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요 '과수원길' 가사와 단소보를 만납니다.
이 아름다운 동요에는 어떤 애틋한 사연이 깃들어 있을까요?
함께 부르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동요 '과수원길' 가사
과수원길
박화목 작사, 김공선 작곡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네
하이얀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향긋한 꽃 냄새가
실바람 타고 솔솔
둘이서 말이 없네
얼굴 마주 보며 쌩긋
아카시아꽃 하얗게 핀
먼 옛날의 과수원길
과수원길
▷「시원한 어린이 동요1」(어린이 음악, 2014년, 애플뮤직) 중에서.
2. '둘이서 말이 없네 얼굴 마주 보며 쌩긋'에 대하여
'과수원길'은 1972년 탄생한 동요입니다.
올해(2025년)로 53년 흐른 동요인데, 여전히 사랑받은 우리 국민동요입니다.
가사도 멜로디도 참 포근한 느낌을 줍니다.
동요 '과수원길'의 백미는 바로 이 구절인 것만 같습니다.
'둘이서 말이 없네 얼굴 마주 보며 쌩긋'
둘이서 걷고 있는데 문득 바람에 실려온 아카시아꽃 냄새가 느껴집니다.
그 순간, 두 사람은 어떻게 하겠는지요?
'둘이서 말이 없네 얼굴 마주 보며 쌩긋'
아무 말이 필요 없는 순간이네요.
때로 이런 순간은 우리를 공중으로 얼마나 높이 들어 올려주는지!
'얼굴 마주 보며 쌩긋' 속에 든 들어 있는 말은 무얼까요?
아, 꽃 냄새 참 좋아, 그쟈?
함께 걷고 있는 사람은 나와 함께 똑같은 꽃 냄새를 느끼고 있는 사람입니다.
아마도 둘은 똑같은 행복을 느끼고 있겠네요.
이렇게 '향긋한 꽃 냄새'로 두 사람이 하나 되는 순간이네요.
'향긋한 꽃 냄새가 실바람 타고 솔솔'
며칠 전 빗방울이네는 짝꿍 풀잎과 함께 저녁산책을 나갔습니다.
어둑어둑한 아파트 골목길을 걷고 있는데 불현듯 꽃 냄새가 솔솔 나는 거였습니다.
어두워서 꽃나무는 보이지 않고 냄새만요.
우리는 홀린 듯 그 냄새를 따라갔습니다.
코를 킁킁거리며 아파트 모퉁이를 돌았는데요, 다시 냄새를 따라 체육공원으로 가는 어두운 계단을 올라가야 했답니다.
거기 체육공원 위에 냄새를 풍긴 녀석들이 떡 하니 서 있었어요.
키가 큰 아카시아꽃나무들요.
어둠 속에서 기다란 가지마다 '하이얀 꽃 이파리'들을 흐드러지게 피워놓고 흔들고 있지 뭡니까?
아카시아꽃 냄새는 얼마나 매혹적인지요?
아카시아꽃나무는 또 얼마나 힘이 좋은지요?
어둠 속에서 멀리 있던 우리를 이렇게 가까이 부르는 힘, 그 나무 아래에서 '과수원길'을 흥얼거리게 하는 힘요.
이렇게 말입니다.
'향긋한 꽃 냄새가 실바람 타고 솔솔'
가사의 '꽃 냄새'라는 표현은 '꽃 향기'라는 말보다 더 육감적이어서 좋네요.
날 것 그대로의 '것'이 코를 통해 몸에 훅 끼쳐 들어오는 느낌요.
'아카시아꽃 하얗게 핀 먼 옛날의 과수원길'
그런데요, 왜 '먼 옛날의 과수원길'이라고 했을까요?
동요 '과수원길'의 가사는 박화목 시인님(1924~2005년, 황해도 황주)이, 멜로디는 김공선 작곡가님(1929~2014년, 강원도 고성군 장전읍)이 붙였습니다.
서로 친한 벗이었다는 두 사람의 공통점은 북한이 고향인 실향민이라는 점입니다.(강원도 고성군 장전읍은 해방 이전 행정구역으로, 북한지역인 현재의 고성읍)
그래서 이 '과수원길' 가사에, 또 가락에도 고향에 가지 못하는 실향민의 애환과 그리움이 담겨있었네요.
아동문학가 박화목 시인님은 1946년에 월남했습니다. 22살 때네요.
'과수원길' 속의 길은 월남하기 전, 어릴 때 고향에서 누군가와 걷던 과수원길이었네요.
'먼 옛날의 과수원길', 시인님은 어린 시절 고향의 그 공간과 그 시간을 애타게 그리워하고 있네요.
이제는 영영 갈 수 없는 고향이라는 생각에 얼마나 가슴 막막했겠는지요?
가곡 '보리밭' 아시지요?
이 가곡의 노랫말도 '과수원길' 노랫말을 지은 박화목 시인님이 지은 것입니다.
원래는 '옛생각'이란 제목의 동시였는데, 가곡이 되면서 '보리밭'으로 제목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보리밭 사잇길로 /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 나를 멈춘다
옛 생각이 외로와 / 휘파람 불면
고운 노래 귓가에 / 들려온다
둘러봐야 아무도 / 보이지 않고
저녁놀 빈 하늘만 / 눈에 가득 차네
- 박화목 동시 '옛생각'(가곡 '보리밭'의 원래 제목) 중에서
이 노래의 작곡가인 윤용하 님(1922~1965년, 황해도 은율)도 월남한 실향민입니다.
박화목 윤용하 두 사람 모두 황해도가 고향인데, 전쟁 통이던 1951년 부산에 피난온 두 사람이 의기투합해 노래 '보리밭'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가곡 '보리밭', 그리고 동요 '과수원길'. 두 노랫말 속의 그림 같은 풍경은 모두 북한이었네요.
두 노래 모두 분단으로 고향 잃은 예술가들의 애절한 그리움이 진하게 스며있는 노래였네요.
그랬으니 우리도 저마다의 무언가에 사무쳐 이 노래들을 사랑하게 되었을까요?
고향을 향한 그 분들의 애절한 그리움이 상실과 허무의 가슴들을 어루만져주었네요.
지금은 모두 영면하신 박화목 김공선 윤용하 님, 이렇게 고운 노래들을 이 땅에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3. 동요 '과수원길' 단소로 연주하기
동요 '과수원길'에 단소 음을 달아봅니다.
오선보보다 두 음 높게 잡고 7공 단소로 불어봅니다.
불어보니, 어디선가 아카시아꽃 냄새가 나는 듯 아련한 음률에 포근히 젖어들게 되네요.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네 -
潢潢 㳞 㳞㴌汰潢 潢潢潢潢潢潢 㳞湳 㳞淋淋
하이얀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
湳湳湳㶂 湳淋㳞汰 潢潢潢潢潢 潕湳淋㳞㳞
향긋한 꽃 냄새가 실바람 타고 솔솔 -
㴌㳞淋 㳞 㳞淋湳 淋淋淋 淋淋 潕㶂㶂
둘이서 말이 없네 얼굴 마주 보며 쌩긋 -
潢潢㳞 㳞㴌 汰潢 潢潢 潢潢 㳞湳 㳞淋淋
아카시아꽃 하얗게 핀 먼 옛날의 과수원길-
湳湳湳湳㶂 湳淋㳞 汰 潢 潢潢潢 潕湳淋㳞㳞
과 수 원 길 -
㶂 㶂 潕 湳湳
즐거운 연주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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