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 시인님의 시 '꽃'을 만납니다.
그대는 꽃을 보기만 하시나요?
꽃봉오리 속으로 들어가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나요?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문태준 시 '꽃' 읽기
꽃
문태준(1970년~ , 경북 김천)
당신은 꽃봉오리 속으로 들어가세요
조심스레 내려가
가만히 앉으세요
그리고
숨을 쉬세요
부드러운 둘레와
밝은 둘레와
입체적 기쁨 속에서
▷문태준 시집 「아침은 생각한다」(창비, 2022년) 중에서.
2. 꽃봉오리 속으로 들어가는 마음에 대하여
문태준 시 '꽃'은 2022년 나온 시인님의 시집 「아침은 말한다」에 실린 시입니다.
시인님 50대 초반 즈음에 쓰인, 이 시집의 맨 앞에 실린 첫 시입니다.
시로 가는 길은 여러 길일 것입니다. 오늘은 '독서목욕'이 낸 작은 오솔길을 따라 이 시를 만나러 갑니다.
시 '꽃'은 한 권의 시집을 여는 첫 시라서, 시인님이 자신의 시의 집으로 우리를 초대하며 옷자락을 이끌며 하는 말일까요?
'당신은 꽃봉오리 속으로 들어가세요'
이렇게 말하는 시인님은 이 시집의 '시 속으로 들어가세요'라고 말하는 것만 같네요.
겉으로 쓱 읽고 시집을 덮어버리지 말고요, 시 '속'으로 들어가 달라고요.
어떻게 시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요?
'조심스레 내려가 / 가만히 앉으세요'
한 편의 시 속으로 들어가는 마음은 시인의 마음이 되는 일이겠습니다.
낮은 곳에 허름한 곳에 쓸쓸한 곳에 외진 곳에 있을 것이 분명한 시인의 마음으로 내려가는 일이겠습니다.
높은 곳에서 화려한 곳에서 들떠 있는 마음을 벗고 가만히 시인의 마음이 되는 일이겠습니다.
'그리고'
'그리고'를 독립된 하나의 행으로 배치했네요.
그만큼 '그리고' 이전의 상태와 멀리 떨어지게 거리를 두는 일이겠습니다.
그 거리는 시 속으로 들어온 우리의 마음이, 이 '그리고'라는 한 행을 음미하는 동안 시 밖에 있을 때와는 다른 마음으로 바뀌는 시간이겠습니다.
'숨을 쉬세요'
숨을 쉬고 있는 우리에게 시인님은 '숨을 쉬세요'라고 말하네요.
그러니 시 속으로 들어왔을 때의 '숨'은 시 밖에 있을 때 쉬었던 숨과 다른 숨이겠습니다.
숨을 쉬라는 것은 숨을 들여다보라는 말일까요?
들숨과 날숨이 코를 통해 드나드는 일을 바라보는 일 말입니다.
숨에 집중하고 자신에게 집중하는 일요.
고요하고 편안한 명상의 시간이 떠오르는 구절입니다.
'부드러운 둘레와 / 밝은 둘레와'
우리는 지금 시 속에 들어가 시인의 마음이 되어 숨을 쉬고 있습니다.
이 시가 시인에게로 처음 오던 길을 생각합니다.
한 편의 시의 착상이 처음 시인에게로 왔던 때의 반가움을 생각합니다.
그 작은 씨앗이 스스로 싹이 트고 시의 넌출이 뻗어가는 경이로움을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시인은 정작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다만 시인은 시인의 삶을 살았을 뿐일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생명을 위하고, 그 생명들이 생명답게 살 수 있도록 돕는 삶을 살았을 뿐일 것입니다.
진정으로 삶을 사랑하는 삶 말입니다.
그 삶의 현관에 흙발인 채로 성큼 들어선 것이 시일 것입니다.
그런 시는 얼마나 부드럽고 환한 지!
우리 마음을 얼마나 부드럽고 환하게 어루만져 주는지!
비록 슬픔과 아픔일지라도 시인의 마음을 통과한 그것은 우리의 내부를 부드럽고 밝은 기쁨으로 채워줄 것입니다.
'입체적 기쁨 속에서'
그 기쁨은 이전의 기쁨과 다를 것입니다.
단면적인 기쁨이 아니라 다면적이고 입체적인 기쁨일 것입니다.
나와 사물을 바르게 인식하며 세상을 이해하고 연민하는 시인의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기쁨 말입니다.
그런 기쁨은 세상을 연주하는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선율 속에 있는 것 같은 기쁨일까요?
3. 꽃봉오리 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구나!
'독서목욕'의 또 다른 오솔길을 따라 시 '꽃'을 만나러 함께 가 볼까요?
빗방울이네의 소중한 지인은 문태준 시인님의 시 '꽃'을 읽으면 호박꽃이 생각난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말입니다.
호박꽃도 꽃이냐니, 문태준 시인의 시 '꽃'으로 호박꽃만 한 게 있을까.
가끔은 만사를 잊고 호박꽃 동굴에 가만히 들어앉아 한없이 부드러운 둘레와, 한없이 밝은 둘레에 잦아들고 싶다.
그리하여 내 마음이 황금빛으로 물드는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 이원자 수필집 「어디쯤, 살아가는 중입니다」에 실린 수필 '다시 열공(熱工), 징후와 파노라마' 중에서.
정말 그렇네요. 호박꽃이 좋겠네요. 시 '꽃'의 첫 줄을 다시 읽어봅니다.
'당신은 꽃봉오리 속으로 들어가세요'
호박꽃의 꽃봉오리는 둥글고 길고 깊숙해서 그 속으로 내려가기 참 좋겠습니다.
샛노랗게 예뻐서 그 속에 어서 내려가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 꽃봉오리겠습니다.
'조심스레 내려가 / 가만히 앉으세요'
거칠게 내려가면 꽃이 다칠세라 조심스레 내려가야 하겠네요.
몸을 동그랗게 말고 꽃둘레에 닿지 않도록 조심조심요.
'그리고 / 숨을 쉬세요'
아, 꽃봉오리 속에서 숨을 쉬면 얼마나 향기로울까요?
'부드러운 둘레와 / 밝은 둘레와 / 입체적 기쁨 속에서'
꽃의 내부는 이처럼 부드러움과 밝음과 기쁨이 감싸고 있었네요.
그 꽃의 내부에 들어간 우리의 내부도 꽃의 내부처럼 부드러움과 밝음과 기쁨으로 충만하겠네요.
위 수필을 쓴 이원자 시인님처럼, 이런 상상만으로도 우리 마음은 '황금빛'으로 물들겠지요?
꽃의 내부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세상이라면 얼마나 부드럽고 밝고 기쁘겠는지요?
아, 꽃의 내부 같은 마음!
그런데요, 지금 우리는 참으로 꽃봉오리 속으로 내려가는 일에 대해 말하고 있었네요.
'당신은 꽃봉오리 속으로 들어가세요'
아니, 시인님! 어떻게 꽃봉오리 속으로 들어가라고 하시나요?
사람이 어떻게 그 작은 꽃봉오리 속으로 들어갈 수 있냐고요?
'당신은 꽃봉오리 속으로 들어가세요'
그러나 시인님은 꽃봉오리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가만히 생각하면, 지금까지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시인의 마음이라면(!) '꽃봉오리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음을 우리는 금방 알 수 있겠네요.
그러니 이 시 '꽃'은 우리가 꽃봉오리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알려준 첫 시가 될 것입니다.
'당신은 꽃봉오리 속으로 들어가세요'
우리는 이 첫 구절로 인해 우리가 꽃봉오리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되었습니다.
아, 꽃을 보는 것만이 아니라 '꽃봉오리 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겠구나!
'꽃봉오리 속으로' 들어간다는 이 멋진 발명!
우리도 한 마리 꿀벌처럼 온몸에 꽃가루를 묻히고 꽃봉오리 속으로 들어갈 수 있구나!
문득 꽃봉오리 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어지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꽃봉오리 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어지는 마음은 얼마나 동화 같은, 아이 같은 마음인지!
그 마음의 내부는 얼마나 부드럽고 밝고 기쁜 내부인지!
자, 지금 우리 저마다의 꽃봉오리 속으로 들어가십시다!
'조심스레 내려가 / 가만히 앉으세요'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문태준 시인님의 시를 더 만나 보세요.
문태준 시 가재미
문태준 시인님의 시 '가재미'를 만납니다. 아프고 막막하지만 우리의 마른 가슴을 촉촉히 적셔주는 아름다운 시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문태준 시 '가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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