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쉬킨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만납니다. 200년 전의 시입니다. 그 사이 많은 사람들이 이 시를 징검돌로 고단한 삶을 건너왔습니다. 삶의 고달픔을 위로해 주는 시인님의 깊은 통찰 속으로 우리 함께 들어가 마음을 씻으며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푸쉬킨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읽기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푸쉬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지 말라, 성내지 마라!
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면 -
기쁨의 날이 옴을 믿어라.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오늘은 언제나 슬픈 것 -
모든 것은 한순간에 지나가는 것,
지나간 것은 또다시 그리워지는 것을.
- 푸쉬킨 서정시집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박형규 옮김, 써네스트) 중에서
알렉산드르 푸쉬킨 시인님(1799~1837)은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 근교에서 600년 전통의 유서 깊은 귀족 혈통으로 출생했습니다. 비밀결사와의 친교, 보론쏘프 장군의 아내와의 사랑, 아버지와의 불화, 나탈리야와의 열애와 결혼 등 개인적인 불운과 고난 속에서도 운문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 서사시 「집시들」 「청동의 기사」, 중편소설 「벨킨의 이야기」 「스페이드 여왕」, 비극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등 많은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푸쉬킨은 아내 나탈리야를 짝사랑하는 프랑스 망명 귀족 당테스와의 결투에서 총상을 입고 이틀 후 3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위 시집은 러시아 문학자이자 1세대 번역가인 박형규 전 고려대학교 교수님(노문학과)의 역저입니다. 박 교수님은 2023년 4월 3일 향년 92세의 일기로 별세했습니다. 소중한 시를 우리에게 건네주신 박형규 교수님의 명복을 빕니다.
2. '모든 것은 한순간에 지나가는 것'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의 집필 연도는 1825년으로 시집에 기록되어 있네요. 푸쉬킨 나이 26세 때입니다. 청년 시인 푸쉬킨의 삶에 대한 통찰력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해 주는 시입니다.
우리말 첫 번역본은 1950년에 나온 것으로 알려졌는데, 1960~1970년 사이 이 시는 국내에서 큰 인기를 누리게 됩니다. 이발소나 음식점 벽에 필수품처럼 걸려있던 시였습니다. 산업화 시대, 서민들의 고단한 삶을 위로해 주고 희망을 불어넣어 주던 시였습니다. 먼 타국 시인의 시 한 구절에 마음을 기대어 내일의 희망을 기약하며 오늘의 고통을 참았던 거네요.
지금(2023년)으로부터 198년 전의 시이지만 국경과 이념의 경계를 넘어 오늘날에도 여전히 애송되는 시입니다. 그대는 이 시의 어느 구절에 마음을 빼앗겼는지요?
모든 것은 한순간에 지나가는 것
- 푸쉬킨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중에서
이 시구가 이 시의 '솟대'인 것 같습니다. 이 시구는 다윗왕의 반지에 새겨져 있었다는 문장을 떠올리게 하네요. 서로 같은 의미를 가진 시구이네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
오늘 우리에게 닥친 삶의 고단함이 지속적으로 우리에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한 순간에 지나간다고 하네요. 고통으로 숙였던 고개를 들었을 때 가슴 속으로 들어온 이 시구는 얼마나 큰 위로가 되겠는지요. 현실의 고통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주는 문장입니다.
지나간 것은 또다시 그리워지는 것을
- 푸쉬킨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중에서
참으로 공감이 가는 시구입니다. 우리는 예전에 힘들었던 일을 돌이켜보면서 '그 만한 일로 내가 그렇게 힘들어했다니!' 하고 스스로 놀랄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 고통을 감내했던 시간들이 아련히 그리워지기까지 합니다.
그러므로 이 시구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도 나중에는 그리워할 때가 있다는 전언이기도 하네요. 이런 점을 잘 음미하면 지금의 고통을 잘 견디며 과거로 보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 왜 오늘은 언제나 슬픈 것이라고 할까요?
시의 앞 부분으로 돌아가 이 구절을 만납니다.
오늘은 언제나 슬픈 것
- 푸쉬킨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중에서
왜 시인님은 오늘은 언제나 슬프다고 했을까요? 이 말은, 현재의 삶은 항상 괴로움으로 가득 차 있다는 의미로 다가옵니다. 붓다에 따르면, 삶이 괴로움이라는 것은 무상(無常) 하기 때문, 즉 항상 그대로 있지 않고 변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생로병사를 말하네요. 항상 그 자리에 머물러 주기를 바라는 자신의 의지와 다르게 '나'는 끊임없이 생로병사의 변화를 겪습니다. 무상한 것이 당연한 진리인데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괴로움이고 슬픔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언제나 슬픈 것'이라는 것을, 삶은 원래 '나'의 의지와 다르게 무상하다는 것을 깊은 통찰 속에서 받아들인다면 삶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성내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삶의 통찰을 보여주는 시 한 편 더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