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주홍 아동문학가님의 동시 '해 같이 달 같이만'을 만납니다. 오랜만에 동시를 읽으면서 저마다의 깊은 곳에서 출렁이고 있는 동심의 우물물을 퍼올려 마음목욕을 합시다.
1. 이주홍 '해 같이 달 같이만' 읽기
해 같이 달 같이만
- 이주홍(1906~1987)
어머니라는 이름은
누가 지어냈는지
모르겠어요
어 ··· 머 ··· 니 ··· 하고
불러 보면
금시로 따스해 오는
내 마음
아버지라는 이름은
누가 지어냈는지
모르겠어요
아 ··· 버 ··· 지 ··· 하고
불러 보면
오오 - 하고 들려오는 듯
목소리
참말 이 세상에선
하나 밖에 없는
이름들
바위도 오래 되면
깎여지는데
해 같이 달 같이만 오랠
엄마 아빠의
이름.
- 「이주홍아동문학전집 6」(이주홍문학재단) 중에서
이 동시는 우리나라 아동문학의 초석을 놓은 아동문학가 이주홍 님의 대표 동시로 꼽힙니다. 그가 살았던 동래 온천장 근처 금강공원에 그의 시비(詩碑)가 있는데 이 동시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 동시는 이주홍 님이 58세 때인 1963년 8월 24일 동아일보에 발표된 것입니다. 동아일보 지면에는 이주홍 님의 소개로 '아동문학가, 소설가. 지은책 「수호지」 등 많이 있다.'라고 되어 있네요.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저자 소개로 느껴집니다.
그런데 이주홍 님은 그 이력을 짧게 소개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신 '한국 문학의 큰 나무'입니다. 1987년 그의 별세를 추도하는 신문기사를 소개합니다.
향파는 문학의 전 장르에 걸쳐 천재성을 드러냈다. 시 소설 희곡 아동문학에서 그의 예지는 번득였으며 다감한 음성을 들려주었다. 그런가 하면 글씨와 그림 및 잡지편집에도 빼어났다. (중략) 향파의 이런 다재다능은 앞으로 좀처럼 보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부산일보 (1987.1.6)
2. 이렇게 따뜻한 이름 누가 만들었을까요?
어느 날 이주홍 님은 '어머니'와 '아버지'라는 단어를 처음 누가 만들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던 것입니다. '어머니' 하고 불러보면, 아니 '어··· 머··· 니 ···' 하고 마음속에 어머니를 떠올리며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불러보면 마음이 '금시로' 따스해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경우, '아··· 버··· 지 ···' 하고 불러보면 '오오 - '하고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고 합니다. 마음이 따듯해지거나 든든해진다고 하지는 않았네요. '오오-' 하고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고 했네요. 가장인 아버지는 어머니와는 달리 말이 많지 않고 아이에게 다소 엄한 인상을 주는 대상일까요? 그래도 언제나 아이의 부름에는 '오오-, 우리 빗방울이네!' 하고 벌려주시는 팔 사이로 아버지의 넓은 가슴이 보이는 듯합니다.
이 동시에는 '금시로'라는 부사와 '참말'이라는 감탄사가 시의 맛을 돋우는 역할을 하고 있네요. '금시로 따스해 오는 내 마음'에서 '금시로'는 '지금 당장'이라는 한자말인데, 아이가 어머니의 따스한 품 속으로 스르르 무너져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켜줍니다. '참말 이 세상에선 하나밖에 없는 이름들'에서 '참말'은 아이 특유의 말맛을 실감 나게 해 주네요. '아!'라는 감탄사보다 말입니다.
3. 힘들 때 가만히 '어머니' '아버지' 불러보면 어떨까요?
저는 '해 같이 달 같이만'을 읽고, 이주홍 님이 이 동시를 통해 어른들에게도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살면서 혼자 힘으로 이겨내기 어려운 일이 생기면 '어··· 머 ··· 니 ···' 또는 '아··· 버··· 지 ···' 하고, 속으로 천천히 불러보라고 하네요. 그러면 금시로 마음이 따스해 올 거라고 말입니다. '오오-'하며 팔을 벌려주시는 아버지의 든든한 목소리가 들릴 거라고 말입니다. 그러면 힘이 날 거라고 합니다.
이 동시는 김태호 작곡가님의 작곡으로 '해 같이 달 같이만' 동요로 만들어졌고, 1990년 KBS 전국어린이동요대회를 통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습니다. 동시 구절구절에 입혀진 흥겹고 정다운 가락으로 동시의 맛이 더욱 살아나는 것 같습니다. 오늘 이 동요를 한번 찾아 들어보면서, 흥얼거려보면서 사랑하는 어머니 아버지를 떠올려 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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