 중간 팔걸이를 선점당한 후 온갖 망상에 시달리다 잠이 들었던 것입니다. 악몽이었네요.
그런데 벌써 부산역이라니요, 나는 이때까지 중간 팔걸이 한 번도 사용하지 못했단 말입니다! 이대로는 내릴 수 없단 말입니다!
아, 이 원수 같은 중간 팔걸이, 과연 누구 것일까요?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행복한 삶을 위한 팁을 만나 보세요.
'읽고 쓰고 스미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석 시 고야 (105) | 2024.02.15 |
---|---|
국선도 오공법 변세 (104) | 2024.02.14 |
박목월 시 청노루 (108) | 2024.02.12 |
김남조 시 너를 위하여 (96) | 2024.02.11 |
동요 나뭇잎 배 박홍근 작사 윤용하 작곡 (110) | 2024.0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