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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박목월 시 사월 상순 읽기

by 빗방울이네 2023.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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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목월 시인님의 시 '사월 상순'을 만납니다. 자꾸 읽다 보면 환한 기운이 마음 속에 차오르는 시입니다. 밝고 좋은 기운을 주는 보약 같은 시의 울림 속에서 마음을 씻으며 독서 목욕을 하십시다.
 

1. 박목월 시 '사월 상순' 읽기

 
사월(四月) 상순(上旬)
 
- 박목월
 
누구나 
인간(人間)은
반쯤 다른 세계에
귀를 모으고 산다.
멸(滅)한 것의
아른한 음성(音聲)
그 발자국 소리.
그리고
세상은 환한 사월(四月) 상순(上旬).
 
누구나
인간은
반쯤 다른 세계의 
물결 소리를 들으며 산다.
돌아오는 파도(波濤)
집결(集結)하는 소리와 
모래를 핥는
돌아가는 소리.
 
누구나 
인간(人間)은
두 개의 음성(音聲)을 들으며 산다.
허무한 동굴(洞窟)의
바람 소리와
그리고 
세상은 환한 사월(四月) 상순(上旬).
 

- 「박목월 시 전집」(이남호 엮음·해설, 민음사) 중에서

 
박목월 시인님(1916~1978)은 1939년 「문장」지에 정지용 시인님의 추천으로 등단한 이래 40여 년 동안 끊임없이 쏟아낸 500여 편에 이르는 주옥같은 시들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한국 대표 서정시인입니다. 특히 그는 늘 깨어있는 자세로 자신의 시 세계를 새롭게 개척한 시인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2. 참으로 환한 '세상은 환한 사월 상순'

 
그리고 / 세상은 환한 사월(四月) 상순(上旬)

- 박목월 시 '사월 상순' 중에서

 
저는 박목월 시인님의 시 '사월 상순' 중에서 이 구절이 좋습니다. 시를 읽다 보면 이 구절에 도돌이표가 찍힌 것처럼 자동적으로 되돌아가서 자꾸 흥얼거리게 되고, 그러다 보면 머릿속이 환해지는 것만 같습니다.
 
정말 요즘 '세상은 환한 사월 상순'이네요. 봄이 무르익기 시작한 시간 말입니다. 봄이 무르익어버린 시간 말고요. 나뭇잎들이 연초록에서 초록으로 바뀌기 전의 시간 말입니다. 나뭇잎들이 짙은 초록으로 바뀌어버린 시간 말고요. 사월 상순 말예요.
 
햇빛을 받고 있는 연초록 나뭇잎들 좀 보셔요. 얼마나 환하던지요. 얼마나 영롱하던지요. 나뭇잎의 잎맥 사이로 빠져나온 햇빛을 나무 아래서 쬐면 얼마나 귀한 보약인지요. 마음이 환해지면서 몸도 환해져서는 마음과 몸 속의 실핏줄들이 투명한 연초록 나뭇잎의 잎맥처럼 다 보이는 것만 같습니다. 이 연초록 이파리를 가득 달고 있는 환한 나무 아래에서 박목월 시인님은 '사월 상순'을 썼겠네요.
 
(박목월 시인은) 늘 시 속에서 생활하고 생활 속에서 시를 썼으며, 내면의 아름다움과 진실을 중요시했기에, 목월의 일상과 내면은 그 자체로 순도 높은 시의 광맥이었다고 할 수 있다.

- 위 책의 이남호 문학평론가 글 '한 서정적 인간의 일상과 내면' 중에서 

 
이렇게 내면의 아름다움과 진실을 중요시했던 박목월 시인님이 48세 때 쓴 시가 '사월 상순'입니다(1964년 5월 「세대」지에 발표). 누구에게라도 48세라면 성공과 좌절, 기쁨과 슬픔의 고개를 오르고 내리는 동안 삶에 대한 통찰이 깊고 또 깊어진 시간이겠습니다.
 
누구나 / 인간(人間)은 / 반쯤 다른 세계에 / 귀를 모으고 산다

- 박목월 시 '사월 상순' 중에서

 
그동안 사물과 사건의 한 쪽면만 바라보며 허겁지겁 달라온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시인님은 이즈음 사물이나 사건의 본질, 즉 양면성을 들여다보게 되었나 봅니다. 이제 시인님은 '멸(滅)한 것의 / 아른한 음성(音聲) / 그 발자국 소리'와 '세상은 환한 사월 상순'을 연결해서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멸한 것'에서 '환한 것'이 나왔다는 자각일 것입니다.
 
이렇게 48세 즈음에 박목월 시인님은 사물이나 사건이 하나로 외따로이 존재하지 않고 원인과 결과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그것을 한꺼번에 보고 들을 수 있게 되었던 걸까요? 4월 상순의 환한 나무 아래에서 그전에 보이지 않았던 이 나무의 어두웠던 겨울날이 생각났던 것일까요? '피어난 나무'에서 '지던 나무'를 보게된 일은 이렇게 불현듯 환하고 환한 사월 상순의 어느날에 찾아왔나 봅니다.
 

박목월시사월상순중에서
박목월 시 '사월 상순' 중에서

 

 

 

3. 사물이나 사건의 본질에 대하여

 
누구나 / 인간(人間)은 / 두 개의 음성(音聲)을 들으며 산다

- 박목월 시 '사월 상순' 중에서

 
박목월 시인님은 이렇게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인간이라면 두 개의 음성을 들으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전언인 것만 같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서로 다른 세계에 귀를 모으고 살아야 한다는 전언인 것만 같습니다.
 
시인님의 전언대로 기쁨(즐거움)이 슬픔(고통)을 잉태하고 있다는 것을, 또한 그 반대인 것을 우리가 안다면 우리는 기쁨이나 슬픔에 보다 초연해질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멸하는 것에 소생하려는 의지가 깃들어있다는 것을 우리가 안다면 비록 멸하는 것일지라도 위대한 자연의 섭리에 대하여 경배할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 목욕'에서 박목월 시인님의 시를 더 읽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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