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포프 시인님의 시 '고요한 생활'을 만납니다. 고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고독을 좋아하시나요? 즐거운 고독 말입니다. 시인님이 발견해 우리에게 건네주는 소중한 시의 자양분으로 마음을 맑히며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알렉산더 포프 시 '고요한 생활' 읽기
고요한 생활
- 알렉산더 포프
소는 젖을 주고, 밭은 빵을 주며
양은 옷을 마련해 준다.
그 나무들은 여름이면 그늘을 드리워주고
겨울이면 땔감이 된다.
축복받은 사람이다. 아무 신경 쓰지 않고
시간도 날짜도 해도 고요히 흘러가서
몸은 건강하고 마음은 평안하여
낮에는 별일 없다.
밤에는 깊은 잠에 학문과 휴식이 있고
즐거운 오락도 있으며
잡념 없이 전적으로 즐기는 일이란
고요히 묵상하는 것
이렇게 살련다. 남몰래 이름도 없이
탄식하는 일 없이 죽고 싶어라.
이 세상을 소문 없이 떠나, 잠든 곳을
알리는 묘비도 없이.
- 「장석주 시인의 마음을 흔드는 세계 명시 100선」(장석주 엮음, 북오션) 중에서
알렉산더 포프 시인님(Alexander Pope 1688~1744)은 영국에서 반 가톨릭 정서가 강했던 시기에 가톨릭 신자의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때 가톨릭 신자들은 투표권도 없었고 대학에 진학하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이 같은 사회적 제약으로 정식 교육을 받지 못한 시인님은 독학으로 공부했는데 여러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고 비범한 시적 재능을 발휘했다고 합니다. 12세에 결핵에 걸려 척추가 손상되는 등 건강이 좋지 못했다고 합니다. 21세 때인 1709년 첫 시집 「전원시」로 유명 인사가 되었으며, 대표작은 풍자시 「우인열전」, 철학 시 「인간론」 등이 있습니다. 명쾌한 문장과 통렬한 풍자로 많은 찬사를 받았던 시인님은 「비평론」 「머리카락을 훔친 자」 「윈저의 숲」 등의 저서를 발간하고,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오디세이」를 번역하는 등 많은 문학적 업적을 남겼습니다.
2. '낮에는 별일 없다'
오늘 만나는 시 '고요한 생활'의 원문 제목은 'Ode on Solitude'입니다. 'Ode'는 특정한 사람이나 사물, 또는 사건에 부치는 시, 송(頌), 부(賦) 등으로 번역됩니다. 그래서 이 시 제목은 '고독부' '고독의 노래' 등으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는 위 책 엮은이인 장석주 시인님의 안내에 따라 '고요한 생활'이라는 제목으로 된 번역본을 읽겠습니다. 장 시인님은 이 시를 소개하면서 이렇게 다른 제목을 붙였을 뿐만 아니라 이 시의 1연을 생략했는데, 이는 장 시인님이 이 시의 핵심을 도드라지게 드러나도록 해서 우리에게 잘 전해주기 위한 배려일 것입니다.
이 시의 어떤 부분에서 그대 마음 출렁하였는지요?
낮에는 별일 없다
- 알렉산더 포프 시 '고요한 생활' 중에서
빗방울이네는 2연의 마지막 행 '낮에는 별일 없다'에서 출렁출렁 그랬습니다. 이 행의 원문은 'Quiet by day'입니다. 이런 '낮'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빗방울이네는 욕심없이 혼자 고독을 벗삼아 사는 이를 알고 있습니다. 그는 사회의 이런저런 일들과 일정 거리를 두고 있을 때 마음이 고요하여 편안하다고 합니다. 그런 고요한 상태에서 그에게 '어떤 일'이 생기면 조용한 호수에 돌이 떨어진 듯 마음이 일렁인다고 하네요. 어떤 일은 그에게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하면 더 잘할 수 있다'는 욕심을 내게 할 때가 있는데 그때 그의 마음은 아주 심하게 요동친다고 합니다.
물론 책임지고 해야할 일은 해야겠지요. 이런저런 일들과 나 사이에 거리를 둔다는 의미는 나의 마음에 욕심을 내지 않는다는 말이겠지요. 그런 일들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의 손에 맡기고, 또는 새로운 인물들이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는 것을 말하겠지요. 그것이 나에게 돈이나 명예 같은 이익을 주는 경우라도 말입니다.
3. '이렇게 살련다 남몰래 이름도 없이'
잡념 없이 전적으로 즐기는 일이란 / 고요히 묵상하는 것
- 알렉산더 포프 시 ‘고요한 생활’ 중에서
여기 ‘묵상’의 원문은 ‘meditation’입니다. 명상입니다. 깊고도 고요한 호흡으로 정신과 신체를 깨우는 명상과 함께하는 고독이라면 그것은 즐거운 고독임이 분명하겠네요. 명상과 고독은 서로 다른 이름의 같은 실체인 것만 같습니다. 시의 화자는 그런 명상을 자신이 ‘잡념없이 전적으로 즐기는 일’이라고 하네요!
이렇게 살련다. 남몰래 이름도 없이 / 탄식하는 일 없이 죽고 싶어라 / 이 세상을 소문 없이 떠나, 잠든 곳을 / 알리는 묘비도 없이
- 알렉산더 포프 시 '고요한 생활' 중에서
이런 상태의 삶을 지향하는 사람은 고요하게 혼자 있을 때에도 내면이 무엇인가로 충만할 것 같습니다. 안에 무엇이 꽉 차 있을 것 같습니다. 무한한 세계 같은 것 말입니다. 그러면 혼자 있어도 결코 혼자인 것 같지 않은 상태가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 속에서 오히려 고독감을 느끼게 되고, 상처받곤 하는 우리에게 이 시는 즐거운 고독, 충만한 고독을 권하는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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