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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정현종 시 천지를 다 기울여 매화가

by 빗방울이네 2025.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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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종 시인님의 시 '천지를 다 기울여 매화가'를 만납니다.
 
매화나무 가지의 수많은 꽃 몽오리 가운데 먼저 피어나는 꽃이 꼭 있습니다.
 
그 매화가 시인님에게 무슨 말을 했다고 하네요. 무슨 말일까요?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정현종 시 '천지를 다 기울여 매화가' 읽기

 
천지를 다 기울여 매화가
 
정현종(1939년~ , 서울)
 
삼월 하순
매화나무에 온통 작은 꽃 몽우리!
그런데 거기 두 송이가 먼저 피어 있다!
그럴 때 그 두 송이는
무슨 강력한,
무슨 소리 높게 은밀한 전언을 하고 있다,
천지를 다 기울여 말하고 있다,
나는 전폭적으로,
천지를 다 기울여 웃었다!
한반도는 흉흉하고
이 나라는 혼미한데,
정치는 뜻 없이 시끄럽고,
정치판의 얼굴들
나라의 존망이 걱정되는 너무나도 심각한
그런 때의 순간순간을 넘어가면서도
별로 그런 느낌도 없는 듯,
오 이 나라에는 왜 이다지도
난중에 또 인물난입니까 하느님! 하고
한탄하게 하는
얼굴, 얼굴, 얼굴들······
그 흉흉한 한반도의 여기
그 혼미한 나라의 여기
먼저 피어난 매화 두 송이가
봄이 와도 시들하게 하는
한반도의 우울을 향해
소리 높게 은밀한 전언을 하고 있다.
이다지도 마음을 무겁게 하는 우울을 향해
천지를 다 기울여 말하고 있다······
▷정현종 시집 「어디선가 눈물은 발원하여」(문학과지성사, 2022년) 중에서.
 

2. 여든의 노시인에게 먼저 핀 두 송이 매화가 한 말은?

 
시 '천지를 기울여 매화가'는 정현종 시인님의 시집 「어디선가 눈물은 발원하여」에 실려 있습니다.
 
이 시집은 2022년 10월에 발간됐습니다.
 
시인님 83세 때입니다.
 
우리가 너무나 사랑하는 '방문객' '섬' 같은, 별처럼 빛나는 수많은 시를 전해주신 시인님의 시, '천지를 다 기울여 매화가'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삼월 하순 / 매화나무에 온통 작은 꽃 몽우리!'
 
어느 매화나무에나 꼭 이런 매화 한 두 송이쯤 있습니다. 먼저 피는 송이 말입니다.
 
80세가 넘은 시인님이 자주 가는 산책길의 매화나무인가 봅니다.
 
이 노시인님은 시의 도입부에 느낌표(!)를 세 개나 사용하고 있네요.
 
그 마음이 얼마나 휘몰아쳤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첫 번째 감동은 '매화나무에 온통 작은 꽃 몽우리'가 뽀록뽀록 돋아있는 것을 봤을 때입니다.
 
'삼월 하순'으로 아직 쌀쌀한데 너희들 정말 장하구나! 노시인님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네요.
 
춥더라도 잘 견뎌보려무나! 이렇게 말하고 눈길을 다른 가지로 옮기는 순간입니다.
 
수많은 꽃 몽우리 가운데 먼저 피어난 꽃송이를 발견했습니다.
 
'거기 두 송이가 먼저 피어 있다!'
 
이 구절에도 느낌표가 붙었네요. 시인님의 두 번째 감동입니다.
 
사진으로 보니 정현종 시인님 눈이 아주 커다랗습니다. 순한 암소의 커다란 눈이 떠오르는 눈입니다.
 
그 순하고 큰 눈의 동공이 더 크게 확장되었을 것만 같은 순간이네요.
 
아니! 너희들! 어쩌려고! 이 추위에! 반가움과 걱정에 더듬거리는 시인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는 것만 같고요.
 
그리고 분명 시인님은 두 송이 먼저 피운 매화나무 가지에 바짝 다가갑니다.
 
광산에서 황금의 씨를 발견한 광부의 마음 이리 두근거렸을까요? 그 몸짓 이리 조심조심 신중했을까요?  
 
'그럴 때 그 두 송이는 / 무슨 강력한, / 무슨 소리 높게 은밀한 전언을 하고 있다,'
 
그렇게 다가갔더니 '그 두 송이'가 '전언을 하고 있다'라고 하네요.
 
'전언(傳言)'은 전하는 말입니다.
 
그것도 '강력한' '전언', '소리 높게 은밀한' '전언'이라고 하네요.
 
어디 그뿐인가요? 
 
'천지를 다 기울여 말하고 있다,'
 
먼저 피어난 '두 송이'가 '전언'을 하는데 '천지를 다 기울여 말하고 있다'라고 하네요.
 
이 구절, 시의 제목이 되었을 정도로 시인님이 사랑하는 구절이네요.
 
'천지를 다 기울여'
 
천지(天地)는 하늘과 땅을 이르는 말일 텐데요, '천지를 다 기울여'는 천지의 기운을 다 짜내어, 하늘만큼 땅만큼 혼신(魂神)을 다한다는 말이겠지요? 
 
그렇게 '천지를 다 기울여' '두 송이' 매화는 시인님에게 무슨 말을 전했을까요?
 
그러나 그 '전언'의 내용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단서가 더 필요합니다.
 
한 줄 더 읽어봅니다.
 
'나는 전폭적으로, / 천지를 다 기울여 웃었다!'
 
그러니 그 '두 송이' 매화가 노시인님에게 무슨 말을 하긴 했나 봅니다.
 
그 매화의 '전언'을 듣고 '웃었다'라고 했으니까요.
 
'전폭적(全幅的)'은 '절대적으로', '완전하게'라는 의미입니다.
 
완전히 공감해서 웃었다는 말이네요. '천지를 다 기울여' 말입니다.
 
그러나 그 '전언'의 내용은 아직 나오지 않았네요.
 
지금까지의 진술로 보아 그 '전언'의 내용은 우스운 것입니다.
 
'웃었다'는 말은 허가 찔렸다는 것, 약하거나 허술한 곳이 찔렸다는 것이네요.
 
우스운 것은 무거운 것, 또는 진지한 것과는 거리가 멀 것입니다.
 
가벼운 것일지라도 그냥 헤프게 가볍기만 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가벼운 것, 그것도 '천지를 다 기울여' 수긍할 만한 것입니다.
 
노시인님의 고정관념이나 평소의 믿음을 보기 좋게 한판 뒤집기 해버린 기발한 것이겠지요?
 
'두 송이' 매화의 '전언'은 정말 무엇이었을까요?
 
수사망은 조금씩 좁혀 들고 있는 듯합니다만, 아직은 단서가 더 필요합니다.
 

"먼저 피어난 매화 두 송이가 봄이 와도 시들하게 하는 한반도의 우울을 향해 소리높게 은밀한 전언을 하고 있다."- 정현종 시 '천지를 다 기울여 매화가' 중에서.

 

3. '정치판의 얼굴들', '한탄하게 하는 얼굴 얼굴 얼굴들······'

 
'한반도는 흉흉하고 / 이 나라는 혼미한데,'
 
시집 발간일을 고려하면, 이 시가 쓰인 시점은 2022년 10월 이전, 지금(2025년 3월)으로부터 3년 전쯤입니다.
 
시에 나온 대로 흉흉하고 혼미한 시간입니다.
 
그 시간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지는 않겠습니다. 좋은 분위기 날아갈까 봐요. 저마다 그즈음 사정을 짐작해 보시길!
 
지금이라고 그 상황이 나아졌겠습니까만요.
 
'정치는 뜻 없이 시끄럽고,'
 
'뜻 없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빈 껍데기, 그것도 시끄럽기만 하다고 합니다.
 
자기편에 유리하게 거짓말은 예사, 거기에 상대방에게 덮어씌우기도 서슴지 않습니다.
 
표를 얻기 위해서라면 영혼을 내던지기 일쑤입니다.
 
이런 '정치'의 시간은 아수라장의 시간입니다.
 
'정치판의 얼굴들'
 
이 구절 위에 오늘날의 '정치판의 얼굴들'이 오버랩되네요.
 
스스로 지역발전에 제일가는 일꾼이라고 나섰던 '얼굴들'이었습니다.
 
허리 굽혀 표를 달라고, 되면 정말 잘하겠다던 '얼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어디 보이면 채널을 돌리고 싶은 '얼굴들'이라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그것이 혹시 매화의 '전언'과 어떤 관계가 있지는 않을까요? 조금 더 들어가 봅니다.
 
'나라의 존망이 걱정되는 너무나도 심각한
그런 때의 순간순간을 넘어가면서도 / 별로 그런 느낌도 없는 듯,'
 
여든이 넘은 노시인님의 장탄식이 들리는 것만 같네요.
 
그렇게도 나라 발전에 내가 최고라고 해서 뽑아줬더니, '나라의 존망이 걱정되는 너무나도 심각한' 순간도 나 몰라라 하고, 자기 잇속 차리기에 급급하다는 말이네요.
 
누구긴요, '정치판의 얼굴들' 말입니다.
 
'오 이 나라에는 왜 이다지도 / 난중에 또 인물난입니까 하느님! 하고
한탄하게 하는 / 얼굴, 얼굴, 얼굴들······'
 
노시인님은 '얼굴, 얼굴, 얼굴들······'이라고 또 장탄식을 내뱉습니다.
 
'정치판'에 얼마나 못난 얼굴들이 많았으면 말줄임표까지 쓰셨네요. 셀 수 없다는 말이네요.
 
이처럼 '얼굴'이 많이 등장하는 걸 보니 이 '얼굴'에 힌트가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우리가 애타게 찾고 있는 매화의 '전언' 말입니다.
 
이제 이 시의 마지막에 도착했으니 그 '전언', 드디어 나오겠지요?
 
'그 흉흉한 한반도의 여기 / 그 혼미한 나라의 여기
먼저 피어난 매화 두 송이가 / 봄이 와도 시들하게 하는
한반도의 우울을 향해 / 소리 높게 은밀한 전언을 하고 있다.
이다지도 마음을 무겁게 하는 우울을 향해 / 천지를 다 기울여 말하고 있다······'
 
하아! 이거 정말 낭패네요. 
 
그 '전언'이 무엇이었다는 말이 끝내 없네요.
 
'봄이 와도 시들하게 하는 한반도의 우울을', '이다지도 마음을 무겁게 하는 우울을' 향해 외치는 매화 '두 송이'의 '전언' 말입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습니다.
 
이럴 때는 직접 들어보는 수밖에요.
 
누구에겐들 '천지를 다 기울여' 사랑하는 매화나무 한 그루쯤 없겠는지요?
 
점심을 먹은 빗방울이네, 산책길의 매화나무에게 내처 달려갔습니다.
 
매화나무에게서 그 '전언'의 작은 속삭임이라도 들을 수 있을까 해서 말입니다.
 
'삼월 하순 / 매화나무에 온통 작은 꽃 몽우리!'
 
빗방울이네 매화나무에도 '온통 작은 꽃 몽우리!'였습니다.
 
그중에 먼저 핀 '두 송이'는 없고, 다행히 먼저 피려는 '두 송이'는 있었습니다.
 
그 '두 송이'에게 다가갔습니다. 안경까지 벗고, 조심조심 살금살금 두근두근 하면서요.
 
빗방울이네의 뾰족한 코가 가지에 닿을 만큼 가 보니, 그 '두 송이' 한 75%쯤 피어났달까요?
 
비단 같이 하얀 꽃잎들이 자신들을 둘러싼 작은 몽우리를 우산처럼 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들여다 보니, 참으로 '천지를 다' 기울이는 듯했습니다.
 
숨을 참으며(점심때 파김치 먹은 입이어서요)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이 75%로부터 어떤 속삭임을 기필코 듣고야 말겠다는 듯이요.
 
돋보기라고 가져올 걸, 하면서 거의 눈이 닿을 듯 다가갔을 때 정말 어떤 소리가 들라는 것 같았습니다.
 
그 잘났다고 생각하는 '상판' 좀 치우시오!
 
아마도 이 문장이었을 겁니다. 저 우주에서 들려오는 듯 아득하게 희미한 소리, 빗방울이네 순간 깜짝 놀라 한걸음 물러서야 했습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요. 그 '전언'에 '전폭적으로 천지를 다 기울여' 수긍하면서요.
 
햇빛을 가리니 좀 비켜 달라는 말이었을까요?
 
그 '상판'으로 햇빛을 가려, 지금 소중하기 그지없는 금쪽 같은 나의 세상을 온통 그늘로 만들어 놓고 지금 뭐 하고 있느냐는 말이었을까요?
 
포근한 햇빛, 엄마 젖 같은 햇빛을 먹으며 졸며 깨며 평화롭게 피어나고 싶은데 왜 난데없이 나타나 훼방 놓느냐는 말이었을까요?
 
그건 정말 75%의 말이었을까요?
 
그런 매화의 마음은 바로 빗방울이네 마음이었을까요?
 
노시인님이 먼저 핀 매화 '두 송이'로부터 들었다는 '전언'도 정작 노시인님이 하고 싶은 말이었을까요?
 
그것도 '천지를 다 기울여' 흉흉하고 혼미하여 걱정스러운 세상에 대고 말입니다.
 
이 시의 제목처럼, '천지를 다 기울여 매화가'못난 '정치판의 얼굴들'에 대고 말입니다.
 
이번 빗방울이네의 ‘수사과정’에서, 먼저 피어난 매화 '두 송이'의 '전언'의 내용은 물증 없는 심증으로 어느 정도 짐작할 수는 있게 되었네요.
 
이렇게 우리가 매화의 '전언'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짐작할 수 있다는 일은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요?
 
'정치판의 얼굴들'도 저마다 자신만의 매화나무가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지요?
 
그러면 자신의 내부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텐데요. 먼저 핀 '두 송이'로부터 말입니다.
 
만약 그대가 지금 그대만의 매화나무에게 간다면, 먼저 피어난 '두 송이'는 그대에게 무엇이라고 '전언'할까요?
 
그대의 마음처럼 메아리로 돌아오게 될 '두 송이'의 '전언'이야말로 그대가 그대에게 하고 싶은, 이미 잘 알고 있는 깊은 말 아닐까요?
 
사랑하는 그대의 매화나무에게로 어서 가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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