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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최헌 순아 장만영 사랑 노래하기

by 빗방울이네 2023.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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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부를 생각이 없었는데 자신도 모르게 흥얼흥얼 입 밖으로 흘러나오는 노래가 있습니까? 저는 이 노래가 가끔 그렇게 흘러나옵니다. 왜 그런지 저도 잘 모르겠지만요. 오늘은 노래가 된 시를 읽으며 부르며 함께 마음목욕을 하려합니다.

1. '순아'에 얽힌 이야기


아주 가끔 자동으로 불쑥 나오는 노래, 최헌 가수님의 '순아'라는 노래입니다. 함께 불러보실까요?

순아

- 노래 최헌, 작사 장만영, 작곡 최주호


서울 어느 하늘 아래
낯설은 주소엔들 어떠랴
아담한 집 하나 짓고
순아 단둘이 살자
깊은 산 바위 틈
둥지 속의 산비둘기처럼
우리 서로 믿고
순아 단둘이 살자
낮에는 햇빛이 밤에는 달빛이
조그만 우리의 창을 비춰줄거야
순아 우리 단둘이 살자
순아 순아 단둘이 살자

이 노래는 최헌 가수님의 4집 '가을비우산속'(1978년)을 통해 처음 등장했습니다. 발표된 지 무려 45년이 된 노래이네요. 그런데 이 노래는 왜 저를 무시로 찾아올까요?

저는 노랫말이 참 좋습니다. 특히 이 구절이 너무 좋습니다.

'깊은 산 바위 틈 둥지 속의 산비둘기처럼 우리 서로 믿고 순아 단둘이 살자'

아주 깊고 깊은 산 속, 그것도 다른 이들이 잘 볼 수 없는 바위 틈에 둥지를 지어놓고 사는 산비둘기 짝궁이 있습니다. 깊은 산속이어서 얼마나 적막하고 외로울까요? 그렇지만 둘이 같이 있을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할까요? 둘이 같이 있으면 세상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해지는 사람, 그대에게도 있겠지요?

특히 그 다음 구절 좀 보셔요. '우리 서로 믿고 순아 단둘이 살자'. 우리 서로 믿자고 합니다. 산속에 둘 밖에 없으니 서로 의지하고 믿으면서 단둘이 살자고 하네요. 믿음! 내가 나의 짝궁을, 나의 짝궁이 나를 완전히 믿는다면 세상의 그 무슨 부귀영화가 부러울까요? 그렇지요?

낮에는 햇빛이, 밤에는 달빛이 우리의 조그만 창을 비추어줄테니 아무 걱정 없다고 합니다. 햇빛과 달빛만 있으면 된다고 하네요. 불나방처럼 세상의 온갖 욕망을 좇으며 살아가다 이 구절을 떠올리면 문득 착한 아이처럼 조용해집니다. 그렇네요. 이 노래가 불쑥 흘러나오는 이유가 여기 있었겠네요. 이 노래는 저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습니다. 너무 달리지 말아라, 삶에 브레이크를 걸어라, 옆에 있는 사람을 누구보다 소중히 여겨라, 라고요.

2. 꼬옹 꽁 숨어 산들 어떠랴


이 노래는 시에서 나왔습니다. 이 노래의 노랫말은 장만영 시인님(1914~1975 황해도 연백)의 시 '사랑'에서 나왔습니다. 그 시를 한번 감상해볼까요?

사랑

 

- 장만영


서울 어느 뒷 골목
번지없는 주소엔들 어떠랴,
조그만 방이나 하나 얻고
순아 우리 단둘이 사자.

숨박꼴질하던
어린 적 그 때와 같이
아무도 모르게
꼬옹 꽁 숨어 산들 어떠랴,
순아 우리 단둘이 사자.

단 한 사람
찾아 주는 이 없는들 어떠랴.
낮에는 햇빛이
밤에는 달빛이
가난한 우리 들창을 비춰 줄 게다.
순아 우리 단둘이 사자.

깊은 산 바위 틈
둥지 속의 산비둘기처럼
나는 너를 믿고
너는 나를 의지하며
순아 우리 단 둘이 사자.

 

무너진 방앗간

돌각 담 양지밭에

무명옷 입은 나 어린 처자.

처자의 모습이 순아를 닮아 예쁜데

예쁜 그 모습을 나는 어디서 본 것 같기만 하다.

 

앗! 그것은 바로 나의 순아다.

 

- 「장만영 시선」(송영호 엮음, 지식을만드는지식) 중에서


이 시는 장만영 시인님이 36세이던 1950년 '신천지'에 발표한 시입니다. '조그만 방이나 하나 얻고' '단 둘이 사자' '숨박꼴질' '꽁옹 꽁 숨어' 같은 그 시절 언어들이 정겹게 다가옵니다.

깊은산바위틈둥지속산비둘기처럼
깊은 산 바위 틈 둥지 속 산비둘기처럼!

 

 

3. 사랑이란 무얼까요?


이 시의 제목은 '사랑'입니다. 그런데 시 본문에는 사랑이라는 말이 한마디도 안 나옵니다. '깊은 산 바위 틈 둥지 속의 산비둘기처럼 나는 너를 믿고 너는 나를 의지하며' 사는 것이 참으로 '사랑'일테니까요.

참으로 사랑한다면 둘이서 '꽁옹 꽁' 숨어산다한들, 찾아오는 이 없고, 찾아오는 이라고는 햇빛과 달빛 뿐이라 한들 어디 그게 대수겠습니까? 그렇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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