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콕토 시인님의 시 '산비둘기'를 만납니다. 우리의 사랑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따뜻한 시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장 콕토 시 '산비둘기' 읽기
산비둘기
장 콕토(1889~1963, 프랑스)
산비둘기 두 마리가
상냥한 마음으로
사랑했지요.
그 나머지는
차마 말씀드릴 수 없네요.
▷「장석주 시인의 마음을 흔드는 세계명시 100선」(장석주 엮음, 북오션, 2017년) 중에서
장 콕토 님(Jean Cocteau, 1889~1963)은 프랑스 파리 근교 메종 라피트 출신으로 「알라딘의 램프」라는 시집을 발표하며 등단했습니다. 친구 피카소의 기법을 도입해 입체 이미지를 구성한 시를 쓴 시인이며, 전위적인 연극인, 자신의 시집에 삽화를 그린 화가였고, 조각가, 소설가, 영화감독, 문학비평가, 배우 등 다방면에서 활동을 펼쳤습니다. 시집 「알라딘의 램프」, 극본 「에펠탑의 신랑 신부」, 소설 「Le Potomak」 등이 있습니다.
2. 산비둘기 두 마리처럼 사랑했지요!
프랑스 장 콕토 시인님의 시 '산비둘기'를 만납니다.
예전에 동네 이발소 벽에 걸려있던 이 짧은 시를 만난 적이 있을 것입니다.
시와 다정한 산비둘기 두 마리 사진이 어우러진 액자였고요.
과연 이 시는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요?
'산비둘기 두 마리가 / 상냥한 마음으로 / 사랑했지요'
지난가을에 만났지요, 산비둘기 두 마리를요.
빗방울이네가 점심을 먹고 산보 삼아 올라가는 뒷산 꽃대궐이 있습니다.
거기서 두 마리의 산비둘기를 만났답니다.
하나는 짙은 회색이고요, 하나는 보랏빛이 더 많은 회색이었어요.
그래서 빗방울이네는 이들에게 '그레이'와 '퍼플'이라는 애칭을 붙여주었답니다.
'그레이'가 청년이고 '퍼플'이 그의 연인인 듯했어요. 그냥 짐작으로요.
'그레이'가 좀 더 씩씩해 보였거던요. 또 '퍼플'을 졸졸 따라다녔고요.
졸졸 따라다니는 녀석이 청년 아니겠는지요?
우리는 거의 날마다 만났습니다.
그래서 친해졌다고 생각했는지 이이들이 빗방울이네를 아주 투명인간 취급을 해요.
꽃대궐에 있는 체육공원에서 허리 돌리기 운동을 하고 있으면요, 이 둘은 아주 제 발밑에까지 와서 얼씬거립니다.
이 둘은 얼마나 다정한 지 모릅니다.
모이를 찾을 때는 언제나 붙어 다녔습니다.
낙엽 위를 사뿐사뿐 걸으면서요, 부리를 콕콕 찍어 무언가를(아마 벌레였겠지요, 작고 이쁜 벌레요!) 끊임없이 먹으며 작은 숲 속을 샅샅이 뒤지며 다녔어요.
그 다정한 비둘기 한쌍이 거나하게 점심식사를 하는 동안 빗방울이네는 허리 돌리기 운동을 하면서 노래를 흥얼거렸지요.
최헌 가수님의 '순아'였어요. 이 '순아'는 또 얼마나 다정한 노래인지 몰라요.
'서울 어느 하늘 아래 / 낯설은 주소엔들 어떠랴 / 아담한 집 하나 짓고 / 순아 단둘이 살자~
깊은 산 바위 틈 / 둥지 속의 산비둘기처럼 / 우리 서로 믿고 / 순아 단둘이 살자~'
이 노래의 노랫말은 장만영 시인님의 시 '사랑'입니다.
보셔요. 저기 푸른 색으로 칠해진 노랫말요. '둥지 속의 산비둘기처럼 우리 서로 믿고!'
여기서 '우리 서로 믿고'라는 구절이 우리의 심금을 울리네요.
사랑은 믿음이라고 하는 것만 같네요. 서로 믿지 못하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요.
깊은 산 바위 틈에 좁은 곳에 둥지가 있는데요, 거기 산비둘기 둘이 사는데요, 서로 쇠나 돌 같이, 철석(鐵石) 같이 믿고 의지하며 산다고 하네요.
빗방울이네가 꽃대궐에서 만난 산비둘기 한쌍도 노랫말처럼 그렇게 믿고 의지하며 다정하게 사는 산비둘기였어요.
그들이 점심을 다 먹고 숲 속으로 사라질 때쯤 허리 돌리기 운동이 끝나곤 했지요. 내일 또 봐!
3. 차마 말할 수 없는 사연이 있어요!
그런데요, 어제였어요. 빗방울이네가 꽃대궐에서 산비둘기를 다시 만난 것은요.
가을부터 겨울까지 우리 내내 만났는데 봄이 되면서 보이지 않던 산비둘기가 불쑥 나타났어요.
그동안 너희 어디 갔었니?
좌우로 허리 돌리기 운동을 하면서 반가운 나머지 그렇게 큰 소리로 물었지요. 산비둘기에게 말이에요.
그런데요, 이게 어찌 된 일일까요?
혼자였어요. 아무리 둘러보아도 '그레이' 혼자였어요. 짝지인 '퍼플'이 안 보였어요!
철석 같이 붙어 다니던 둘이었는데, 여자 친구 '퍼플'은 어디로 갔을까요?
'그레이' 혼자 풀밭을 걸으며 벌레를 쪼는 모습이 그렇게 쓸쓸할 수가 없었답니다.
예쁜 '퍼플'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다정히 모이를 쪼던 때와는 달리 온몸에 힘이 빠져 축 처진 모습이었어요.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그 나머지는 / 차마 말씀드릴 수 없네요'
'퍼플'은 지난겨울 배고픈 들고양이에게 쫓기다가 쓰러진 걸까요? 아니면 까탈스러운 까치에게 쪼인 걸까요? 아니면 기다란 뱀에게?
별별 생각이 다 들어서 허리 돌리기 운동을 계속할 수가 없었답니다.
우리도 이 삶이라는 숲 속에서 어쩌다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었겠지요.
'서울 어느 하늘 아래'에 ’바위틈 둥지‘를 틀고 알콩달콩 살았겠지요.
서로 믿고 의지하면서요. 이렇게 둘이만 있으면 된다고, 세상 다 가진 것 같다고 서로에게 알뜰히 맹세했겠지요.
'그 나머지는 / 차마 말씀드릴 수 없네요'
이 짧은 구절에 우리네 삶의 즐거움과 괴로움, 성공과 좌절이 다 들어있었네요.
우리는 서로에게 차마 말할 수 없는 사연이 얼마나 많은지요. 가슴속에 꽁꽁 묻어둔 이야기요.
그걸 어떻게 차마 필설로 형언할 수 있을까요!
이 밤, '그레이'는 혼자 얼마나 쓸쓸할까요?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산비둘기 이야기를 더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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