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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윤동주 시 코스모스 읽기

by 빗방울이네 2023.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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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인님의 시 '코스모스'를 만납니다. 이 시에는 어떤 풍경이 숨어있을까요? 시인님이 피워놓은 코스모스를 완상(玩賞)하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윤동주 시 '코스모스' 읽기

 
코스모스
 
- 윤동주(1917~1945, 북간도 명동촌)
 
청초한 코스모스는 
오직 하나인 나의 아가씨
 
달빛이 싸늘히 추운 밤이면
옛 소녀가 못 견디게 그리워
코스모스 핀 정원으로 찾아간다.
 
코스모스는 
귀또리 울음에도 수집어지고
 
코스모스 앞에 선 나는
어렸을 적처럼 부끄러워지나니
 
내 마음은 코스모스의 마음이오
코스모스의 마음은 내 마음이다.
 

- 「윤동주 시집」(권일송 편저, 청목문화사, 1987년) 중에서

 

2. 코스모스가 귀또리 울음에 수줍어한 까닭은?

 
시 '코스모스'는 윤동주 시인님 22세 때 1938년 9월 20일 쓰인 시입니다. 시인님은 이 해 4월에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합니다. 대학 기숙사 3층 지붕밑 방에서 고종사촌인 송몽규, 벗 강처중 님과 함께 꿈에 부푼 대학생활을 시작합니다.
 
입학 후 6개 여만에 그 다락방 같은 공간에서 쓰인 시가 '코스모스'네요.
 
이 시는 윤동주 시인님 사후인 1948년에 나온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31편에는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이 유고시집은 시인님이 자신의 시 중에서 직접 골라둔 시집 원고를 묶은 것입니다. 시인님은 '코스모스'를 첫 시집에 넣을까 말까 망설였을 것만 같네요.
 
윤동주 시인님의 시 중에서 특정 꽃을 제목으로 한 시는 이 '코스모스'가 유일합니다(동시로는 '해바라기'가 있고요). 그만큼 코스모스를 좋아했으니 시인님의 성정(性情)이 코스모스를 닮았겠구나 짐작해 봅니다. 코스모스 같은 시인님!
 
어서 시인님이 이 가을에 피워놓은 '코스모스'를 영접합시다.
 
청초한 코스모스는 / 오직 하나인 나의 아가씨

- 윤동주 시 '코스모스' 중에서

 
청초(淸楚)하다는 것은 화려하지 않으면서 맑고 깨끗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는 뜻입니다. 시인님은 이렇게 맑고 깨끗한 아름다움을 좋아하시네요. 그런 코스모스가 '나의 아가씨'라고 하네요. '나의 아가씨'도 청초한 아름다움을 가진 사람인가 봅니다. 그런 사람이 이 세상에 '오직 하나'라고 합니다. 우리 모두 사랑하는 시인님의 사랑을 이렇게 듬뿍 받는 코스모스 같은 아가씨는 얼마나 좋을지요.
 
달빛이 싸늘히 추운 밤이면 / 옛 소녀가 못 견디게 그리워 / 코스모스 핀 정원으로 찾아간다

- 윤동주 시 '코스모스' 중에서

 
이 2연에 등장하는 '옛 소녀'가 성장해 1연의 '나의 아가씨'가 되었네요.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小學校 때 책상을 같이 햇든 아이들의 일흠과 佩, 鏡, 玉 이런 異國少女들의 일흠과, 벌써 애기 어마니 된 계집애들의 일흠과

- 윤동주 시 '별 헤는 밤' 중에서

 
이 '별 헤는 밤'에 등장하는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햇든 아이'가 '오직 하나인 나의 아가씨'일까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본 것이니 우리의 짐작이 그리 빗나가진 않았을 것입니다.
 
코스모스는 / 귀또리 울음에도 수집어지고

- 윤동주 시 '코스모스' 중에서

 
우리는 이 3연에서 하늘거리는 코스모스와 귀또리(귀뚜라미도 좋지만 귀또리는 얼마나 더 귀여운 귀또리인가!) 울음소리가 어우러진 풍경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코스모스가 '오직 하나인 나의 아가씨'라고 했으니 '나의 아가씨'가 '귀또리 울음'에 수줍어한다고 합니다.    
 
'나의 아가씨'는 왜 '귀또리 울음'에 수줍어할까요? 이 두 줄에는 흥미로운 생태학이 숨어있습니다.
 
귀또리는 총각 귀또리만 웁니다. 귀또리 울음은 총각 귀또리가 처녀 귀또리에게 연애하자고 유혹하는 소리인 것입니다. 그러니 '나의 아가씨'는 데이트 한번 해달라고 조르는 총각 귀또리 울음에 수줍어할 수밖에요. 시인님은 얼마나 개구쟁이인지요.
 
그런데 총각 귀또리는 어떻게 울음소리를 낼까요? 오른쪽 날개와 왼쪽 날개를 부비부비 비벼서 소리를 낸다고 합니다. 그 소리를 사람들이 듣고 귀또리의 울음소리라고 명명했겠지만 사실은 날개 부딪히는 소리였네요. 그래도 처녀 귀또리를 애타게 부르는 소리이니 가히 총각 귀또리의 불쌍한 울음소리라 부를만하겠습니다.
 
한여름에 우는 매미도 총각 매미만 웁니다. 처녀 매미를 부르려고요. 총각 매미는 처녀 매미와 짝짓기를 하려고 배 밑에 있는 발음기를 사용해서 여름 내내 웁니다. 귀또리나 매미나 모두 총각만 우네요. 어찌해서 총각들만 이리 힘들게 울어야 하는지.
 
아, 시 '코스모스'를 계속 읽습니다.
 
코스모스 앞에 선 나는 / 어렸을 적처럼 부끄러워지나니

- 윤동주 시 '코스모스' 중에서

 
시인님은 3연에서 코스모스가 귀또리 울음에 수줍어한다고 해놓고서는 4연에 와서는 그 코스모스 앞에 나도 어렸을 적처럼 부끄러워진다고 합니다. 그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햇든 아이' 앞에서 그때도 부끄러워했군요. 부끄러워 우물쭈물 말도 제대로 못 하던 소년 윤동주였네요. 귀여운 소년 귀또리님!
 

윤동주시코스모스중에서
'오직 하나인 나의 아가씨' - 윤동주 시 '코스모스' 중에서.

 

 

3. 마지막 연에 숨겨진 풍경은?

 
우리는 시 '코스모스'의 마지막 5연에 도착했습니다. 시인님은 어떤 풍경으로 시를 마무리했을까요?
 
내 마음은 코스모스의 마음이오 / 코스모스의 마음은 내 마음이다

- 윤동주 시 '코스모스' 중에서

 
이 마지막 5연에서 시인님은 코스모스와 깊이 교감하고 있네요. 얼마나 깊고 깊은 사랑이어야 이런 교감과 합일에 이르겠는지요?
 
청초한 꽃 코스모스를 매개로 옛 소녀를 애타게 그리워하며 애틋한 수채화 같은 사랑 속에 거닐던 시인님은 끝내 코스모스 속으로 들어가 '코스모스 = 나의 아가씨 = 나'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천재시인' 윤동주 시인님은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 문과를 다녔고 일본 도시샤대학 영문과에 유학했습니다. 이 시 '코스모스'는 연희전문 1학년 때 쓰인 것인데, 그 당시 시인님은 '코스모스'라는 단어의 또 다른 의미를 몰랐을 리 없었을 것입니다.
 
영어로 'cosmos'는 우리가 아는 코스모스 꽃의 영어 표기이기도 하지만 '우주'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질서 있는 시스템으로서의 우주 말입니다. 
 
우리는 큰 하나의 마음/우주의 마음에서 한 자락씩을 나누어 가지고 살아가는 걸까요? 그러면 '내 마음'이라는 것은 우리 모두의 마음이 됩니다. 세상의 우물이 커다란 하나의 지하수로 연결되어 있듯이 말입니다. 그러면 코스모스 '나의 아가씨'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되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겠습니다.
 
이런 크고 깊은 마음에 이른 시인님의 마음은 얼마나 크고 깊은 마음인지요? 무지무지 사랑합니다, 코스모스 시인님!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윤동주 시인님의 시 '별 헤는 밤'을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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