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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노천명 시 오월의 노래

by 빗방울이네 2024.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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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명 시인님의 시 '오월의 노래'를 만납니다. 오월의 찬란 속에서 느끼는 그리움과 고독에 대한 시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노천명 시 '오월의 노래' 읽기

 
오월의 노래
 
노천명(1911~1957, 황해도 장연)
 
보리는 그 윤기 나는 머리를 풀어헤치고
숲 사이 철쭉이 이제 가슴을 열었다
 
아름다운 전설을 찾아
사슴은 화려한 고독을 씹으며
불로초 같은 오시(午時)의 생각은 오늘도 달린다
 
부르다 목은 쉬어
산에 메아리만 하는 이름 -
 
더불어 꽃길을 걸을 날은 언제뇨
하늘은 푸르러서 더 넓고
마지막 장미는 누구를 위한 것이냐
 
하늘에서 비가 쏟아져라
그리고 폭풍이 불어다오
이 오월의 한낮을 나 그냥 갈 수는 없어라
 
▷노천명 시집 「사슴」(노천명 지음, 창작시대, 2012년) 중에서.
 

2. 그리움과 고독의 시 '오월의 노래'

 
노천명 시인님의 '오월의 노래'는 그리움과 고독의 시로 읽힙니다.
 
만물이 진초록으로 물드는 찬란한 오월, 시인님은 그 찬란 뒤에서 고독의 늪에 빠져 몸부림을 치네요.
 
어떤 시일까요? 
 
'보리는 그 윤기 나는 머리를 풀어헤치고 / 숲 사이 철쭉이 이제 가슴을 열었다'
 
오월의 만물은 생명력이 넘치네요.
 
'보리'. 우리는 보통 보리가 팬다고 하지요? 겨울을 지낸 보리싹의 키가 껑충 자라서 마침내 줄기에서 이삭이 나오는 것을 말합니다.
 
시인님은 그것을 머리를 풀어헤친다고 하네요.
 
오월의 태양 아래 시인님도 보리처럼 긴 머리카락을 풀어헤치고 싶었을까요?
 
환희에 가득 찬 오월의 생명들에 대한 묘사에는 시인님의 마음이 담긴 것만 같네요.
 
'아름다운 전설을 찾아 / 사슴은 화려한 고독을 씹으며 / 불로초 같은 오시(五時)의 생각은 오늘도 달린다'
 
시인님은 오월의 '오시(五時)'와 '정오(正午)'를 시의 중요한 소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라일락 숲에 내 젊은 꿈이 나비처럼 앉은 정오(正午)'
▷노천명 시 '푸른 오월' 중에서
 
이처럼 시 '푸른 오월'에서도 정오(正午)가 등장했고, 이 시 '오월의 노래'에는 '오시(五時)'가 등장했네요.
 
오시(五時)는 낮 11시~1시 사이, 정오(正午)는 그 중간인 낮 12시를 말합니다.
 
시인님은 왜 이렇게 오월과 연관된 시에서 오시(五時) 또는 정오(正午)를 등장시켰을까요?
 
오시(五時)는 만물을 기르는 햇볕의 따뜻한 기운인 양기(陽氣)가 가장 충만한 시간이라고 합니다. 
 
특히 일 년 중에서 양기가 가장 왕성한 시기는 음력 5월 5일, 즉 오월의 초닷새를 뜻하는 단오(端五)입니다.
 
이 단옷날 중에서도 양기가 최고조에 이르는 시간이 오시(五時)라고 합니다.
 
그래서 농가에서는 단옷날 햇살이 퍼지는 시간인 오시(五時)를 기해 익모초와 쑥을 뜯어 1년 내내 약으로 사용하는 풍습이 있을 정도입니다.
 
온갖 생명이 약동하는 오월, 그것도 생명을 살리는 좋은 양기(陽氣)가 가장 많다는 오시(五時)는 불로초의 시간이라 할만하네요.
 
그런데요, 사랑만 한 불로초가 따로 있을까요?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시인님에게도 '불로초 같은 오시(五時)'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격정적인 사랑 -.
 
위 책에 따르면,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시인님은 46세 짧은 생애 동안 뜨겁고 깊은 한 차례의 사랑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사랑하는 이에게는 사랑하는 다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불 같은 사랑이었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네요.
 
이 사연을 알고 나니 아래 구절이 금방 가슴으로 뛰어들어옵니다.
 
'아름다운 전설을 찾아 / 사슴은 화려한 고독을 씹으며'
 
시인님의 고독이 사슴에 이입되어 있네요.
 
시인님은 과거 한차례 자신에게 휘몰아친 불 같은 사랑, 불로초처럼 자신에게 영원한 생명을 줄 것만 같았던 아름다운 사랑, 그러나 이루지 못한 안타까운 사랑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이 찬란한 오월의 하늘 아래에서 말입니다.
 
이 휘황 찬란 속의 고독을 어찌해야 할까요?
 

"마지막-장미는-누구를-위한-것이냐"-노천명-시-'오월의-노래'-중에서.
"마지막 장미는 누구를 위한 것이냐" - 노천명 시 '오월의 노래' 중에서.

 

 

 

3. 찬란 속에 더 짙어지는 고독, 고독 속에 더 빛나는 찬란

 
'부르다 목은 쉬어 / 산에 메아리만 하는 이름 -
더불어 꽃길을 걸을 날은 언제뇨 / 하늘은 푸르러서 더 넓고 / 마지막 장미는 누구를 위한 것이냐'
 
그리운 이를 얼마나 애타게 불렀을까요?
 
그러나 목쉰 메아리만 되돌아온다고 하네요.
 
'더불어 꽃길을 걸을 날'. 세상에 만발한 꽃길을, 지난날 '불로초의 시간'에는 함께 걸었던 그 꽃길을 지금은 혼자 걷고 있는 시인님입니다.
 
'마지막 장미는 누구를 위한 것이냐'. 오월이 가면 이 화려한 장미마저 곧 져버릴 것입니다.
 
그 마지막 장미를 사랑하는 이와 함께 볼 수 없는 시인님의 애타는 심정이 전해져 오네요. 
 
시인님은 찬란한 오월 속에서 절절한 그리움에, 외로움에 몸부림을 치는 것만 같습니다.
 
이런 외로움은 시인님의 다른 시 '푸른 오월'에서도 등장합니다.
 
'계절의 여왕 오월의 푸른 여신(女神) 앞에 내가 웬일루 무색하구 외롭구나'
▷노천명 시 '푸른 오월' 중에서
 
오월의 찬란함 속에 투영된 한없이 보잘것없고 외로운 자신이 보였나 봅니다.
 
찬란 속에서 고독은 더 짙어지는가 봅니다.
 
고독 속에서 찬란은 더 빛나고요.
 
그래서 지난날 뜨겁게 사랑하던 사람의 부재가 더 몸서리치게 느껴졌겠네요.
 
'하늘에서 비가 쏟아져라 / 그리고 폭풍이 불어다오 / 이 오월의 한낮을 나 그냥 갈 수는 없어라'
 
이게 무슨 일인지요? 대체 무슨 심사일까요?
 
시인님은 오월의 한낮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심정인 것만 같습니다.
 
오월이 너무 찬란하여 상대적으로 자신의 그리움과 외로움이 더 짙어지는 것만 같다고요.
 
그래서 비가 쏟아지고 폭풍이 몰아쳐 오월의 찬란함이 다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심정인 것만 같습니다.
 
그러면 이 지독한 그리움과 외로움이 없어질 것 아니겠느냐고요.
 
사랑을 상실한 시인님의 고독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네요.
 
이 같은 시인님의 격정적인 몸부림, 숨기지 않는 솔직한 감정 표출이 역설적으로 오월의 찬란을 더욱 빛나게 하네요.
 
그대는 오월의 이 찬란 속에 찬란한가요? 고독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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