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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정태춘 박은옥 콘서트 몇 가지 풍경들

by 빗방울이네 2025.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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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춘 박은옥 콘서트를 다녀온 감상글입니다.

 

콘서트를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보는 걸까요?

 

노래는 창(窓)인 것 같습니다. 그 창을 통해 자신을 보는 걸까요?

 

무릎 위에 작은 노트를 펼쳐놓고 본 콘서트였습니다.

 

어두운 객석에서 보이지 않는 노트 위에 기록한 가수님의 말들 문장들 그리고 그 느낌들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침대처럼 받아주고 이불처럼 덮어주는 일에 대하여

 

정태춘 박은옥 12집 앨범 「집중호우 사이」 발매 기념 콘서트 '나의 노래 나의 시'를 보았습니다(5월 17일 저녁, 부산시민회관).

 

콘서트의 시작은 정태춘 님의 노래 '떠나가는 배'였어요.

 

'저기 떠나가는 배 거친 바다 외로이···'

 

그런데 이 첫 노래 첫 노랫말에 바로 울컥해지네요.

 

우리는 한 척의 외로운 배처럼 험난한 삶의 바다를 저어 가고 있는 걸까요?

 

빗방울이네에게 정태춘 님의 목소리는 푹신한 침대 같다고 할까요?

 

편안한 침대에 '거친 바다 외로이' 저어가던 마음을 풍덩 던지고 싶은 목소리 말입니다.

 

박은옥 님의 노래 '회상'이 이어졌습니다.

 

'세월은 쉬지 않고 파도를 몰아다가 바위 가슴에 때려 안겨주네···'

 

박은옥 님의 목소리는 이불 같다고 할까요? 목화솜 이불요.

 

세월의 크고 작은 파도에 시달리느라 지친 저마다의 가슴을 덮어주는 이불요. 잠든 이가 깰까 고이 덮어주는 이불 말입니다.

 

'가슴 슬픈 사랑 그 누가 씻어주리 음···'

 

이 구절에서는 박은옥 님의 목화솜 이불 같은 목소리가 우리네 '슬픈 사랑'을 살며시 덮어주고 다독여주는 것만 같았답니다.

 

'촛불만 하염없이 태우노라 이 밤이 다가도록···'

 

이어진 노래 '촛불'에서는 왜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요?

 

나중에 어둠 속에 적은 작은 노트를 펼쳐보니 휘날리는 글씨로 이렇게 적혀있네요. 

 

- 더욱 사랑해야 하리, 삶의 순간들을, 그 느낌들을, 가까이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촛불'은 이렇게 사람을 간절하게 하네요. 간절함은 우리를 얼마나 겸허하게 낮게 하는지요?

 

2. 무대 스크린에 비친 정태춘의 얼굴에 대하여

 

데뷔곡 '시인의 마을'을 부를 때, 정태춘 님의 얼굴이 무대의 대형 화면에 클로즈업되었어요.

 

그의 얼굴을 본 순간, 빗방울이네는 예의 그 어두운 객석에서 작은 노트에 이런 메모를 했었네요.

 

- 오, 늙었다 잘. 어눌하고 허술하고 순진하기 그지없이 잘. 착하고 순하고 담담하고 당당하게 잘. 겸손하고 꼿꼿하게 잘. 빼곡하고 텅 비게 잘 늙었다. 나는?

 

그러게 말입니다. 빗방울이네도 저렇게 늙어갈 수 있을까요? 

 

푸른색이 도는 셔츠에 검은색 라운드티를 받쳐 입고, 아래는 좀 끼는 짙은 색의 바지를 입은 1954년생의 가수는 이날 무대에서 이런 시를 우리에게 들려주었답니다.

 

'내가 부른 것들은 내가 만들지 않았다. 그것들이 어디선가 내게로 왔다'

 

1978년 '시인의 마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50여 년 동안 사랑하며 저항하며 자유를 향하며 노래하며 걸어온 가수의 고백입니다.

 

낮은 것들, 힘없는 것들을 아끼고 사랑하고, 얽매임과 부조리에 저항하며 인간으로 누려야 할 마땅한 자유를 위해 노래한 가수의 고백요.

 

후미진 객석에 앉아 빗방울이네는 알게 되었습니다.

 

빗방울이네가 사랑하며 좇아온 그의 노래의 삶은 꾸미지 않고 경쟁하지 않고 거짓 없고 높지 않고 낮은 것이었음을요.

 

그런 모습은 언제나 '내편'이라는 느낌을 준달까요?

 

이날 콘서트에서 빗방울이네는 두 분이 부른 노랫말 속의 꽃들이 자꾸 눈앞에 어른거렸답니다.

 

민들레 노랑꽃 햇살만 기다리고 - 노래 '민들레 시집'에서

 

이제 그만 놓아라 놓아주어라, 마당 가의 가을 민들레 - 노래 '솔미의 시절'에서

 

손톱 끝에 봉숭아 빨개도 몇 밤만 지나면 질 터인데 - 노래 '봉숭아'에서

 

저녁 해는 기울고 뜰엔 빨간 분꽃이 피고 - 노래 '수진리의 강'에서

 

올여름엔 파란 수국을 기다리지 않겠다 - 노래 '집중호우 사이'에서

 

이 노랫말 속에 나온 꽃들 - 민들레, 봉숭아, 분꽃, 수국은 모두 낮은 곳에서 피는 소박한 꽃들입니다.

 

이 노랫말을 직접 쓴 정태춘 님의 시선이 닿은 곳이겠네요.

 

낮고 소박한 꽃을 애달파하는 마음은 삶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그런 삶을 살아가는 생명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그 갯벌 키 작은 갈대밭 붉은 다리의 어린 농게들이

질퍽한 각자의 참호에서 간지러운 햇살 기다리리라

- 노래 '집중호우 사이' 중에서

 

이번 신곡 '집중호수 사이'에 나오는 노랫말에 닿는 순간 우리는 한 마리 '어린 농게'가 된 마음에 이르게 됩니다.

 

삶이라는 '질퍽한 각자의 참호'에서 희망이라는 햇살을 기다리며 두리번거리는 농게가 된 듯한 마음 말입니다.

 

그 마음은 얼마나 가난하고 맑고 높은 마음인지!

 

"붉은_다리의_어린_농게들이_질퍽한_각자의_참호에서"-정태춘_노래_'집중호우_사이'_중에서.
"붉은 다리의 어린 농게들이 질퍽한 각자의 참호에서" - 정태춘 노래 '집중호우 사이' 중에서.

 

3. 낮고 소박한 것, 자유를 지향하는 삶에 대하여

 

2부 공연에서 노래 '북한강에서'가 시작될 즈음 정태춘 님의 얼굴이 다시 무대 스크린을 가득 채웠습니다.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주름진 그 얼굴을 보는 순간, 빗방울이네가 좋아하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의 얼굴이 그 위에 겹쳐졌습니다.

 

짝꿍 풀잎, 그리고 얼마 전 함께 산에 갔던 K형, 녹차를 좋아하는 M형, 평생 무거운 카메라를 메고 다니는 L, 그리고 C ···.

 

이들은 어쩌면 빗방울이네의 그림자 같은 사람이랄까요? 흐르는 물 같은 사람이랄까요?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투정 부리지 않고, 스스로 허허롭고 자유로운 사람 말입니다.

 

빗방울이네도 그 소중한 이들에게 그런 사람이었으면요. 그저 그림자 같은 이, 그저 흐르는 물 같은 이 말입니다.

 

정태춘 님은 이번 공연에서 더 자유로워진 모습이었습니다.

 

언제 적 청춘이냐, 언제 적 사랑이냐

강물 소리 없이 봄날은 간다

- 정태춘 노래 '정산리 연가' 중에서

 

'정산리 연가'를 객석과 함께 부를 때 그는 연분홍 탬버린을 손에 들고 흔들었어요.

 

이 노래는 이번 새 앨범에 실린 트로트 2곡 중 하나인데,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노래입니다.

 

신이 난 그는 지휘자처럼 허공에 손을 휘젓기도 하고요, 무대 여기저기를 오가며 춤을 추기도 했습니다. '둠칫둠칫'이긴 했지만요.

 

탬버린, 지휘자, 둠칫-. 이 모두 그의 무대에선 드문 일이었지요.

 

노래가 끝나자 어두운 객석에서 누군가 소리쳤습니다.

 

"춤, 멋져요!"

 

그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앞으로 여건이 된다면 무대 위에서 춤추면서 노래하고 싶어요"

 

작은 노트를 보니 '큰 봄'이라는 두 글자가 비뚤비뚤 날리는 글씨로 적혀 있네요.

 

아마 그 메모의 순간 어둠 속에서 빗방울이네는 '정태춘(鄭泰春)'이라는 이름을 떠올렸나 봅니다. 큰(泰), 봄(春) 말입니다.

 

봄은 멀리서 오고 누군가 함께 오고

- 노래 '민들레 시집' 중에서.

 

봄은 멀리서 온다고 하네요.

 

그렇게 멀리서 오는 봄은 혼자 오지 않고 누군가 함께 온다는 말이 좋습니다.

 

이름처럼 우리에게 따스한 봄을 건네주고 스스로 따신 봄이 되어주는 '큰 봄' 정태춘 님-.

 

그 '큰 봄' 나란히 화사한 봄 박은옥 님-.

 

훗날 돌아보면 빗방울이네도 낮고 소박한 것을 사랑하며, 자유를 지향하는 삶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정태춘 박은옥 님의 아름다운 노래를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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