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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백석 시 남행시초(2)-통영 원문 해설 감상

by 빗방울이네 2026.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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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시인님의 시 '남행시초(2)-통영'을 만납니다.

머리에 갓을 쓰고 통영장을 기웃대는 서울 청년 백석이 보이는 시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백석 시 '남행시초(2)-통영' 원문으로 읽기


南行詩抄(二)-統營 

- 白石

統營장 낫대들엇다

갓한닙쓰고 건시한접사고 홍공단단기한감끈코 술한병바더들고

화룬선 만저보려 선창갓다

오다 가수내 들어가는 주막압헤
문둥이 품마타령 듯다가

열닐헤달이 올라서
나루배타고 판데목 지나간다 간다

- 徐丙織氏에게 -

▷「조선일보」(조선 뉴스 라이버러리, 1936년 3월 6일 석간 5면) 중에서.

"갓 한 닙 쓰고 술 한 병 바더들고" - 백석 시 '남행시초2-통영' 중에서.

 

2. 통영 갓 쓰고 시장을 쏘다니는 백석 좀 보셔요!


백석 시인님(1902~1995, 평북 정주)은 지명 '통영'이 들어가는 제목의 시를 3편 남겼는데, 발표순으로 '남행시초(2)-통영'이 그 세번째 시입니다.

시인님이 조선일보사에 근무할 당시 조선일보 1936년 3월 6일자에 발표한 것입니다.

신문을 찾아보니, 이 시는 이날자 석간 5면의 중앙에 배치되었는데 여백이 많은 시여서 빽빽한 그 지면의 숨통인 것만 같이 느껴지네요.

과연 어떤 시일까요? '독서목욕'이 낸 오솔길을 따라 시를 만나러 갑니다.

첫행입니다.

'統營장 낫대들엇다'

이 구절을 현대어로 풀면 '통영(統營)장 낫대들었다'입니다.

이 시의 첫 시어 '통영장'이 반갑네요.

1936년 통영장은 어디에 섰을까요? 

통영에서 가장 오래된, 통영의 대표 시장은 통영여객터미널 앞에 있는 서호시장입니다.

강구안 근처 중앙시장도 좋습니다.

전어젓, 멸치젓, 갈치젓, 건문어, 아귀포, 오징어, 돌낙지, 문어, 홍합, 소라, 해삼, 전복 ···.

빗방울이네도 통영 가면 이렇게 해산물이 좋은 통영의 시장에 꼭 가는데, 그때 경성(서울)에서 통영까지 온 청년 백석도 '통영장'을 갔었네요.

첫 시어 '통영장'에 이어지는 '낫대들엇다', 즉 '낫대들었다'는 무슨 뜻일까요?

'낫다'('나아가다'의 고어)와 '대들다'가 결합된 말로 '바로 들어갔다' '대뜸 들어갔다'는 뜻으로 풀이되고 있습니다(「정본 백석시집」, 고형진).

또한 이 '낫대'를 '낮때' '대낮에' '한낮에'로 풀이하기도 합니다(「백석의 노래」, 김수업).

이처럼 백석 시인님의 시어는 우리의 상상력을 부풀게 하는 흥미로운 수수께끼 같기만 하네요.

그런데요, 빗방울이네는 '들었다'에서 장이 섰다는 뉘앙스가 느껴지기도 하네요.

그래서 '통영장 낫대들엇다'는 '내가 갔을 때 때마침 통영장이 들어서 있더라'로도 음미해보고 싶습니다.

어느 해석이든, 낯선 통영에 와서 때마침 들어선 통영장에 호기롭게 발을 들인 25세 청년 백석의 설레는 마음이 느껴지는 것만 같네요.

시장 안에서 물 만난 고기 같은, 호기심 가득한 시인님의 눈은 과연 무엇을 보았을까요?

다음 구절을 만나 봅니다.

'갓한닙쓰고 건시한접사고 홍공단단기한감끈코 술한병바더들고'

맙소사! 갓을 샀네요! 아니, 사서 손에 든 게 아니고 머리에 썼네요.

'닢('닙')'은 납작한 물건을 세는 단위로 쓰인 듯하네요. 돈이나 가마니 멍석 따위를 셀 때 쓰는데 여기서는 갓에 쓰였네요.

그 시커먼 통영 갓을 머리에 쓴 25세 청년 백석 좀 보셔요.

그 훤칠한 청년 백석의 키로 보면, '케데헌'의 '사자보이스' 멤버 같았겠네요.

어찌 통영 갓을 안 살 수가 있었겠는지요? 통영 갓은 명품으로 꼽힙니다.

흥선대원군(1821~1898)은 통영까지 사람을 보내 갓을 맞추어섰다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통영은 갓의 본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멋스런 갓을 머리에 쓰고 시장 여기저기를 재빠르게 스크린하며 다니는, 청년 백석의 까불거리는 동작이 보이는 것만 같습니다.

활기 넘치는 시장을 좋아하고, 그런 시장에 가면 이런 모습의 백석입니다.

나는 주먹다시 같은 떡당이에 꿀보다도 달다는 강낭엿을 산다
그리고 물이라도 들 듯이 샛노랗디샛노란 산골 마가을 볕에 눈이 시울도록 샛노랗디샛노란 햇기장 쌀을 주무르며
기장쌀은 기장차떡이 좋고 기장차랍이 좋고 기장감주가 좋고 그리고 기장쌀로 쑨 호박죽은 맛도 있는 것을 생각하며 나는 기뿌다

- 백석 시 '월림장-서행시초 4' 중에서.


시장에 가면 '나는 기뿌다'고 하는 시인님은 통영장에서는 갓 말고 또 무엇을 샀을까요?

'건시 한 접 사고 홍공단 단기 한 감 끈코(끊고) 술 한 병 바더들고(받아들고)'. 그러니까 건시(곶감), 홍공단(붉은 빛깔의 비단) 단기(댕기), 그리고 술도 한 병 샀다고 합니다.

서울에 돌아가면 직장 동료들에게 건넬 선물일까요?

낯선 고장의 재래시장('통영장')에서 그 지역 특유의 풍물을 관찰하고 체험하고 메모하는 백석 시인님의 캐릭터가 뚜렷히 보이는 구절이네요.

그 다음에 청년 백석은 통영의 어디로 갔을까요? 
 

 

3. ‘서병직 씨에게‘를 시 끝에 붙여둔 까닭은?


'화룬선 만저보려 선창갓다'

배를 대는 '선창(선착장)'으로 갔다고 합니다.

그 선창은 지금의 통영 강구안 쯤이었겠지요?

거기에 화륜선(화룬선)이 정박해 있었네요.

화륜선(火輪船)은 목재나 석탄을 태워 나오는 수증기로 배 중앙에 있는 물레방아 바퀴 모양의 추진기를 돌려 항해하는 기선(汽船)입니다.

선창에 정박한 이 화륜선을 '만져보려(만저보려)' 갔다고 하네요.

멀리서 또는 그림에서나 보던 그 화륜선을 통영에 와서 코앞에서 직관하면서 이리저리 둘러보는, 시인님의 신기해하는 눈빛이 보이는 것만 같은 구절이네요.

이 호기심 충만한 청년, 그 다음으로는 어디로 향했을까요?

'오다 가수내 들어가는 주막압헤 / 문둥이 품마타령 듯다가'

'가수내'도 해석이 분분한 시어입니다.

'지명'이라는 풀이(고형진), 또는 '계집아이, 가시내, 가수나, 가시나'라는 풀이(김수업)가 있습니다.

빗방울이네 생각은 뒤의 '계집아이'라는 쪽으로 더 기울어지네요.

'가수내 들어가는 주막'. 어떤 어린 여자는 가난 때문에 술 시중을 들어야 했을까요?

위의 구절을 다시 음미하면, '오다 가수내 들어가는 주막 앞에('압헤') / 문둥이 품바타령(품마타령)을 듣다가(듯다가)'입니다.

선창에 화륜선 구경 갔다 오다가 주막 앞에서 문둥이 품바타령을 들었다는 의미로 새겨봅니다.

품바는 장터나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동냥하는 사람입니다. '문둥이 품바타령'은 문둥이가 동냥하면서 부르는 노래네요.

늘 내쫓기며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한센병 환자('문둥이')들이 방랑하면서 동냥하는 장면을 통영에서 시인님이 보았네요.

앞의 구절('술 한 병 받아들고)'에서 나온 술 한 병은 어느새 다 마셨겠지요?

약간의 취기(醉氣)에 실려 통영의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낮고 쓸쓸하고 팍팍한 삶의 국면에 시선이 가는 시인님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것만 같습니다.

이제 마지막 구절에 도착합니다.

'열닐헤달이 올라서 / 나루배타고 판데목 지나간다 간다'

백석 시인님이 이 시의 '통영'에 왔던 때는 1936년 1월 11일, 음력으로 12월 17일(열이레='열닐헤')이었습니다(「백석 평전」, 안도현).

보름달에서 이틀 지나 약간은 기울어진 달이지만 그래도 휘황한 달빛이었겠네요.

'판데목'은 무얼 말할까요?

통영시청 홈페이지에 보니, 처음 통영반도와 미륵도 사이는 실낱처럼 이어진 육지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의 작전에 말려든 일본함대가 궁지에 몰리자 야밤에 이 육로를 파고 도주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땅을 판 데의 물목'이라는 말을 줄여 '판데목'이라 하였네요.

1932년에는 그 수로를 확장하여 너비 55m, 수심 3m의 충무운하를 개통하였고, 이 해 그 운하 밑에 동양 최초의 해저터널도 완공했다고 합니다.

'나루배타고 판데목 지나간다 간다'. 그러면 1936년 청년 백석은 이 충무운하를 건너고 있었겠네요.

'열닐헤달이 올라서 / 나루배타고 판데목 지나간다 간다'

달빛 환한 통영 바다 위를 나룻배('나루배') 타고 미끄러지듯 빠져나가는 장면입니다. 

이 상황의 주체는 문장 구조상 '달'이기도 합니다. 또한 '나'이기도 하네요.

달도 나도 나룻배를 타고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열이레 달'은 점점 빠지는 달입니다.

어쩐지 한량없이 쓸쓸한 나그네의 초상이 느껴지는 장면이네요. 

'지나간다 간다'

마지막에 '간다'를 두번이나 썼네요.

그래서 나룻배가 휙휙 수면을 헤쳐가는 율동이 느껴지는 것도 같고, 통영에 대고 작별 인사를 고하는 느낌도 드네요.

지금 서울 청년 백석은 사모하는 통영 처녀를 만나러 통영까지 왔다가 못 만나고 빈손으로 가는 길입니다.

'지나간다 간다'

이 인사는 그 통영 처녀에게 건넨 안타까운 작별 인사는 아니었을까요?

'- 徐丙織氏에게 -'

이 시의 마지막에, 시의 수신인으로 적혀있는 문구인데, 그 수신인이 '서병직(徐丙織) 씨'라고 합니다.

이 사람이 이번 통영 여행에서 청년 백석의 일행을 안내하고 대접해준 인물입니다.

그는 백석이 사랑하는 통영 처녀의 외사촌 오빠입니다.

'서병직 씨에게'라는 문구를 시 끝에 달아 세상 사람들이 다 알도록 신문에 발표한 까닭은 무얼까요?

바로 그 통영 처녀 보라고, 그녀에게 보내는 청년 백석의 은근하고 간곡한 메시지 아닐까요?

- 이번 통영 여행에서 외사촌 오빠 덕분에 재미있게 지내다 잘 올라왔어요. 부디 다음에는 우리(!) 만납시다!

그러나 이듬해 4월, 그 통영 처녀는 다른 사람과 결혼하게 됩니다. 이번 통영 여행에 동행했던 백석의 절친과 말입니다.

이렇게 비켜가고 뒤틀리는 얄궂은 사랑!

아무래도 통영에 가봐야겠습니다.

서호시장이나 중앙시장에 가서 백석의 뒤를 졸졸 따라다녀야겠습니다.

그러면서 이 사랑의 비극적 결말을 미리 귀띔해줄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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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시 통영 원문 해설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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