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림 시인님의 시 '농무(農舞)'를 만나봅니다.
'농무'와 함께 우리도 한 다리 들고 어깨 흔들며 저마다의 고단함을 잊어봅시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신경림 시 '농무(農舞)' 읽기
농무(農舞)
신경림(1936~2024년, 충북 청주)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 달린 가설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 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 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나리를 불꺼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꺼나
(1971. 창작과비평)
▷신경림 시집 「농무(農舞)」(창작과비평사, 1989년 9판) 중에서.

2. 피폐해진 농촌 현실을 세상에 전해준 '농무'
시 '농무(農舞)'는 신경림 시인님의 대표 시로, 첫 시집 「농무(農舞)」의 제목이 된 시입니다.
시 맨 아리에 '1971. 창작과비평'이라는 표기가 있으니, 시인님 35세 즈음에 발표되었네요.
시인님은 등단(1956년) 후 10여 년 동안 절필하고 '방랑생활'을 했습니다.
시인님은 연보의 '1969(30세)' 항목에 스스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침묵 끝에 서울로 돌아와 작품활동 재개.
그동안에는 온갖 일을 다 했던 것 같다.
(농사, 공사판 노동, 광산일, 아이들 가르치기, 친구를 따라 장사를 하며 돌아다니기도 함)
10년 동안 만난 많은 사람들을 위해
그들이 하고 싶은 노래와 하고 싶은 얘기를
대신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됨.
▷「신경림 문학앨범」(신경림 이동순 이재무 지음, 웅진출판, 1993년 2쇄) 중에서.
그러니까 오늘 만나는 시 '농무'는 시인님이 전국을 방랑하며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가운데 하나입니다.
농무(農舞)는 농악무(農樂舞)를 말하는데, 농부들이 여러 농악기를 치면서 추는 춤을 말합니다.
꽹과리를 비롯, 북, 태평소, 징 같은 악기의 장단에 맞춰 벙거지에 매단 털이나 띠를 빙글빙글 돌리며 추는 춤입니다.
이 시 속의 농무, 어떤 심정으로 농부들이 춘 춤일까요?
시의 도입부를 만나 봅니다.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 달린 가설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 /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징~~!'. 첫 구절에서 징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네요.
공연이 끝났음을 알리는 소리입니다.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 허전함과 쓸쓸함만이 뒹굴고 있었겠네요.
그래서 누군가가 그랬겠지요? 야, 우리 한잔 걸치자!
'농무'는 농부들이 추는 춤이니 공연을 한 사람은 농부들이겠습니다.
깊이 모를 허탈감과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 벌어진 술판이네요.
'우리는'
시인님이 그 농부들을 '우리'라고 불렀네요.
시인님은 이들과 함께였겠지요? 소외된 이들과 정서적으로 일체가 된 정황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가난하여 고단한 농부들과 함께 하는 시인님의 낮고 따뜻한 마음도요.
그때 불쑥 화살처럼 가슴으로 날아와 꽂힌 이 6행.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우리'들이 술판을 벌인 것은 공연 뒤풀이만이 아니었네요.
이 시가 발표된 1970년대 초반은 어떤 시대였을까요?
정치적으로는 비민주적인 독재체제가 강화되고 있었고, 산업화 정책의 기치 아래 농촌은 소외되어 허물어져 간다는 걱정이 많던 시기였습니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이 한 줄 속에 피폐해진 농촌 사람들의 울분, 체념과 비애가 응축되어 있는 것만 같습니다.
3.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푸는 '농무'의 몸짓
'꽹과리를 앞장 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 서서 /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그 걱정과 울분, 체념과 비애를 털어내기 위해 '우리는' 다시 '꽹과리를 앞장 세워 장거리로' 나섰네요.
그렇지만 함께 어울릴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장거리'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쪼무래기들'과 철없는 '처녀애들' 뿐입니다.
그 당시 공동화(空洞化)되어 가고 있는 농촌 풍경의 단면입니다.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
그렇게 몰락해 가던 삶터, 농촌의 '보름달' 아래 장거리를 돌면서 '농무'를 추는 농부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꺽정이'(임꺽정)과 '서림이'의 심정이라고 합니다.
임꺽정은 조선시대 백정 출신의 의적입니다. 탐관오리를 죽이고 그 재물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준 인물입니다.
'서림이'는 임꺽정의 모사(謀士)로 관군의 토벌로 상황이 어려워지자 변절하여 임꺽정을 배신한 간교한 인물이고요.
시인님은 이 두 사람을 등장시켜 농무를 추고 있는 농부들의 억울하고 한스러운 심정을 보여주고 있네요.
부조리한 세상을 향한 원망, 그리고 막막한 현실에 대한 절망의 몸짓, 그것이 이들이 추고 있는 '농무'의 춤사위였네요.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쇠전'은 소를 사고파는 소시장입니다. '도수장'은 도축장이고요.
날카로운 칼로 짐승을 잡는, 삶이 죽음으로 바뀌는 그런 극한의 공간을 지나면서 왜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라고 했을까요?
이 두 줄의 시행에서 '우리'의 외마디 울부짖음이 들리는 것만 같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춤을 출 수밖에 없는 걸까요?
'한 다리를 들고 날나리를 불꺼나 /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꺼나'
'~불꺼나' '~흔들꺼나'. 참으로 서러운 종결어미네요. 거기서 체념의 한숨이 흘러나오는 것만 같네요.
'우리는' 이렇게 '한 다리를 들고 날나리(태평소)'를 불고 고갯짓 어깻짓이라도 해야 풀 수 있겠지요?
저마다 가슴에 맺힌 응어리 말입니다.
'우리'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대한 허탈감,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울분 말입니다.
시 '농무' 속의 '우리'는 모두 농촌이 고향인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들이네요.
이렇게 꽹과리를 앞세워 신명 나게 '농무'를 추면서 고단하고 고단했던 한 시절을 훠이훠이 건너온 어머니 아버지들이네요.
그 서러운 춤사위 잊지 않고, 빗방울이네도 낮고 외진 곳을 돌아보며 살고 싶습니다, 시인님!
아픈 시절의 농촌 풍경이 흑백 영상처럼 흐르고, 징과 꽹과리, 태평소 소리가 서럽게 들리는 시 '농무'였습니다.
'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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