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 시인님의 시 '산유화'를 읽으려 합니다. 이 시는 어떤 향기를 우리에게 전해줄까요? 김소월 시인님이 피워놓은 아주 특별한 산유화 향기로 마음을 씻으며 함께 독서목욕을 해보십시다.
1. 김소월 시 '산유화' 읽기
산유화(山有花)
- 김소월
산에는 꽃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요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 김소월 시집 「소월의 명시」(한림출판사) 중에서
김소월 시인님(1902~1934)은 평북 구성 출생으로 정주 오산학교에서 스승 김억으로부터 시를 배웠습니다. 18세이던 1920년 「창조」 3월호에 '낭인(浪人)의 봄' 등으로 등단, 1925년 첫시집 「진달래꽃」을 출간했습니다. 배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도쿄대학 상과에 입학했지만 관동대지진으로 중퇴한 뒤 귀국해 할아버지의 광산일을 돕고, 평북 구성군에서 동아일보 지국을 경영했습니다. 1934년에 요절했습니다.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선정 '20세기를 빛낸 한국의 예술인'에 선정됐으며, 1981년 예술인에게 수여되는 최고 훈장인 금관문화훈장을 받았습니다.
2. 산에서 꽃을 만나면 생각나는 시
김소월 시인님의 '산유화'는 등산을 하다가 산에서 꽃을 만나면 생각나는 시입니다. 그 산꽃을 보면 '산에는 꽃피네 꽃이 피네 ~' 하는 시구가 입에서 저절로 나옵니다.
김소월 시인님은 '산유화'를 통해 우리에게 '바로 당신이 한 떨기 산유화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목을 '산꽃'이라고 하지 않고 왜 '산유화'라고 했을까요? '산새'를 '산유조'라고 하지 않는데 말입니다. 산유화(山有花)라는 단어는 '꽃이 다른 곳이 아니라 산에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해 줍니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요?
다른 곳이 아닌 '깊은 산속'에서 꽃을 만나면, 평소 잘 하지 않던 깊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요.
- 이토록 예쁜 꽃이 아무도 안 보는 산속에 피어있다니. 이토록 무심히 피어나 그윽한 향기로 새를 불러 자손을 퍼뜨리고 또 무심히 지다니.
김소월 시인님은 이렇게 자유로운 무욕의 삶에 대해 생각하다 '산유화'라는 시를 쓰게 되었을까요? 저렇게 한 떨기 산유화처럼 살다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 욕심 없이, 아무 두려움 없이, 아무 슬픔이나 기쁨조차 없이!
3.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서울의 지인이 오랜 언론사 생활을 끝내고 경기도의 어느 한적한 마을에 귀촌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집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 집 뜰에 이 시 '산유화'가 둥근돌에 새겨져 있었습니다.
- 선배님, 왜 하필 '산유화'를 새기셨나요?
- 응, 그냥 시가 좋아서······
우리는 산유화 시비 옆에서 조용히 차를 마셨습니다. 기삿거리 찾기에, 글쓰기에, 마감시간에 늘 긴박하게 쫓겨야 했던 기자생활의 끝에서 그는 그만 큰 병을 얻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건강을 잃고 난 그에게, 그동안 가보지 못했던 삶의 어떤 길이 보였던 걸까요? 외진 산속에서 그토록 아름다운 꽃이 아무 자랑 없이 마냥 피어나는, 그렇게 향기롭게 피고 또 아무렇지 않은 듯 지는 산유화가 무언으로 가르쳐주는 자족(自足)의 삶을 생각해낸 걸까요? 돌에 새길만큼 '산유화' 시를 좋아하게 된 까닭이 무엇이냐고 더 이상 묻지 못했습니다.
- 탐욕 없이, 속임 없이, 갈망 없이, 위선 없이, 혼탁과 미혹을 태워 버리고, 세상의 온갖 바람에서 벗어나 코뿔소의 외뿔처럼 혼자서 가라.
-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물에 때 묻지 않는 연꽃같이 코뿔소의 외뿔처럼 혼자서 가라.
- 「숫타니파타」(전재성 역주, 한국빠알리성전협회) 중에서
부처님의 문장과 김소월 시인님의 문장이 같은 뜻으로 들리네요. 탐욕없는 자유로운 삶 말입니다.
- 산에 / 산에 / 피는 꽃은 /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 김소월 시 '산유화' 중에서
우리는 언제나 외로운 존재여서 끊임없이 관계를 맺습니다. 실망하고 힘들어하면서 반복합니다. 이렇게 좌충우돌하는 우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김소월 시인님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다'라고 합니다. 저만치 혼자서 핀 산유화를 보라고 합니다.
빗방울이네는 눈을 감고 깊고 어두운 산속에서 홀로 핀 이름모를 산유화를 떠올려봅니다. 한 떨기 산유화로 치환되어, 이 빽빽한 어둠과 외로움이 하나도 두렵지 않다는 산유화의 자세를 연습해 보는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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