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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모비딕 - 가슴 씻기

by 빗방울이네 2023.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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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먼 멜빌의 명작 「모비딕」을 읽는 여섯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어떤 흥미진진한 장면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우리 함께 그 장면으로 들어가 마음을 적시면서 꼼꼼하게 마음목욕을 하십시다.

1. 퀴퀘그의 특별한 아침 세수


우리의 주인공 이스마엘과 그의 동료 퀴퀘그가 한 침대에 자게 된 지난 사연은 흥미진진했는지요? 생전 처음 만난 이방인 퀴퀘그를 경계하고 무서워하던 이스마엘이 퀴퀘그의 선함에 이끌려 친구가 되었습니다.

자, 그다음 장면입니다. 둘이서 함께 잠을 자고 난 다음날 아침입니다. 이스마엘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 침대 안에서 나는 잠시 동안 예의도 잊은 채 억누를 수 없는 호기심으로 퀴퀘그가 아침 몸단장을 하는 것을 한동안 지켜보았다. 사실 퀴퀘그와 같은 인물은 매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그 생활양식은 특별히 자세히 연구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 「백경」(허먼 멜빌 지음, 현영민 옮김, 신원) 중에서


이스마엘과 퀴퀘그, 이 둘은 아침밥을 먹으러 갈 참입니다. 아직 이스마엘은 침대 안에 있고, 퀴퀘그가 먼저 일어나 씻고 있습니다. 침대에 누워서 이스마엘은 세수하는 퀴퀘그를 보고 있는데, 그는 과연 무엇을 보았을까요?

저는 이 장면을 만났을 때, 당황했던 나머지 몇 번이나 문장을 다시 읽었습니다. 그전에는 읽어본 적이 없었던, 세상에 없던 문장이었습니다.

- 아침 이 시각이라면 그리스도교도인 경우, 누구든 우선 얼굴을 씻을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는 다만 가슴과 팔과 손을 씻는 것만으로 아침 세수를 마쳤다.

- 위 같은 책 중에서


맙소사, 세수를 하던 퀴퀘그가 '얼굴'을 씻지 않고 '가슴'을 씻었군요. 아, 그랬구나! 하면서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소중한 장면입니다. 원문으로도 한번 음미해 보시지요.

At that time in the morning any Christian would have washed his face; but Queequeg, to my amazement, contented himself with restricting his ablutions to his chest, arms, and hands.

2. 가슴을 씻는 까닭은?


저자인 허먼 멜빌은 이 퀴퀘그의 세수 장면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거 같습니다. 무얼까요?

우리의 모비딕 읽기 세 번째 편에 등장했던 이 문장 기억나시지요?

- 주정뱅이 그리스도교도와 잠자는 것보다는 제정신의 식인종과 자는 편이 더 좋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의 이 문장에서도 그리스도교도가 등장합니다.

- 아침 이 시각이라면 그리스도교도인 경우 누구든 우선 얼굴을 씻을 것이다.

앞 문장도 그렇지만 뒤의 문장에서도 무언가 그리스도교도에 대한 화자의 비판적인 시선이 느껴집니다. 아침에 일어나 얼굴을 씻는 것은 당연한 일일 텐데 왜 그럴까요? 남들이 보는 얼굴만 씻지 '속'은 씻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문명의 위선과 속임수가 만연했던 당시 사회에 대한 비판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 그러나 놀랍게도 그는 다만 가슴과 팔과 손을 씻는 것만으로 아침 세수를 마쳤다. 퀴퀘그는 온몸이 문성투성이로 흉악해 보이는 작살잡이입니다. 식인종으로 알려진, 남태평양 코코보코라는 섬의 야만족 출신입니다. 그 종족의 습관이 진짜 그런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작가 허먼 멜빌은 퀴퀘그의 독특한 세수 습관을 그려내어 우리의 고정관념을 흔들어 놓습니다.

퀴퀘그는 왜 얼굴을 씻지 않고 가슴을 씻었을까요?

짐작하셨겠지만, 퀴퀘그는 가슴 안에 '마음'이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겉으로 보이는 얼굴을 씻는 것보다 보이지 않더라도 마음을 깨끗하게 맑게 간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 것입니다. 가슴을 씻는 행위가 마음을 정화하는 상징적인 의식으로 보입니다. 이 얼마나 인간적인 위엄이 넘치는 장면인지요?

놀랍게도그는다만가슴과팔과손을씻는것만으로아침세수를마쳤다허먼멜빌의모비딕중에서
놀랍게도 그는 다만 가슴과 팔과 손을 씻는 것만으로 아침세수를 마쳤다 - 허먼 멜빌의 모비딕 중에서

 

 

3. 정신은 외면에 나타나는 법이다


퀴퀘그의 세수 장면은 몸보다 마음을 씻고 가꾸는 일이 중요하다고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네요. 그런데 허먼 멜빌은 우리 모두 숨길 수 있다고 믿어마지 않는 그 마음이 외면에 나타난다고 하는군요!

우리의 모비딕 읽기 첫번째 시간에 나왔던 문장을 상기해봅시다. 허먼 멜빌은 속임수 없고 정직하며 순박한 퀴퀘그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 정신은 외면에 나타나는 법이다. 이 세상 것으로 보이지 않는 문신 밑에 단순하고 고결한 마음의 그림자가 보이는 것 같았고, 크게 푸욱 패어 사납게 불타는 듯한 눈에는 숱한 도깨비들과도 싸워 이기겠다는 씩씩한 기상이 숨겨져 있었다.

- 위 같은 책 중에서


이스마엘은 가슴을 씻는 퀴퀘그를 보고 감탄합니다. 남에게 보이는 얼굴이 아니라, 남에게 보이지 않는 마음을 씻기 위해 가슴을 씻는 퀴퀘그, 넌 정말 멋진 친구야!라고요.

그것은 허먼 멜빌의 말이기도 할 것입니다. 사람들아, 중요한 것은 얼굴이 아니라 마음이야! 라고요. 저는 이 문장에서 마음이 뜨끔해졌지만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요.

글 읽고 마음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모비딕」 연관 글을 더 읽어 보세요.

 

모비딕 - 도서관

허먼 멜빌의 「모비딕」을 읽는 다섯 번째 시간입니다. 우리의 독서는 계속 진행 중이어서, 너무 멀리 가서 다시 돌아오기 어려워지기 전에, 오늘은 잠시 이 책의 맨 앞페이지로 갈까 합니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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