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 명소인 천성산(千聖山, 922m)에 설렁설렁 올라가 봅니다.
글쎄 이 산 높은 곳에 넓은 초원(화엄벌)이 있는 것도, 그 높은 속에 습지(화엄늪)가 있는 것도 정말 신기하네요.
이 경이로움을 만나러 가는 우리에게 천성산은 어떤 말을 건네올까요?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지붕 없는 원효 박물관’이라 불리는 천성산
이 산의 가장 큰 매력은 '화엄벌'이 있다는 것입니다.
산 정상 가까운 높은 곳에 무려 25만 평에 달하는 광활한 초원이 있다니!
이 화엄벌은 봄이면 분홍빛깔의 진달래와 철쭉꽃이, 가을에는 은빛 물결의 억새들이 장관을 연출하는 곳입니다.
이 멋진 곳에 어떻게 가면 좋을까요?
천성산은 양산시 웅상(평산동, 소주동)과 상북면·하북면을 가르고 있는 산입니다.
빗방울이네는 철쭉 개화가 70% 정도 진행된 5월 초에 다녀왔습니다.
가장 많이 이용하는 코스가 상북면 대석마을 → 원효암 →천성산 정상으로 가는 것입니다.
대석마을 입구에서 원효암까지 꼬불꼬불 이어진 산길(8km)은 자동차를 이용합니다(20분 정도 소요).
원효암 입구 즈음에 커다란 주차장이 있습니다. 아침 8시 이전에 가야 주차 자리가 있다고 합니다.
주차장에서 200m가량 길을 따라 걸어가면 원효암이 나옵니다.
원효암 입구에서 표지판을 보니, 지금으로부터 1,400여 년 전인 646년, 신라시대 원효 스님(617~686년)이 창건한 암자로 소개되어 있네요.
원효 스님을 생각하니 그의 아내가 된 요석공주, 두 사람 사이에서 난 아들 설총이 떠오르네요.
의상 스님과 당나라에 유학을 가던 길 밤중에 해골물을 마신 이야기도요.
모든 것(一切)은 오로지(唯) 마음(心)이 지은(造) 것이라는 뜻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문장도 따라 나오네요.
전국에 원효암이라는 이름의 암자가 많이 있는데, 그만큼 스님의 당시 활약상과 위상을 짐작케 하네요.
그런데요, 이 천성산의 원효암은 좀 특별합니다.
천성산은 '지붕 없는 원효 박물관'이라 불릴 정도로 원효 스님의 숨결이 가득한 곳입니다.
천성산이라는 이름부터 원효 스님의 발자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千聖山'
그러니까 1,000명의 성인(聖人)을 배출한 산이라는 뜻입니다.
원효 스님이 당나라에서 온 승려들을 화엄경으로 교화하여 깨달음에 이르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때 그 많은 수도자들의 수행처가 이 산에 많이 조성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원효암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산 이름부터 천성산, 산 정상의 이름은 원효봉, 그 산 마루에 있는 광활한 초원의 이름은 화엄벌, 그 초원의 경이로운 습지 이름은 화엄늪이 되었네요.
해발 고도를 보니, 원효암은 750m 지점, 천성산 정상(원효봉)은 922m입니다.
원효암은 천성산이 품고 있는 많은 사찰과 암자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있습니다. 그러니 이곳의 약수물은 말 그대로 약물입니다.
그러고 보니, 양산 천성산의 원효암은 부산 금정산(801m)의 미륵사(700m)와 닮았네요.
그 산이 품고 있는 수많은 절과 암자 중에 가장 높은 곳에 있고요, 그래서 물이 좋고요, 또 원효 스님 숨결이 스민 것까지요.
원효암 화장실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게 되어 있네요. '화엄의 세계' 화엄벌로 발길을 옮기기 전에 몸을 가볍게 해야겠습니다.
2. 원효암에서 화엄벌까지, 맑고 포근한 보약 같은 산길
원효암에서 천성산 화엄벌까지 이어지는 1시간가량의 산길은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산은 성질에 따라 두 가지입니다. 골산(骨山)과 육산(肉山)입니다.
골산은 바위와 돌이 많은 설악산 같은 산, 육산은 흙이 많아 울창한 숲이 아름다운 지리산 같은 산입니다.
천성산은 탈진한 몸에 에너지를 주는 골산, 그리고 외로운 마음을 따뜻하게 품어주는 육산의 장점을 두루 지닌 명산으로 꼽힙니다.
원효암에서 천성산 화엄벌로 가는 산길은 산의 8부 능선의 완만한 곡선을 타고 골산과 육산의 기운을 음미하며 가면 되는 평화로운 길이었습니다.
신라시대 화엄경을 강연하기 위해 원효암에서 화엄벌로 가던 원효 스님도 이 길을 걸었을까요?
사방오리나무와 모과나무, 상수리와 편백, 산죽이 우거진 숲 여기저기에 연달래와 철쭉이 화려한 자태를 보여주는 길입니다.
그 꽃들 그 나무들에게 이 외진 곳에서 얼마나 외롭겠니? 했다가 스스로 이렇게 야단쳤답니다.
아닐세, 빗방울이네. 그건 그대의 욕망일세!
인간에겐 외진 곳이겠지만 그 꽃들 그 나무들에게는 너나 차별 없이 모두 평등하고 행복한 화엄의 세계이겠지요?
원효암에서 화엄벌로 가는 산길을 한 문장으로 말하라면, 빗방울이네는 참으로 맑고 포근한 기운이 느껴지는 보약 같은 산길이라고 쓰겠습니다.
3. 능선에 펼쳐진 25만 평의 벌판 ‘화엄벌’
원효암에서 설렁설렁 1시간 30분 정도 걸어 천성산 정상 가까이 왔을 때, 별안간 눈앞에 광활한 초원이 펼쳐졌습니다.
오늘 우리의 목적지 화엄벌, 원효 스님이 화엄경을 설했다는 그 '야외 강의실'입니다.
화엄벌은 천성산 제1봉 원효봉에서 천성산 제2봉 비로봉을 잇는 25만 평의 능선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높은 산 위에 넓게 펼쳐진 평평함 앞에서, 그동안 살아내느라 쪼그라들었던 마음이 그만 다 평평해지는 것만 같았다고 할까요?
그 완만하고 광활한 능선을 뒤덮은 진분홍 철쭉꽃이 참으로 장관이었습니다. 그 철쭉 사이 연달래는 또 얼마나 이쁜지!
빗방울이네에게 화엄벌을 걷는 기분을 물으신다면, 어머니 품속에 안겨드는 기분이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편안하고 다정하고 따뜻하고 안전하고 눈이 스르르 감기는 느낌 말입니다.
그런 화엄벌이야말로 우리 가까이 있는 '샹그릴라'라고 말하고 싶기도 하고요.
빗방울이네는 그 사방 막힘 없이 탁 트인 높은 화엄벌에 올랐는데도 어쩐지 자꾸 땅을 쳐다보게 되었답니다.
각시붓꽃, 양지꽃, 뱀딸기꽃들. 화엄벌 땅에 바짝 붙어사는 키 작은 녀석들이 수시로 눈길을 당겼거던요.
이 낮고 외진 곳에도 소중하고 다정한 친구가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달까요?
그리고요, 이 높은 산 화엄벌에 습지가 있습니다. 바로 '화엄늪'입니다.
지난 1999년 화엄벌 습지가 소중한 고산습지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2002년 환경부로부터 ‘화엄늪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네요.
그 늪 앞에 서 있는 '화엄늪 습지보호지역 안내판'을 보니, 화엄늪은 이탄층(泥炭層, 늪에 살던 식물들로 만들어진 흑갈색의 퇴적물)의 늪입니다.
이 늪에는 앵초, 물매화, 잠자리 난, 흰제비난, 끈끈이주걱, 이삭귀개 등 다양한 희귀 습지식물이 서식하고 있다고 소개되어 있네요.
늪은 무려 2만 8천 평인데, 축구장의 17배에 달한다고 하네요.
희귀 식물만이 아니라 삵, 담비, 산골조개, 도롱뇽도 살고 있답니다.
빗방울이네는 특히 산골조개(높은 산 위에 조개라니!)가 궁금했는데, 생태보전을 위해 늪으로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어 직접 보지는 못했답니다. 안내판에 소개된 사진을 보니 좀 연한 빛깔의 가무락조개처럼 이쁘장하게 생겼네요.
화엄벌에서 동쪽으로 보니, 천성산 최고봉인 원효봉이 우뚝 솟아있네요. 내륙에서는 일출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화엄벌에서 원효봉을 향해 오르막을 30여 분 또 설렁설렁 걸어갑니다.
가는 길가에 할미꽃도 있고요, 봄구슬붕이도 있고요, 몸을 활짝 편 고사리도 있고요.
앗, 털투성이의 커다란 갈색 애벌레가 그 길 가운데에 나와 몸을 동그마니 말고 있었는데, 나뭇가지에 태워 천천히 길섶으로 옮겨주었어요.
그러자마자 산악자전거 서너 대가 원효봉 쪽에서 달려 내려왔어요! 길섶으로 피한 애벌레는 무사히 나방이 되어 화엄벌 하늘로 날아가겠지요?
원효봉 정상 한쪽 구석에 자리를 깔고 화엄벌을 바라보며 일행과 과일을 먹었는데요, 아, 바로 우리 옆에 미나리아재비가 살고 있지 뭡니까!
애기똥풀처럼 생긴 노란색의 작은 꽃인데, 빗방울이네가 정말 좋아하는 꽃입니다.
백석 시인님의 시 '흰 바람벽이 있어'에 등장하는 '바구지꽃'이 바로 이 미나리아재비꽃입니다.
그 시 속의 미나리아재비꽃이 천성산 정상에서 고요히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화엄벌을 그윽이 바라보면서요.
그 자태, 그 빛깔, 그 담담함, 그 무심함!
미나리아재비꽃은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하눌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 백석 시 '흰 바람벽이 있어' 중에서.
미나리아재비꽃의 전언(傳言)을 음미하며 원점 회귀 하산을 했습니다.
집으로 가는 전철 속에서도 천성산 정산 원효봉 922m 꼭대기에 사는 미나리아재비가 자꾸 생각났습니다.
사랑하는 미나리아재비가 천성상 정상에 있고요, 좋아하는 사람들도 곁에 있으니까요, 비록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더라도 가난하지 않고 외롭지 않을 것만 같았습니다.
만약 그대가 천성산 원효봉에 가신다면 미나리아재비에게 빗방울이네 안부 좀 전해주시길.
보기엔 낮지만 한없이 높은 너, 미나리아재비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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