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프로스트 시인님의 시 '가지 않은 길'을 만납니다. 지금 가고 있는 삶의 길을 돌아보게 하는 시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로버트 프로스트 시 '가지 않은 길' 읽기
가지 않은 길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1874~1963, 미국)
단풍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몸이 하나니 두 길을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한참을 서서
낮은 수풀로 꺾여 내려가는 한쪽 길을
멀리 끝까지 바라다 봤습니다.
그리고 다른 길을 선택했습니다, 똑같이 아름답고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 생각했지요.
풀이 무성하고 발길을 부르는 듯했으니까요.
그 길도 걷다 보면 지나간 자취가
두 길을 거의 같도록 하겠지만요.
그날 아침 두 길은 똑같이 놓여 있었고
낙엽 위로는 아무런 발자국도 없었습니다.
아, 나는 한쪽 길은 훗날을 위해 남겨 놓았습니다!
길이란 이어져 있어 계속 가야만 한다는 걸 알기에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거라 여기면서요.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길 하겠지요.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선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마음을 흔드는 세계 명시 100선」(장석주 엮음, 북오션, 2017년) 중에서
로버트 프로스트 시인님(Robert Frost, 1874~1963)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출신으로 고교 졸업후 20여 년 동안 노동자, 농부, 교사 등 다양한 직업을 가졌으며 다트머스 칼리지와 하버드 대학에서 수학했습니다.
뉴햄프셔의 농장에서의 오래 생활로 소박한 자연을 노래함으로써 현대 미국 시인 중 가장 순수한 고전적 시인으로 꼽힙니다. 시집으로 「보스턴의 북쪽」 「시 모음집」 등이 있습니다. 퓰리처상을 4회나 수상했고, 1958년에 미국의 계관시인이 되었습니다.
2. 삶의 기로에서 만나는 선택의 어려움에 대하여
'단풍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 몸이 하나니 두 길을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한참을 서서 / 낮은 수풀로 꺾여 내려가는 한쪽 길을 / 멀리 끝까지 바라다 봤습니다.'
우리는 삶에서 얼마나 자주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는지요?
이 길로 갈까, 저 길로 갈까?
선택은 이렇게 얼마나 어려운 건지요? 이 시의 화자도 선택의 기로에 서 있네요.
'그리고 다른 길을 선택했습니다, 똑같이 아름답고 /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 생각했지요
풀이 무성하고 발길을 부르는 듯했으니까요
그 길도 걷다 보면 지나간 자취가 / 두 길을 거의 같도록 하겠지만요.'
그대는 선택의 기로에서 어떤 기준으로 결정하는지요?
시의 화자는 '풀이 무성하고 발길을 부르는 듯'한 길을 택했네요.
화자가 선택한 '풀이 무성한' 길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은 길이네요.
그런 길에 끌려 선택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풀이 무성하지만 나중에 이 길도 사람이 많이 다니면 다른 길과 같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면서요.
'그날 아침 두 길은 똑같이 놓여 있었고 / 낙엽 위로는 아무런 발자국도 없었습니다
아, 나는 한쪽 길은 훗날을 위해 남겨 놓았습니다!
길이란 이어져 있어 계속 가야만 한다는 걸 알기에 /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거라 여기면서요.'
그런데요, 이 시를 따라오던 우리는 이 3연에서 모호함의 연못에 빠집니다.
'그날 아침 두 길은 똑같이 놓여 있었고 / 낙엽 위로는 아무런 발자국도 없었습니다'
이 구절은 화자가 선택한 길과 선택하지 않은 길이 차이가 없는 같은 길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겠네요.
그런데요, 이 말은 한쪽을 선택하고 한쪽을 버려야하는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는 말이라는 뉘앙스가 느껴집니다.
두 길이 똑같은 걸, 낙엽 위로 아무런 발자국도 없잖아,라고 하면서 하는 자위 말입니다.
아침이니까 사람들이 많이 다닌 길이나 그렇지 않은 길이나 '낙엽위로는 아무런 발자국도' 없는 것은 당연할 일일 테니까요.
그러면서 화자는 가지 못하는 길에 미련을 두고 망설이는 자신을 이렇게 위로합니다.
'아, 나는 한쪽 길은 훗날을 위해 남겨 놓았습니다!'
문장 처음엔 '아'라는 감탄사를, 마지막에 느낌표(!)까지 넣으면서 말입니다.
이 시 원문의 같은 구절도 그렇습니다.
'Oh, I kept the first for another day!'
그렇게 말하면서도 화자는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거라 여긴다고 하네요.
화자가 이 시 제목이기도 한 '가지 않은 길'에 얼마나 미련을 두고 있는 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 마찬가지겠지요?
그런데요, 이 시의 드라마는 마지막 연에 있습니다. 어떤 장면일까요?
3. '한숨 지으며'라는 구절에 담긴 뜻은?
이 마지막 3행이 이 시의 가장 높은 우듬지이네요.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 /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선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먼 훗날 자신에게 스스로 이런 이야기를 하게될 것이라는 말인데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선택하길 잘 했어,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으니까, 라고 말하게 될 거라고요.
그런데요, 이렇게 액면 그대로 결론이 나면 너무 심심하지 않겠는지요?
그래서 우리는 이 구절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앞의 두 구절, 바로 이 구절들을 주목합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어디에선가 /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길 하겠지요 '
특히 뒷구절에 이 시의 반전 드라마가 숨어있는 거 같습니다.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길 하겠지요 I shall be telling this with a sigh'
특히 이 구절요.
'한숨지으며(with a sigh)'
'한숨'이라는 단어에 두 가지 의미가 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한숨'의 뜻은 '근심이나 설움이 있을 때, 또는 긴장하였다가 안도할 때 길게 몰아서 내쉬는 숨'입니다.
우리는 '한숨'의 뜻을 새길 때 주로 '근심이나 설움이 있을 때 길게 몰아서 내쉬는 숨'에 경도되곤 하지만, '긴장하였다가 안도할 때 몰아서 내쉬는 숨'도 한숨입니다.
영어도 마찬가지네요. 'sigh'는 '자족(自足)'이나 '탄성(歎聲)'이라는 의미의 쓰임새도 많습니다. 이렇게요.
a sigh of contentment 자족의 한숨
let a sigh 한숨을 쉬다, 탄성을 발하다
draw a sigh 한숨 쉬다, 한숨 돌리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 /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선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그래서 우리는 이 마지막 3행이 두 가지 의미로 다가옴을 알 수 있습니다.
첫번째의 경우, 이 '한숨'을 '자족'이나 '탄성'으로 새긴다면, 미지(未知)의 길로 가는 용기와 도전정신이 미래에 나를 성공시킬 것이라는 뜻이겠네요.
두번째의 경우, 이 '한숨'을 '한탄하여 내쉬는 탄식'으로 읽는다면 이 구절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먼훗날, 아마 나는 지금의 선택(잘못된 선택)을 끝까지 잘했다며 스스로를 옹호하고 있을 거야,라는 뉘앙스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And that has msde all the difference'
'한숨'이 두 가지 의미가 있듯이 이 'the difference'도 좋은 의미의 '차이'만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네요.
'한숨'이라는 시어 하나가 이 시를 입체음향으로 들리게 하는 '동굴의 키워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시인님은 이 시를 통해 자신에게 또 우리에게 묻는 것만 같습니다.
먼훗날 저마다 선택해 걸어온 지난 길을 돌이켜보며 어떻게 말하게 될 것인가를요.
그 때 쉬는 '한숨'은 '자족의 한숨'일까요? '한탄의 한숨'일까요?
한탄의 '한숨'이 되지 않으려면, 지금 저마다 선택한 길을 어떻게 걸어야할 것인가를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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