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중 시인님의 동요 '옹달샘'을 만나 봅니다.
어린아이들만 부르는 동요라고요?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어른이 된 그대라도 부르면 얼마나 좋을까요?
함께 읽으며 부르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윤석중 동요 '옹달샘' 가사 읽기
옹달샘
윤석중(1911~2004년, 서울) 동요, 외국곡
깊은 산 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새벽에 토끼가
눈 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보고 가지요.
맑고 맑은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달밤에 노루가
숨바꼭질하다가
목마르면 달려와
얼른 먹고 가지요.
▷「윤석중 전집 17- 동요 따라 동시 따라」(웅진출판, 1988년) 중에서.
2. 옹달샘에 온 토끼는 왜 물만 먹고 갈까요?
엊그제였는데요, 마음속에서 불쑥 '옹달샘'이 뛰어나와 요 며칠 사이 자꾸 웅얼거리게 되었어요.
왜 그랬는지 빗방울이네도 잘 모르겠지만요.
동요 부를 나이는 훨씬 지났는데 말입니다.
그래도 솟아나온 '옹달샘'을 어쩌겠는지요? 부르고 또 불렀답니다.
'깊은 산 속 옹달샘 / 누가 와서 먹나요?'
이렇게 부르다 보니 빗방울이네는 자꾸 아이가 되네요.
아이 때로 돌아가네요.
지금은 안 계시지만, 그때는 엄마 아빠도 함께였고요,
빗방울이네 키보다 더 큰 엄마소가 그 기다란 혀로 소년 빗방울이네의 머리카락을 천천히 쓰다듬어주었지요.
아, 무엇보다 엄마 품에 포옥 안길 수 있었네요! 엄마 품에서 나던 엄마 냄새가 지금도 나는 것만 같고요.
그 엄마 냄새는 달콤한 땀냄새라고 할까요?
'새벽에 토끼가 / 눈 비비고 일어나 / 세수하러 왔다가 / 물만 보고 가지요'
어서 일어나 세수하고 온나!
이렇게 엄마가 이른 아침에 깨우면 빗방울이네는 눈도 못 뜬 채 엉금엉금 우물가로 갔는데요,
엄마가 안 보는 사이 얼굴에 물만 묻히는 '고양이 세수'를 하곤 했네요.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보고 가지요 - 세수하러 왔다가 / 물만 먹고 가지요
윤석중 시인님의 원래 동요(파란색)가 노랫말이 되면서 조금(초록색) 바뀌었습니다.
동요 속의 이 토끼도 빗방울이네처럼 새벽에 엄마 토끼의 성화에 세수하러 왔던 토끼였을까요?
물만 보고 가고, 또 물만 먹고 가네요. 토끼, 너 세수는 아예 안 하니!
3. 옹달샘에 온 노루는 왜 얼른 먹고 갈까요?
'맑고 맑은 옹달샘 / 누가 와서 먹나요?'
잘 안 부르던 2절을 불러보니 2절도 참 재미있네요.
'달밤에 노루가 / 숨바꼭질하다가 / 목마르면 달려와 / 얼른 먹고 가지요'
노루는 얼마나 순한지!
두 눈망울은 또 머루처럼 얼마나 까맣게요.
그 노루가 달밤에 숨바꼭질하다가 목마르면 옹달샘으로 달려와 물을 먹고 간다고 합니다.
'목마르면 달려와 / 얼른 먹고 가지요'
여기 '얼른' 좀 보셔요. 왜 '얼른'일까요?
얼른 먹고 또 놀아야 하니까요. 친구들과 하던 숨바꼭질 얼른 가서 해야 하니까요.
빗방울이네도 친구들과 놀다가 엄마가 부르면 '응 갈게!' 하고 대답은 잘했답니다.
그리고는 잊어먹고 한참 또 놉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이렇게 몇 차례 엄마와의 줄다리기가 이어집니다.
그러면 빗방울이네 집 담장 너머로 하얀 수건을 쓴 엄마 얼굴이 쑥 올라오게 되어 있어요.
저녁밥 먹어야지. 이제 빨리 온나!
엄마 목소리의 톤이 가늘어지면서 높아집니다.
그래, 알았다니깐!
'얼른 먹고 가지요'
친구들아, 얼른 먹고 올게, 우리 또 놀자!
빗방울이네도 노루처럼 얼른 먹고 친구들에게로 갔겠지요?
4. 내 안의 '아이'를 만나는 순간
그런데요, 참 신기한 일이네요.
이 '옹달샘' 동요를 웅얼웅얼 부르고 있으니까 빗방울이네 아이가 되어버린 것 같았답니다.
아이처럼 혀짜래기소리로 노래하고요,
손은 앞으로 가지런히 모으고요, 무릎도 가끔 접기도 하고요.
그러다보니 얼굴도 해맑은 아이처럼 주름 근육 다 풀어진 듯 편해지네요.
이런 빗방울이네는 초등학교 2학년쯤 되었을까요?
그때 '옹달샘'을 부르던 아이 빗방울이네가 불쑥 튀어나온 거네요.
교실에서 선생님 풍금소리에 맞춰서 친구들과 제비처럼 입을 모아 부르던 '옹달샘'이었답니다.
교실 창문 밖은 매미소리, 그리고 바람에 흔들리던 플라타너스 널따란 이파리들이 보이는 것도 같고요.
그러니까 '그때의 옹달샘'을 '그때의 빗방울이네'가 지금 이 시간에 부르는 거네요.
아, 작은 빗방울이네입니다.
선생님 말씀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었던 착하디 착한, 소년 빗방울이네요.
왼쪽 가슴에 콧물 닦는 손수건을 달고 있다니!
다가가 살며시 안아주고 싶은 귀여운 빗방울이네입니다.
문득 가슴이 뜨거워지는 건 왜일까요? 지금 사는 일이 너무 서러워서일까요?
이렇게 내 안의 '아이'를 만나는 순간은 또 언제일까요?
5. '귓전에 제 어릴 때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그렇게 며칠 사이 동요 '옹달샘'을 부르며 '소년 빗방울이네'를 쓰담쓰담해주고 있었지요.
TV에서 방송인 김대호 님이 나오는 '나 혼자 산다'를 보았답니다.
그가 30년 만에 초등학교 5학년 때의 담임 박점석 선생님을 만나는 장면요.
내성적이었던 김대호 소년에게 먼저 다가와 친구처럼 챙겨주었던 고마운 선생님이라고 하네요.
초등학교 앞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김대호 님이 맞은편에 나타난 선생님을 발견하곤 감격해 이렇게 말합니다.
- 아, 선생님···.
그 소리는 평상시 그의 목소리가 아닌, 짧고 깊은 신음소리 같았달까요?
나중에 김대호 님은 울먹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 선생님을 본 순간, 제 귓전에 어릴 때의 제 목소리가 들렸어요!
그러니까 '아, 선생님!'이라는 말을 지금의 그가 아닌 '김대호 소년'이 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 김대호 소년의 목소리로 말입니다.
그 김대호 소년의 작은 키로, 그 순백의 마음으로 말입니다.
그렇게 울컥해진 그는 자신도 믿을 수 없다는 듯, 떨리는 목소리로 더듬거리며 이렇게 말했답니다.
- 그 짧은 시간, 내가 애기가 된 것 같았어요!
30년 전의 선생님을 발견한 순간, 지금 40대인 그가 12살 '김대호 소년'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잠시 후 식당에서 그는 선생님 품에 안겨 펑펑 울었습니다. 한동안이나요.
이제 선생님보다 덩치가 더 커져 버린 그가 소년으로 돌아가 선생님 품에 포옥 안긴 채 말입니다.
12살 소년이 40대 중년이 되기까지 세상 서러웠던 일 선생님에게 다 일러바치고 싶었겠지요?
선생님은 품에 안긴 제자의 등을 하염없이 두드려 주시네요.
- '고생했어'라고 말해 주시는 것 같았어요.
이렇게 선생님은 김대호 님의 깊은 곳에 있던 '소년'을 불러내 위로해 주었네요.
얼마나 고마웠을까요?
'깊은 산속 옹달샘 / 누가 와서 먹나요?'
깊은 산속에 있는, 아무도 찾지 않는 차고 맑은 옹달샘입니다.
이 옹달샘처럼, 우리 깊은 마음속에는 아이가 있었다니!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있는, 세상 물정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그 아이 말입니다.
'세수하러 왔다가 / 물만 먹고 가지요'
'옹달샘'을 서너 번 부르고 나니 차고 맑은 옹달샘물을 마신 듯 속이 후련해지네요.
내 안의 순수한 '아이'로 돌아가 보니 세상 사는 서러움 좀 씻겨진 듯도 하고요.
이제 가끔 '옹달샘'을 흥얼거리며 옹달샘처럼 맑은 '아이'가 되어 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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