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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조 시 생명 읽기

by 빗방울이네 2023.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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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조 시인님의 시 '생명'을 만납니다. 이 시는 우리에게 고통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삶의 진통을 견디게 해주는 힘을 줍니다. 함께 마음을 맑히며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김남조 시 '생명' 읽기

 
생명
 
- 김남조
 
생명은 추운 몸으로 온다
벌거벗고 언 땅에 꽂혀 자라는
초록의 겨울 보리,
생명의 어머니도 먼 곳에서
추운 몸으로 왔다
 
진실도
부서지고 불에 타면서 온다
버려지고 피 흘리면서 온다
 
겨울 나무들을 보라
추위의 면도날로 제 몸을 다듬는다
잎은 떨어져 먼 날의 섭리에 불려 가고
줄기는 이렇듯이
충전(充電) 부싯돌임을 보라
 
금 가고 일그러진 걸
사랑할 줄 모르는 이는 친구가 아니다
상한 살을 헤집고
입맞출 줄 모르는 이는 친구가 아니다
 
생명은 추운 몸으로 온다
열두 대문 다 지나온 추위로
하얗게 드러눕는
함박눈 눈송이로 온다
 
김남조 시인님은 1927년 경북 대구 출신으로 1948년 연합신문에 시 '잔상' 등을 발표했고, 1953년 첫 시집 「목숨」을 내면서 본격적으로 문단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한국시인협회, 한국여성문학인회, 한국가톨릭문인회 회장을 역임했습니다. 시집 「나아드의 향유」 「나무와 바람」  「사랑초서」 「바람세례」 「귀중한 오늘」 등 19권과 수필집 「잠시 그리고 영원히」 등, 콩트집 「아름다운 사람들」 등을 냈습니다. 자유문협상, 오월문예상, 한국시인협회상, 서울시문화상, 대한민국예술원상, 3·1 문화상, 국민훈장 모란장, 은관문화훈장 등을 받았습니다.
 

2. 광야에 나가 나의 불꽃을 일으켜야 한다!

 
시의 제목부터 호기심을 불러일으킵니다. 시의 제목이 '생명(生命)'이군요! 과연 우리에게 어떤 말을 건네는 걸까요?
 
생명은 추운 몸으로 온다
벌거벗고 언 땅에 꽂혀 자라는 / 초록의 겨울 보리
생명의 어머니도 먼 곳에서 / 추운 몸으로 왔다

- 김남조 시 '생명' 중에서

 
시의 첫 줄 '생명은 추운 몸으로 온다'가 이 시의 솟대입니다. 가장 높은 구절, 그래서 이 시를 저 높은 곳으로 올려주는 구절, 주제를 함축하는 구절이네요. '생명'은 '내'가 살아서 숨 쉬고 활동할 수 있게 하는 힘을 말합니다. 그런데 '살아있다'는 의미는 무얼까요? 그저 숨 쉬는 것일까요? 참되게 올바르게 살아있음을 말하네요. 생명은 참되게 올바르게 살아있게 하는 힘입니다.
 
그런데 그런 힘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하네요. 추운 몸, 고통을 견디고 오는 것이라 합니다. 벌거벗고 언 땅에 꽂혀 자라는 보리처럼 그렇게 벌거벗고 언 땅에 꽂힌 적이 얼마나 있느냐고 우리 모두에게 묻는 것만 같습니다.
 
진실도 / 부서지고 불에 타면서 온다 / 버려지고 피 흘리면서 온다

- 김남조 시 '생명' 중에서

 
생명이 진실로 대치되면서 생명의 의미가 더 뚜렷이 드러납니다. 생명이 오는 법은 진실이 오는 법과 같다고 합니다.
 
겨울 나무들을 보라 / 추위의 면도날로 제 몸을 다듬는다
잎은 떨어져 먼 날의 섭리에 불려 가고 / 줄기는 이렇듯이 / 충전(充電) 부싯돌임을 보라

- 김남조 시 '생명' 중에서

 
이 3연을 읽으며 우리는 김남조 시인님의 전언(傳言)을 들어야겠습니다. 
 
"사람의 전원(電源)은 그 자신의 피땀으로 일구는 것이며
자기 안의 유산을 그 자신이 상속받음과 같다.
말하자면 자력(自力)의 충전(充電)이다.
때문에 어느 때 불이 꺼지면 또다시 작은 부싯돌을 들고
광야에 나가 불을 일구어야 한다.
여러 천만 번이라도 돌을 맞아야 한다."

- 「한국대표시인 101인선집 - 김남조」편(문학사상사) '작가론' 중에서 

 
위 3연의 의미가 한결 뚜렷하게 다가옵니다. 이 문장의 '사람의 전원'이란 바로 '생명'이라 할 수 있겠네요. '나'를 참되게 진실되게 살아있게 하는 에너지는 어디 다른 곳으로부터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바로 '나'의 피땀으로 일구는 것이라 합니다.
 
그런 에너지가 떨어지면 '나'는 광야(!)에 나가 에너지를 스스로의 힘으로 충전해야 한다고 합니다. '광야의 돌'에 천만 번이라도 부딪히면서 불꽃을 일으켜야 한다고 합니다. 오늘도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관계망에서 '광야의 돌'에 부딪히며 절망하고 흘리는 눈물이 나를 살아있게 하는 에너지라 합니다!
 

김남조시생명중에서
김남조 시 '생명' 중에서.

 

 

3. 상한 살을 헤집고 입 맞추어 보았는가!

 
금가고 일그러진 걸 / 사랑할 줄 모르는 이는 친구가 아니다
상한 살을 헤집고 / 입맞출 줄 모르는 이는 친구가 아니다

- 김남조 시 '생명' 중에서

 
우리는 이 구절에서 '고통'에 대해 사유하게 됩니다. 고통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삶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 합니다. 남의 고통에 공감하고 함께 아파할 줄 모르는 이는 생명을 모르는 이라 합니다. 나의 '상한 살을 헤집고' 상처를 핥아주시던 어머니, 할머니!
 
생명은 추운 몸으로 온다
열두 대문 다 지나온 추위로 / 하얗게 드러눕는 / 함박눈 눈송이로 온다

- 김남조 시 '생명' 중에서

 
마지막 5연이 있어 우리는 얼마나 다행한 지요? 춥고 벌거벗고 얼고 부서지고, 불에 타고 버려지고 피 흘리고, 추위의 면도날로 자신을 다듬던 시간들을 따스하고 포근하게 덮어주는 느낌이네요. 아, 부드러운 눈송이들이여! 길고 추운 생명의 여정, 참되고 순수하고 아름답게 나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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