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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유자효 시 추석 읽기

by 빗방울이네 2023.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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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효 시인님의 시 '추석'을 만납니다. 추석, 밤늦게 귀가하지 않는 아들을 기다리며 시인님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시인님이 퍼올려주신 뜨거운 사랑의 목욕물로 마음을 씻으며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유자효 시 '추석' 읽기

 
추석
 
- 유자효(1947년~ , 부산)
 
나이 쉰이 되어도
어린 시절 부끄러운 기억으로 잠 못 이루고
 
철들 때를 기다리지 않고 떠나버린
어머니, 아버지
 
아들을 기다리며
서성이는 깊은 밤
 
반백의 머리를 쓰다듬는
부드러운 달빛의 손길
모든 것을 용서하는 넉넉한 얼굴
 
아, 추석이구나
 

- 한국대표명시선100 - 유자효 시집 「아버지의 힘」(만해사상실천선양회 뽑음, 시인생각, 2013년) 중에서

 
유자효 시인님은 1947년 부산 출신으로 1967년 신아일보 신춘문예(시), 불교신문 신춘문예(시조)를 통해 등단했습니다.  1974년 KBS 기자로 입사해 파리특파원 등을 거쳐 SBS 정치부장, 국제부장, 해설위원, 보도제작국장, 라디오본부장, 논설위원실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1982년 첫 시집 「성수요일의 저녁」을 낸 것을 비롯, 시집 「짧은 사랑」 「떠남」 「내 영혼은」 「지금은 슬퍼할 때」 「데이트」 「금지된 장난」 「아쉬움에 대하여」 「성자가 된 개」 「여행의 끝」 「전철을 타고 히말라야를 넘다」 「주머니 속의 여자」 「사랑하는 아들아」 「심장과 뼈」 등을 발간했습니다.
 
산문집으로 「피보 씨는 지금 독서 중입니다」 「라라의 투쟁」 「세상의 다른 이름」 「다시 볼 수 없어 더욱 그립다」 「나는 희망을 보았다」 등이 있습니다. 
 
정지용문학상, 유심작품상, 현대불교문학상, 편운문학상, 한국문학상, 현대시조문학상, 후광문학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2. '나이 쉰이 되어도' 잊히지 않는 것

 
유자효 시인님은 많은 이들에게 매우 낯이 익은 방송기자였습니다. 준수한 외모의 시인님이 프랑스에서 발신한 리포트를 하면서 마무리 멘트는 이랬던 거 같습니다. 파리에서 KBS 뉴스 유자효였습니다!
 
오늘 만나는 시 '추석'은 언제 쓰인 시일까요?
 
'한국대표명시선100'의 시리즈 시집인 「아버지의 힘」의 뒷부분에 실린 시인님 연보를 보니 시 '추석'은 1996년 SBS 해설위원으로 부임한 즈음에 쓰인 시로 보입니다. 
 
나이 쉰이 되어도 / 어린 시절 부끄러운 기억으로 잠 못 이루고

- 유자효 시 '추석' 중에서

 
이 시기의 시인님, 50세의 시인님은 직접 발로 국내외를 뛰어다니던 현장 기자에서 벗어나 이제 간부로 선배로 자신의 경험과 지혜를 사회와 후배에게 전해주는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처럼 '밖'의 소중한 일을 하는 시인님, '나이 쉰이 되어도' 어찌할 수 없네요. '밖'의 맞은편에 있는 '안'의 소용돌이를요. 나와 부모님, 가족과의 여러 빛깔의 사랑 이야기들요. 누구라도 그렇지 않겠는지요?
 
이 첫 행을 읽는 우리도 저마다의 '어린 시절 부끄러운 기억'이 떠올라 그날처럼 생생히 부끄러워지네요.
 
철들 때를 기다리지 않고 떠나버린 / 어머니, 아버지

- 유자효 시 '추석' 중에서

 
시인님이 말하는 '부끄러운 일'은 부모님에 대한 어떤 '불효'의 일이었을까요?
 
'어린 시절' 저지른 일 돌아보니 부끄러운 일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됩니다. 철이 들어 그 사실을 깨닫고 용서를 구하려 보니 부모님은 옆에 안 계시네요. 시 속에서 50세라 했으니 안타깝게도 시인님은 부모님을 일찍 여의셨나 봅니다. 우린 왜 이렇게 늘 한 박자 늦게 따라가며 후회하게 되는지요.
 
아들을 기다리며 / 서성이는 깊은 밤

- 유자효 시 '추석' 중에서

 
위 시집의 연보에 보니 시인님의 장남이 1979년 출생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시인님은 지금 10대 후반이 된 '아들을 기다리며' 서성이고 있습니다. 아직 철없이 귀엽기만 한 아들일 텐데 '깊은 밤'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고 있네요. 아버지는 얼마나 걱정이 될까요?
 
바로 이 대목에서 시인님이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을 떠올렸겠네요.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는 얼마나 나를 노심초사 걱정하며 그 많은 나날을 살얼음 걷듯 사셨을까요? 또 지금 그렇게 살고 계실까요? 이제 부모가 되어 밤늦게 아들을 기다려보니 절로 부모님의 은혜가 가슴 깊이 스며드네요.
 

유자효시추석중에서
유자효 시 '추석' 중에서.

 

 

 

3. '반백의 머리를 쓰다듬는 부드러운 달빛의 손길'

 
반백의 머리를 쓰다듬는 / 부드러운 달빛의 손길 / 모든 것을 용서하는 넉넉한 얼굴

- 유자효 시 '추석' 중에서

 
집 밖 골목 어귀였을까요? 밤늦게 '아들을 기다리며' 서성이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아, 환한 달님이네요. 온 천지 사방팔방의 공간이 황금빛 달빛으로 가득 차올라 있습니다. 이런 달빛의 따스하고 부드러운 손길은 어디 닿지 않는 곳이 없겠습니다. 높은 곳이나 낮은 곳이나요. 못난 사람이나 잘난 사람이나요. 누구에겐 더 많이 주고 누구에겐 덜 주지 않고요.
 
차별 없이 공평한 이 '달빛 샤워'를 하면서 시인님은 불현듯 깨닫습니다. 이렇게요.    
 
아, 추석이구나

- 유자효 시 '추석' 중에서

 
아, 부모님이구나! 빗방울이네는 이 구절을 이렇게 읽었습니다. 시인님은 그 추석 밤의 달빛이 자신의 '반백의 머리를 쓰다듬는' 부모님의 손길이라고 느꼈을까요? 옆에 안 계시다고 느꼈던 부모님이 이렇게 자연의 모습으로 늘 가까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까요? 달빛으로 햇빛으로 바람으로 빗방울로요.
 
추석을 떠올리면 부모님이 가장 먼저 생각납니다. 서울서 부산까지 목포까지 포항까지 대여섯 시간을 달려서 가는 곳이 부모님 품입니다. 오로지 부모님 다정한 목소리, 부모님 익숙한 품 냄새, 거칠하지만 따스한 부모님 손의 감촉을 떠올리며 갑니다. 그것 말고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지요? 
 
아주 늦게 늦게, 기다리던 시인님의 아들이 골목 어귀에 불쑥 나타났겠지요? 혼내려고 잔뜩 벼르고 있던 아버지, 그 꽁꽁 얼었던 가슴은 부모님이 건네준 '황금 달빛 샤워'로 다 녹아버렸겠지요?
 
종선아, 괜찮제? 밥은 먹었나? 어서 집에 가자···. 함 보자, 짜슥, 언제 이리 컸뿠노!
 
아, 이런 추석은 얼마나 따뜻한 가을밤(秋夕)이었겠는지요?
 
이 특별한 가을밤, 부모님 품속에서 나오는 '황금 달빛 샤워'로 그대 세상모르고 평안하시길!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자식 키우는 아버지 마음이 담긴 박목월 시인님의 시 '바람소리'를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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