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운 시인님의 시 '님의 침묵(沈默)'을 만납니다.
2025년으로 탄생 100년이 된 시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시에서 어떤 삶의 국면을 만날 수 있을까요?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한용운 시 '님의 침묵(沈默)' 원문 읽기
님의 沈默
한용운(1879~1944, 충남 홍성)
님은갓슴니다 아々 사랑하는나의님은 갓슴니다
푸른산빗을깨치고 단풍나무숩을향하야난 적은길을 거러서 참어떨치고 갓슴니다
黃金의꼿가티 굿고빗나든 옛盟誓는 차듸찬틔끌이되야서 한숨의微風에 나러갓슴니다
날카로운 첫「키쓰」의追憶은 나의運命의指針을 돌너노코 뒤ㅅ거름처서 사러젓슴니다
나는 향긔로은 님의말소리에 귀먹고 꼿다은 님은얼골에 눈머럿슴니다
사랑도 사람의일이라 맛날때에 미리 떠날것을 염녀하고경계하지 아니한것은아니지만 리별은 뜻밧긔일이되고 놀난가슴은 새로은슯음에터짐니다
그러나 리별을 쓸데업는 눈물의源泉을만들고 마는것은 스々로 사랑을깨치는것인줄 아는까닭에 것잡을수업는 슯음의힘을 옴겨서 새希望의 정수박이에 드러부엇슴니다
우리는 맛날때에 떠날것을염녀하는것과가티 떠날때에 다시맛날것을 밋슴니다
아々 님은갓지마는 나는 님을보내지 아니하얏슴니다
제곡조를못이기는 사랑의노래는 님의沈默을 휩싸고돔니다
▷한용운 시집 「님의 沈默」(초간희귀 한국현대시 원본전집 23 - 1926년판, 문학사상사) 중에서.
위의 시 '님의 침묵'은 원문인데, 고친 부분이 조금 있습니다.
지금의 컴퓨터 자판에서 입력이 불가능한 쌍자음만 현대어로 고쳤습니다.
고친 쌍자음 부분은 아래와 같습니다.
시 속의 '깨치고' '깨치는' '꼿가티' '꼿다은'의 'ㄲ'은 원문에는 모두 'ㅅㄱ'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또한 '떨치고' '맛날때에' '뜻밧긔' '떠날 것을' '떠날 때에'의 'ㄸ'은 'ㅅㄷ'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틔끌'의 'ㅌ'은 'ㅅㄷ', 뒤의 'ㄲ'은 'ㅅㄱ'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2. '님만 님이 아니라 긔룬 것은 다 님이다'에서 '긔룬 것'의 뜻은?
다행히도 1926년에 나온 한용운 시인님의 시집 「님의 침묵(沈默)」을 원형으로 볼 수 있는 책이 도서관에 있었습니다.
원본 시집을 그대로 복제한 영인본(「초간 희귀 한국현대시 원본전집」, 문학사상사)이었지만, 원본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반가운 책이었습니다.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이 보았던 시집, 이 영인본 시집 「님의 침묵(沈默)」을 살며시 펴봅니다.
시집 표지를 여니 '군말'이라고 제목을 단 글이 있군요. 오늘날 시집 앞머리에 쓰는 '시인의 말'인 셈입니다.
모두 8줄의 문장이 세로로 적혀 있는 '군말'의 첫 문장은 이렇습니다.
'님만 님이 아니라 긔룬 것은 다 님이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은 이렇습니다.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도러가는 길을 일코 헤매는 어린 양이 긔루어서 이 시를 쓴다'
첫 문장과 끝문장에 들어가는 '긔룬 것' '긔루어서'라는 말이 눈에 밟히네요.
보통 '그립다'로 풀이되는데, 빗방울이네가 보기에 이는 '그립다'보다 더 애절한 뉘앙스를 지닌 어휘입니다.
'돈이 긔립다'는 말을 생각해 봅니다. 어릴 때 빗방울이네가 이웃 할머니들로부터 가끔 들었던 문장입니다.
과연 이 문장은 '돈이 그립다'라는 뜻일까요? 할머니의 탄식 같은 문장을 찬찬히 들여다봅니다.
'요새 돈이 긔루어서 못살겠네'
'돈이 긔립다'는 '지금 돈이 없어 궁핍하다'는 상황이 더 많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이어서 '돈이 있었으면 좋겠다', 굳이 말하자면 '돈이 그립다'로 이어지겠지요?
'긔립다'의 이런 뉘앙스를 품고 '군말'에 나온 '긔룬 것은 다 님이다'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양이 긔루어서'를 음미해 봅니다.
곰곰 들여다보면, 두 구절 속의 '긔립다'는 있어야할 것이 나에게 없는 마음의 상태입니다.
그래서 '긔립다'는 마음속의 결핍과 슬픔이 팔 할, 희망과 기대는 이 할 정도로 채워진 어휘라고 할까요?
그러므로 시인님이 '군말'에서, 또 시인님이 쓴 '님의 침묵'을 비롯한 여러 시에서 애타게 부르는 '님'은 나에게 있어야 할 것이 없어서 나를 슬프게 하는 대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님만 님이 아니라 긔룬 것은 다 님이다'는 시인님의 '군말', 이제 가슴으로 쏙 안겨들어오는 것 같네요.
'긔룬 님'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괜찮은 님이 아닙니다. 나에게 꼭 있어야되는 존재입니다. 없으면 나라는 존재는 무너지고 마는 중요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긔룬 님'은 사랑하는 연인이나 친구, 부모님, 조국, 절대자 같은 여러 존재를 떠올릴 수 있겠습니다.
지금 그대에게 가장 '긔룬 님'은 누구인가요?

3. '님의 침묵'은 한용운 시인의 유일한 시집의 첫 시
오늘 만나는 시 '님의 침묵'은 한용운 시인님의 시집 「님의 침묵」의 첫 시입니다.
이 시집 원본을 보니, 모두 88편의 시가 실려 있는데 맨 앞자리에 시 '님의 침묵'이 배치되어 있네요.
우리가 사랑하는 '알 수 없어요' '나룻배와 행인' '복종' 같은 시들도 이 시집 속에 고요히 앉아 있고요.
「한용운 시전집 - 님의 침묵」(권영민 엮음, 문학사상)에 실린 '한용운 연보'에 따르면, 시인님은 1926년 48세에 이 시집을 낸 이후 1944년 세수 66세를 일기로 입적하기까지 장편소설과 한시, 시조를 많이 남겼지만 시집을 따로 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시집 「님의 침묵」은 한용운 시인님의 첫 시집이자 생전에 남긴 유일한 시집입니다.
첫 시집 첫 시는 각별한 의미가 있겠네요.
첫 시집의 첫 주자인 시 '님은 침묵'은 시인님의 시의 길과 삶의 길을 함축하고 있는 대표 시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한국 불교 청년운동 및 불교의 대중화에 앞장선 승려-.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불교계 대표 인물-.
일제 식민치하에서 민족독립을 위해 투쟁한 저항적 지식인-.
한용운 시인님의 이 같은 캐릭터를 마음에 새기며 시 '님의 침묵'을 만나러 갑니다.
아래에 소개한 시에서, 원문 아래 푸른색 시행은 「님의 침묵 원본비평연구」(이기성 편, 소명출판, 2015년)에 실린, 연구자가 시 발표 후 텍스트의 왜곡과 변형을 바로잡아 원형으로 복원한 정본입니다.
원문(위)과 현대어 정본(아래 청색)을 비교하면서 음미해 봅니다.
그런데 막상 시 '님의 침묵'을 마주하니 마냥 막막해지네요.
학창 시절 어려운 국어문제의 단골이라서 그럴까요?
그러나 이제는 좀 가벼운 마음으로, 자유로운 마음으로 이 시를 읽고 싶습니다.
시집 「님의 침묵」의 발간은 1926년이지만 탈고한 때는 1925년이므로 시 '님의 침묵'은 2025년으로 탄생 100년이 된 시입니다.
'긔룬 것은 다 님'이라는 시인님의 문장을 새기며, 100년 후 오늘의 우리는 저마다의 '님'을 떠올려봅니다.
사랑했던 연인, 부모님, 친구··. 나에게 소중하고도 소중했던, 나에게는 하늘과도 같았던 이와의 결별의 순간을 생각해 봅니다.
'님은갓슴니다 아々 사랑하는나의님은 갓슴니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원문의 '々'는 같은 글씨의 반복 부호입니다.
'긔루운 님'과의 이별 앞에서 우리가 몸속의 진액을 다 짜내며 내뱉는, 슬픈 비명 같은 문장이네요.
이 구절은 또한 매우 극적인 느낌을 주네요.
무대에 선 시인님이 두 팔을 벌려 들고 공중을 쳐다보며 관객인 우리에게 님을 잃은 소식을 전하면서 그 원통함을 호소하는 것만 같습니다.
날벼락같은 소중한 님과의 이별의 시간, 누구라도 그렇게 몸부림칠 수밖에 없겠지요?
'푸른산빗을깨치고 단풍나무숩을향하야난 적은길을 거러서 참어떨치고 갓슴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이별의 날벼락이 얼마나 충격적인 것인지 짐작케 하네요. '푸른 산빛'이 깨뜨려지는 것 같은, 세상이 온통 무너지는 것 같은 시간입니다.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차마'는 '부끄럽거나 안타까워서 감히'라는 뜻인데 뒤에 오는 동사를 부정하는 문맥에 쓰입니다.
그러니 이 구절은 '차마 떨치지는 못할 것을 떨치고 갔습니다'이겠습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차마 ··· 떨치고 갔습니다'처럼, 흐느낌에 말을 잇지 못하는 뉘앙스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울음소리가 들리는 구절이네요.
'黃金의꼿가티 굿고빗나든 옛盟誓는 차듸찬틔끌이되야서 한숨의微風에 나러갓슴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일반적으로 '맹세'를 많이 쓰는데, 시 속의 '맹서(盟誓)'가 원말입니다.
'황금의 꽃'이 '차디찬 티글'이 되었다는 것도 앞 구절의 '푸른 산빛을 깨치고'처럼 이별의 충격과 절망을 느끼게 하네요.
'한숨'은 '긴장했다가 안도할 때 길게 내쉬는 숨'보다는 '숨을 한번 쉴 동안'의 의미로 새겨봅니다.
그렇게 잠깐 동안의 약하게 부는 바람(미풍)에도 '옛맹서'가 '티끌'이 되어 날아가버린 허무함이 느껴지는 구절입니다.
진정으로 사랑한다. 하늘이 무너져도 떠나지 않아. 영원히 곁에 있을게. 우리의 말은 때로 얼마나 티끌 같은지!
'날카로운 첫「키쓰」의追憶은 나의運命의指針을 돌너노코 뒤ㅅ거름처서 사러젓슴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시인님은 '키쓰'라는 단어에 홑낫표(「」)를 씌워 놓았네요.
그만큼 강조하고 싶은 단어였겠습니다. 님과 나와의 첫 접촉!
그런데 첫 키스를 달콤하다고 하지 않고 왜 날카롭다고 했을까요?
'날카롭다'는 '끝이 뾰족하거나 날이 서 있다' '생각하는 힘이 빠르고 정확하다' '모양이나 형세가 매섭다'라는 뜻입니다.
시 속의 '날카로운'에서는 물리적인 뾰족함보다는 어떤 감정이 폭풍처럼 거대하고 빠르게 몰아치는 형세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런 첫 키스의 회오리 속에서는 정신을 도무지 차릴 수 없다고 할까요?
그렇게 날카로운 첫 키스로 나의 운명을 바꿔놓았던 님이었는데 이제 뒷걸음쳐서 사라졌다고 하네요. 얼마나 애통할지요?
'나는 향긔로은 님의말소리에 귀먹고 꼿다은 님은얼골에 눈머럿슴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은 귀먹고 눈머는 일이네요.
님의 말 말고는 다른 말은 들리지도 않습니다.
님의 얼굴 말고는 다른 얼굴은 보이지도 않습니다.
님은 나의 전부이자 주인님, 나는 그저 님의 포로여서 좋습니다.
님이 하자는 대로 다하고 님이 가자는 대로 다 갑니다.
불구덩이에 함께 들어가자 해도 가고, 얼음판 위에서 잠을 자자해도 잡니다.
님과 함께라면 나는 무슨 일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그대의 님이라는 존재도 바로 그런 존재이지 않은가요?
'사랑도 사람의일이라 맛날때에 미리 떠날것을 염녀하고경계하지 아니한것은아니지만 리별은 뜻밧긔일이되고 놀난가슴은 새로은슯음에터짐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이 구절의 '새로운 슬픔'은 무슨 뜻일까요?
그동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새롭다'의 뜻을 국어사전을 통해 새겨봅니다.
①'지금까지 있은 적이 없다' ②'전과 달리 생생하고 산뜻하게 느껴지는 맛이 있다' ③'매우 절실하게 필요하거나 아쉽다'는 뜻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②의 뜻으로 많이 쓰지만, 이 시에서는 ①의 뜻으로 새겨봅니다. 참고로 ③의 예문으로 '단돈 만 원이 새로운 형편이다'라는 문장을 보았는데, 무척 새롭네요!
그러므로 시 속의 '새로운 슬픔'은 '지금까지 있은 적이 없는 슬픔'이네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경험해보지도 못한 크나큰 슬픔이라는 느낌이 전해져 오네요.
4. 제목 '님의 침묵'이 뜻하는 것은?
아래 7행부터 시의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이별의 슬픔에 빠져 괴로워하던 시인님이 마음을 추스르는 대목입니다.
'그러나 리별을 쓸데업는 눈물의源泉을만들고 마는것은 스々로 사랑을깨치는것인줄 아는까닭에 것잡을수업는 슯음의힘을 옴겨서 새希望의 정수박이에 드러부엇슴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은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눈물을 흘린다고 님이 올까요? 그런 눈물은 쓸데없다고 하네요.
그런 '쓸데없는 눈물'은 '우리의 소중한 사랑'을 깨뜨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 뒤에 이어지는 '슬픔의 힘'이라는 구절이 눈에 박힙니다.
시인님의 다른 시 한 구절이 문득 떠오르네요.
나는 당신 가신 뒤에 이 세상에서 얻기 어려운 쾌락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이따금 실컷 우는 것입니다.
- 한용운 시 '쾌락' 중에서.
이때의 울음은 내면의 깊은 곳에서 솟는 울음일 것입니다.
그런 슬픔은 자신을 관조(觀照)하여 씻어내는(淨化) 힘이 있습니다.
'정수박이'는 '정수리'의 비표준어(강원도 사투리)입니다. 정수리는 머리 위의 숫구멍(숨구멍)이 있는 자리입니다.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이부었습니다'
이 구절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정수리에 맑고 차가운 물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만 같습니다.
조금만 슬퍼해야겠습니다. 슬픔에 잠식당하지 않아야겠습니다.
슬픔의 원인과 그 결과를 직시하면서 시인님처럼 슬픔에서 빠져나와야겠습니다.
'우리는 맛날때에 떠날것을염녀하는것과가티 떠날때에 다시맛날것을 밋슴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이 구절의 위안에 기대어 슬픔을 견디는지!
만남 속에는 이미 이별이 예정되어 있을 것입니다. 영영 함께 할 것 같아도 우리는 언젠가는 헤어지게 되어 있으니까요.
그러므로 이별 속에도 만남이 예정되어 있을 것입니다. 영영 헤어져 있을 것 같아도 우리 언젠가는 다시 만날 테니까요. 어떤 형태로든 말입니다.
그런 믿음 하나로 이별의 슬픔을 견디고 있는 우리들!
'아々 님은갓지마는 나는 님을보내지 아니하얏슴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이 9행이 아주 의미심장한 구절이네요. 이 시의 가장 높은 곳, 우듬지 같습니다.
이 구절의 뜻은 무얼까요? 혹시, '님이 간 것이지, 내가 님을 보낸 것이 아니다'라는 말일까요?
빗방울이네는 이 구절에서 떠나간 님이 아직 내 곁에 있다는 놀라운 장면이 숨어있는 것만 같습니다.
'나는 님을보내지 아니하얏슴니다'
그 님은 여전히 나의 내부에, 또한 외부에 존재하고 있다는 말이네요.
몸이 가버린 그 소중한 이가 여전히 나에게 있다는 말, 그런 믿음은 얼마나 애절한 것인지!
'긔루운 님'은 이렇게 나로부터 도저히 빼낼 수 없는 못입니다.
이렇게 빼낼 수 없는, 저마다의 가슴에 박힌 못이 뚜렷이 느껴져 가슴이 미어지는 구절입니다.
'제곡조를못이기는 사랑의노래는 님의沈默을 휩싸고돔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앞의 9행에 들어있던 열쇠로 우리는 이 시의 마지막 10행과 이 시의 제목 '님의 침묵(沈默)'에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되었네요.
침묵이란 아무 말 없이 잠잠히 있는 상태입니다.
'님의 침묵'은 님이 아무 말도 없이 잠잠히 있는 상태입니다.
님의 부재(不在) 상태이지만 내 곁에 있다는 암시가 느껴지는 제목이네요.
님의 형상이 나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어진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만 같습니다.
공유했던 시간들, 기억들 속에, 앞으로 다가올 수많은 시간들 속에 여전히 나에게 남아 있는 님이니까요.
사물의 이면(裏面)을 보지 않고 당장 눈에 보이는 부분만 믿었던 시간들을 돌아보게 되는 구절입니다.
반야심경의 문장 '부증부감(不增不減)'이 떠오르네요.
늘어나는 것도 줄어드는 것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나에게는 떠나간 님이지만 연기(緣起) 하는 법계(法界)에서는 변함없이 존재한다는 말이네요.
이런 문장은 얼마나 높고 높은 곳으로부터 오는 것인지!
시 '님의 침묵'을 첫 시집 첫 시로 걸어놓고 삶의 길 시의 길의 간 시인님, 자유롭고 허허로웠을 그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자잘한 일상의 일에 얽매여 아파하고 슬퍼하는 우리입니다.
이제 시인님의 '사랑의 노래'로 조금은 자유롭고 허허로워질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한용운 시인님의 시를 더 만나 보세요.
한용운 시 알 수 없어요 원문
한용운 시인님의 시 '알 수 없어요'를 만납니다. 절대자를 향한 끝없는 구도와 정진의 다짐, 그리고 잃어버린 조국의 광복을 향한 뜨거운 염원이 담긴 시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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