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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김광섭 시 저녁에 읽기

by 빗방울이네 2023.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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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섭 시인님의 시 '저녁에'를 만납니다. 유심초의 노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로 잘 알려진 시입니다. 시인님과 함께 밤하늘 별 하나를 바라보면서 마음을 맑히며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김광섭 시 '저녁에' 읽기

 
저녁에
 
- 김광섭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이산 김광섭 시전집」(홍정선 책임편집, 문학과지성사, 2005년) 중에서

 
김광섭 시인님(1905~1977)은 함경북도 경성 출신으로 일본 와세다대학 영문과를 졸업했습니다. '고요한 서정과 냉철한 지성에 시대적 민족적 고뇌와 저항이 융화된 시를 써서 주목받았으며, 창씨개명 반대와 반일 사상으로 인하여 일제 말기에 3년 8개월간 옥고를 치렀습니다(「이산 김광섭 시선접」 중에서)'. 1938년 발간된 첫 시집 「동경(憧憬)」을 비롯, 「마음」 「해바라기」 「성북동 비둘기」 「반응」 등 5권의 창작 시집과 「김광섭시선집」 「겨울날」 등의 시선집이 있습니다. 서울특별시문화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국민훈장 모란장, 예술원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2. 별, 그대 그리고 나 - 이 아름다운 삼각형의 꼭짓점들

 
김광섭 시인님의 시 '저녁에'는 1969년에 발간된 시인님의 4번째 시집 「성북동 비둘기」에 실린 작품입니다. 시인님은 60세 되던 1965년 뇌출혈로 쓰러져 10여 년 동안 투병생활을 했습니다.
 
그 힘든 시기에 쓰인 시가 바로 '저녁에'입니다. '삶에 대한 깊은 관조와 아름다운 인간 의지를 원숙하고 구체적인 표현으로 육화 시킨 작품(「이산 김광섭 시선집」 중에서)'을 발표해 온 시인님은 이 시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요?
 
저렇게 많은 중에서 /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 김광섭 시 '저녁에' 중에서

 
시의 화자는 지금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별을 바라보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외로움이 진하게 느껴지네요. 이 세상에 문득 혼자인 듯한 고독 말입니다. 절벽에 홀로 매달린 기분요. 이를 어찌할까요?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 김광섭 시 '저녁에' 중에서

 
그런데요, 이 땅의 수많은 사람 중에서 어떤 한 사람이 내가 보고 있는 바로 그 별을 쳐다본다고 하네요. 이 얼마나 아련하고, 또 얼마나 뜨거운 시구인지요?
 
문득 「월든」의 문장이 생각나네요.
 
별들은 얼마나 아름다운 삼각형의 꼭짓점을 이루고 있는가!
우주 속의 궁궐에 사는 다양한 존재들이
얼마나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 같은 순간에 같은 것을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 「월든」(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김석희 옮김, 열림원, 2021년) 중에서

 
이렇게 고독한 우리는 또 이렇게 다정하네요. 같은 '우주 궁궐에' 살아가면서 서로 수만리 떨어져 있어도 '같은 순간에 같은 것'을 바라볼 수 있으니까요. 저 별 하나와 나와 먼 곳의 그대, 깊은 심연 같은 인간 존재의 절대고독 속에서도 우리는 이렇게 '아름다운 삼각형'을 이루고 있네요. 그대, 지금 거기 있지요, 나 지금 여기 있어요!
 
밤이 깊을수록 /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 나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 김광섭 시 '저녁에' 중에서

 
참으로 아득하네요. 시간이 지나면 모든 존재는 사라진다고 합니다. 별도 나도 사라진다고 합니다. 그러니 나와 같은 별을 바라보던, 아름다운 삼각형의 다른 꼭짓점에 있는 그대도 사라지겠지요? 우리에게 필연적으로 다가올 소멸의 시간을 알면서도 존재의 유한성을 떠올리니 이렇게 가슴이 아리네요.
 
이렇게 정다운 / 너 하나 나 하나는 / 어디서 무엇이 되어 / 다시 만나랴

- 김광섭 시 '저녁에' 중에서

 
시인님은 참으로 우리를 따듯하게 위로해 주네요. 그렇게 밝음 속으로 또는 어둠 속으로 사라져도 정다운 우리는 다시 만난다고 합니다. 무엇이 되어 만날 지는 모르지만요. 언제 만날 지도 모르지만요. 백년 또는 천년의 세월 속에 서로 몰라보고 또 몰라보고 그냥 스쳐가는 일이 수백 번 있을지라도 우리는 만난다고 하네요. 이 얼마나 한없이 안타까운지요, 그러면서 또 얼마나 다행인지요? 
 

김광섭시저녁에중에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김광섭 시 '저녁에' 중에서.

 

 

3.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시 '저녁에'는 가요로 만들어져 1980년대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1981년 발표된 남성 듀엣 유심초의 노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가 그것입니다. 함께 불러보죠.
 
저렇게 많은 별들 중에 별 하나가 나를 내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너를 생각하면 문득 떠오르는 꽃 한 송이
나는 꽃잎에 숨어서 기다리리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나비와 꽃송이 되어 다시 만나자

- 유심초 노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가사

 
가요에서는 시에 없는 2절이 추가됐네요. 나비와 꽃송이로 다시 만난다는 이야기는 서럽지만 아름답게 다가오네요.
 
빗방울이네는 대학시절 친구와 둘이서 통기타로 이 노래를 자주 불렀습니다. 유심초 형제처럼 듀엣으로요. 빗방울이네가 화음을 맡았지요.
 
나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아아아~
 
그렇게 잘 부르진 못했지만, 이 부문의 화음에 매료되어 강의도 빼먹고 부르고 또 불렀답니다.
 
그런데요, 그 굵직한 저음을 가진 친구가 안타깝게도 몇 해 전 불의의 사고로 먼 곳으로 가고 말았답니다. 
 
이렇게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우리, 정말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까요? 아스라이 멀어져 별이 된 친구가 그리운 밤입니다.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김광섭 시인님의 시 '아기와 더불어'를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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