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맛집으로 남구 '내호냉면'의 냉면을 맛봅니다. 상호에 있는 냉면도 좋고, 이 집이 창시한 밀면도 좋은 곳입니다. 함께 읽으며 먹으며 몸과 마음을 일으켜 세우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Since 1919 '내호냉면' 소개
'내호냉면'(부산 남구 번영로 26번 길 17)은 부산 향토음식으로 꼽히는 밀면을 처음 개발한 곳으로 유명한 맛집입니다. 이 집의 주요 메뉴는 냉면과 밀면, 두 가지입니다.
이 집 명함에 'Since 1919'라고 찍혀있네요. 이 해 함경도 흥남에서 냉면집(동춘면옥)을 열었고, 1953년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와 내호냉면을 재창업한 집입니다. 냉면으로는 100년을 넘긴 집이네요.
부산 남구 명물음식점 지정, 식신 부산 최우수 레스토랑 선정, 백년가게 선정 등으로 그 맛을 공인받은 집입니다.
주택가의 외지고 좁은 골목에 숨어 있습니다. 오픈런해도 줄 서야 하고, 자리가 나더라도 앉아서 기다려야 하는 맛집입니다. '주문 즉시 조리합니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양해 바랍니다'. 식당 벽에 붙은 이런 안내문은 얼마나 사람을 든든하는지요.
메뉴를 볼까요?
이 집에선 밀면이 많이 나가는가 봅니다. 키오스에 밀면이 전진 배치되어 있네요.
밀면(8,000~9,000원), 비빔밀면(8,500~9,500원), 비빔냉면(함흥 11,000~13,000원), 물냉면(11,000~13,000원), 온면(11,000~13,000원), 백밀면(8,000원)이 있습니다.
사이드 메뉴로는 냉면사리(4,000원), 밀면사리(2,000원), 찐만두(6,000원), 가오리회가 있고요.
2. 밀면도 좋지만, 정통 함흥냉면을 만날 수 있는 집
북한에서 냉면집을 하다 그 노하우로 부산에서 처음 밀면(밀가루로 냉면처럼 만든 면)을 제조한 '내호냉면'에서 오늘은 냉면을 맛봅니다.
1919년 함흥시 흥남에서 냉면집을 시작했다고 하니 함흥냉면이 이 집 대표선수입니다. 참고로 함흥냉면은 비빔냉면이고, 평양냉면은 물냉면입니다.
이 집 대표선수 비빔냉면을 기다리며 따뜻한 육수부터 한 모금합니다. 종이컵이라도 거기 담긴 육수 맛은 깊네요. 일회용 컵은 위생적이긴 할 텐데요, 뜨거운 육수가 담긴 두툼한 사기 컵을 두 손으로 감싸 쥐며 주문한 냉면을 기다리면 더 좋을 텐데요.
그 사이 함흥발(發) 비빔냉면이 식탁 위에 도착했네요.
대접에 동그랗게 들어앉은 비빔냉면의 비주얼이 시선을 압도합니다. 그 모습이 도도하고 짱짱하달까요? 주문 즉시 주방에서 공들여 만들었다는 '작품'이네요. 이 작품이 곧 위장으로 '순간이동'할 예정이랍니다.
면은 초벌로 비벼져 있네요. 그 위에 채 썬 오이, 무 김치, 삶은 계란 반쪽, 돼지수육 두 점, 그리고 붉은 고추장 양념이 올라가 있습니다. 이 집은 소고기가 아니라 돼지 수육이네요.
눈으로 시식하는 것만으로도 목울대가 허락 없이 큰 출렁임으로 요동칩니다.
망설임 없이 냉면의 성채를 허물어 쓱쓱 비빕니다.
- 이리 온! 바로 네가 북녘의 함흥을 대표하는 향토음식이랬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이런 모양, 이런 맛의 음식을 함께 먹으며 똑같이 맛있어하고 행복해하는군!
한 입 먹어봅니다. 와, 이거 냉면에 어떤 마법을 건 거지? 눈앞에서 불꽃놀이가 시작되네요.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지요?
이 훌륭한 맛에서 단맛을 조금 덜어내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함흥냉면 대접을 깨끗이 닦았습니다^^. 자진해서 바닥까지요.
3. '내호냉면'이 자리 잡은 소막마을의 슬픈 사연은?
'내호냉면'이 있는 곳(우암동 189-671번지)은 부산 남구 우암동 소막마을입니다.
소막? 무슨 말일까요? 소(牛) 막사라는 뜻입니다.
소 막사라면 소가 거주하는 공간을 말할 텐데, 거기에 왜 소 막사가 있었을까요?
바로 이곳이 일제 강점기 때 일본으로 실어 보낼 소를 검역하던 곳입니다. 소에게 병이 있는지 없는지 조사하는 검역소였네요.
이 소들은 우암동 앞쪽에 있는 부산항을 거쳐 일본 시모노세키로 보내졌습니다.
소막마을은 일본이 우리 한우를 수탈해 갔던 역사적 현장인 것입니다.
소막은 1909년 처음 우암동에 세워졌고 일본으로의 소 이출이 증가하면서 최대 19개 동이 들어섰다.
(중략)
일본으로 소를 송출하던 거점은 당시 국내에는 원산, 성진, 인천 등 6곳이 있었는데 그중에 우암동이 규모가 가장 컸다.
우암동을 통해 한해 3만 마리 이상의 소가 일본으로 건너갔다.
▷부산 남구청 구보 「남구 사람들」(2023.7.4) 중에서.
조선 소가 일본으로 가기 시작한 것은 1876년 부산항 개항부터라고 합니다.
1879년 우역(소에게 생기는 치명적인 바이러스성 질환)을 예방하기 위해 검역이 시작됐고요.
위 신문에 따르면, 일본은 서양인 같은 체질을 갖추기 위해 자국민들에게 육식을 장려합니다. 그것이 '탈아입구(脫亞入歐)' 정책이라고 했다는군요. 아시아(亞)를 벗어나(脫) 서구(歐)로 간다(入)는 뜻이네요. 왜소한 체격을 서양인처럼 만든다는 정책입니다.
그전에 일본은 가축도살 금지로 무려 1,200년 간 고기를 먹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탈아입구'를 위해 육식 금지령이 풀렸고 육식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우리 소까지 데려갔네요.
그 소막에 해방 이후, 또 한국전쟁 때에는 소가 아닌 '사람'이 살게 되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거주할 곳이 없어서 그때까지 있던 소 막사에 칸막이를 쳐서 피난민들이 살게 되었습니다.
소막은 물론이고 돼지막에 기거하기도 했고, 병든 소 화장터, 개울가 같은 곳에 움막을 치고 살았다고 합니다.
북녘에서 온 '내호냉면' 창업주 정한금 씨도 그중 한 사람이었네요.
정한금 씨네들이 이곳으로 와서 터를 잡은 곳도 돼지막이었다.
지금 가게의 서쪽은 소마구였고 가게로부터는 돼지막이었다.
전후에 서울 등지의 피난민들은 모두 환도하고 이북난민들만 몰려들기 시작할 때여서
소를 운동시켰다는 곳에다 하꼬방부터 일구었다.
▷주경업의 인물기행 「부산의 꾼·쟁이들을 찾아서」(부산민학회, 2007년)의 '밀면 창시 정한금' 인터뷰 중에서
그 '하꼬방'(판잣집)에서 탄생한 '내호냉면'입니다.
'내호냉면'의 냉면과 밀면에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슬픈 시간이 스며있었네요.
북녘 함흥의 흥남에 있던 냉면집 '동춘옥' 냉면이 전쟁 통에 오롯이 부산 우암동 소막마을로 오게 되었네요.
그러므로 이 집 비빔냉면은 본고장 맛의 대를 이은 정통 함흥냉면이라 할 수 있겠네요.
글 읽으며 가끔 맛있는 음식 먹으며 몸과 마음을 북돋우는 '독서목욕'에서 '함경면옥'의 냉면을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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