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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명소 해저터널 박경리 시 판데목 갯벌 백석 시 통영

by 빗방울이네 2026.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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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명소인 ‘통영 해저터널‘에 가봅니다.
 
1932년에 건설된 동양 최초의 해저터널입니다.
 
이 해저터널에는 어떤 이야기가 스며 있을까요?
 
흥미로운 ’통영 해저터널‘ 이야기를 아래의 순서대로 들려드립니다.
 
- '통영 해저터널'은 '거가대교' 해저터널의 '할배'입니다

- '통영 해저터널'은 왜 만들어졌을까요?

- 소설가 박경리의 '판데목'에 대하여

- 시인 백석의 '판데목'에 대하여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통영 해저터널'은 '거가대교' 해저터널의 '할배'입니다

 
'통영 해저터널'은 섬(미륵도)과 육지(통영반도)를 연결하는 바다 밑 터널입니다.
 
일제강점기인 1931년에 착공돼 1932년 준공되었는데 동양 최초의 해저터널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터널의 길이는 483m, 폭은 5m, 높이는 3.5m 규모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아주 '아기' 해저터널입니다.
 
거제와 가덕도를 연결하는 '거가대교'의 전체 8.2km 중 3.7km가 해저터널이니까요.
 
빗방울이네가 '통영 해저터널'을 아기걸음으로 살랑살랑 걸었는데도 20 여분 만에 다 걸었을 정도입니다.
 
지금은 사람만 다닐 수 있는 곳이어서 산보하기 딱 좋은 곳이었답니다.
 
5월의 봄날 미륵도 쪽 입구에서 걸었는데, '통영 해저터널'로 들어서자마자 터널 속 특유의 공기가 몸과 마음을 시원하게 식혀주었습니다.  
 
터널 중간쯤 들어가니 만조(滿潮) 때 해저 13m라는 표시가 있네요. 거기가 가장 깊은 곳이라는 말입니다.
 
터널의 깊이는 평균 해수면 기준 해저 10m입니다. 
 
'거가대교' 해저터널의 최대 수심이 48m입니다. 이는 세계 최대 수심이기도 하고요.
 
그래도 '통영 해저터널'이 동양 최초(1932년)니까 규모는 작아도 2010년 준공된 '거거대교' 해저터널보다 80살쯤 많은 '할배'가 되겠네요.
 
그 당시 이 '통영 해저터널'을 어떻게 만들었을까요?
 
바다를 막아서(!) 터널을 만들었다고 하네요.

 
터널 안쪽 벽면에 전시된 소개자료에 따르면, 바다 양쪽을 막고 그 밑을 파서 지금 육안으로 보이는 콘크리트 터널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당시 터널 공사의 순서는 이랬습니다.
 
①바다 양쪽 물막이 공사 ②호안 석축 보강공사 ③기초 굴착공사 ④바닥굴착 공사 ⑤기초 콘크리트 타설 공사

⑥거푸집 공사 ⑦철근 배근 공사 ⑧바닥 콘크리트 타설 공사 ⑨구조물 완료 공사 ⑩되메우기 공사
 
그러니까 바다의 물길을 막는 제방을 양쪽에 쌓고 그 사이의 바닥을 파서 터널을 만드는 공사가 이루어졌다는 말입니다.
 
1931년 7월 26일 착공하여 1932년 11월 20일 완공되었으니 1년 4개월 동안 우리 선조님들 고생 많으셨겠네요. 
 
'통영 해저터널' 입구의 이마쯤에 '龍門達陽'이라는 문장이 새겨져 있습니다.
 
용문달양, '수중 세계를 지나 육지에 다다랐다'는 뜻이라고 하고요.
 
'통영 해저터널', 그런데 이렇게 스쳐 지나가기 아쉽네요.

 

이야기를 더 이어가 보렵니다.

 

'통영해저터널'내부의모습.미륵도와통영반도를연결하는터널이다.벽면에공사과정이자세히소개되어있다.
'통영 해저터널' 내부의 모습. 미륵도와 통영반도를 연결하는 바다 밑 터널이다. 터널 벽면에 공사 과정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2. '통영 해저터널'은 왜 만들어졌을까요?

 
통영에는 모두 570개의 섬이 있습니다. 그중 가장 큰 섬이 통영시 남쪽에 있는 미륵도입니다.
 
미륵도는 요즘 인기 있는 '한려수도 조망 케이블카'가 있는 곳입니다.
 
'통영 해저터널'은 이 미륵도와 통영반도를 연결하고요.
 
1932년, 왜 이 터널을 만들었을까요?
 
'통영문화원‘(통영시 서문로 25)에 물어보았습니다. 
 
'통영 해저터널'이 생기기 전, 이 물목은 간조 때에는 바다의 바닥이 드러나 미륵도 사람들이 걸어서 통영에 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얕은 물목이어서 배를 타고 통영에서 사천이나 전라도 방향으로 가려면 미륵도를 우회해서 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지름길인 이 물목을 파 운하를 만들어 배들이 왕래할 수 있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미륵도 사람들이 통영으로 나오기 불편했겠네요.
 
그렇게 주민들의 서로 다른 민원에 따라 조선시대 후기부터 이 물목을 파고 메우기를 반복했다고 하네요.
 
그래서 통영문화원 측은 얕은 해역을 파낸 물목이라는 뜻에서 이곳을 '판데목'이라고 부른다고 했습니다.
 
그런 양측의 불편이 '통영 해저터널'의 건설로 모두 해결되었겠네요.
 
그런데요, 판데목!

이 단어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네요. '판데목'이 등장하는 아름다운 시가 있어요!


3. 소설가 박경리의 '판데목'에 대하여

 
소설 '토지'의 박경리 작가님(1926~2008년) 고향이 통영입니다. 
 
작가님은 소설가로 유명하지만, 좋은 시도 많습니다. 그중 '판데목'을 소재로 한 시가 있습니다.
 
판데목 갯벌
 
- 박경리(1926~2008년, 통영)
 
피리 부는 것 같은 샛바람 소리
들으며
바지락 파다가
저무는 서천 바라보던
판데목 갯벌
아이들 다 돌아가고
빈 도시락 달각거리는
책보 허리에 매고 
뛰던 방천길
세상은 진작부터
외롭고 쓸쓸하였다
 
▷박경리 시집 「슬픔도 기쁨도 왜 이리 찬란한가」(다산북스, 2025년 1쇄) 중에서.
 
시 속의 '판데목 갯벌' 시간은 박경리 작가님 어린 시절이니, '통영 해저터널'이 없던 때의 풍경인 듯합니다.
 
앞서 살펴본 대로, 그때 '판데목'이라 불리던 공간은 갯벌이어서 만조 때 잠기고 간조 때 갯벌로 드러나는 곳이었습니다.
 
'어린 박경리'가 그 갯벌에서 바지락을 캐고 있었네요.
 
지금의 '통영 해저터널'을 지나며 상상해 봅니다.
 
해저터널이 생기기 전 '판데목' 갯벌(그 아래로 나중에 터널이 생김)에서 바지락을 캐던, 열 살도 안 된 '어린 박경리'를요.
 
'어린 박경리'의 마음이 되어 아무도 없이 텅 빈 '판데목 갯벌'에서 석양이 내리는 서쪽 하늘을 바라봅니다.
 
'세상은 진작부터 / 외롭고 쓸쓸하였다'
 
그렇게 판데목 갯벌에서 바지락을 캐던 어린 소녀는 한국 문학사의 거장으로 성장했네요.

 

판데목 갯벌의 '피리 부는 것 같은 샛바람 소리'가 그렇게 키워준 걸까요?

 

'통영 해저터널'이 생긴 것은 박경리 작가님 6세 때쯤이니, 어린 시절 작가님은 신기해하며 해저터널을 뛰어다녔을 것만 같네요. 

 

박경리 작가님은 그렇게 '외롭고 쓸쓸하였다'는 삶의 소풍을 마치고 지금 미륵도 산기슭에서 잠들어 계십니다.

자신을 키워준 추억이 깃든 판데목 갯벌, 해저터널에도 가끔씩 다녀 가시겠지요?


4. 시인 백석의 '판데목'에 대하여

 

백석 시인님은 통영 아가씨(박경련)를 사랑했습니다.

 

앞의 박경리 작가님이 통영 명정골에서 났는데, 흥미롭게도 백석 시인님이 사랑한 이도 명정골 아가씨입니다.

 

백석 시인님은 조선일보 기자를 할 때 그녀를 만나기 위해 서울에서 통영까지 직접 왔었습니다.

 

사랑하는 이를 참으로 사랑하면 사랑하는 이를 둘러싼 모든 것이 사랑스러워지겠지요.

 

그렇게 통영을 사랑한 시인님은 '통영'이라는 제목의 시를 3편이나 발표했습니다.

 

그중에 '판데목'이 등장하는 아래의 시를 음미해 봅니다.

 

통영
 
- 백석(1902~1995, 평북 정주)
 
통영(統營)장 낫대들었다
 
갓 한 닢 쓰고 건시 한 접 사고 홍공단 단기 한 감 끊고 술 한 병 받어들고
 
화륜선 만져보려 선창 갔다
 
오다 가수내 들어가는 주막 앞에
문둥이 품바타령 듣다가
 
열니레 달이 올라서
나룻배 타고 판데목 지나간다 간다
 
(徐丙織氏에게)
 
▷「정본 백석 시집」(백석 지음, 고형진 엮음, 문학동네, 2019년 32쇄) 중에서.

 

이 시 '통영'은 1936년에 발표된 시입니다.

 

시기상으로는 판데목 갯벌 아래로 '통영 해저터널'이 생기고 난 4년 후의 시네요.

해저터널 벽면에 붙어있는 소개 자료를 보니, 해저터널(1931~1932년)이 생기는 즈음 통영 운하(1931년)가 생깁니다.

 

그러니까 해저터널을 만들면서 그 판데목 일대를 깊이 파서 배가 다닐 수 있게 통영 운하를 만들었던 거네요.

 

위 시의 마지막 연을 봅니다.

 

'열니레 달이 올라서 / 나룻배 타고 판데목 지나간다 간다'

 

백석 시인님은 지금 달빛이 교교히 내리는 바다 '통영 운하'를 지나고 있지만, '통영 운하'라고 하지 않고 '판데목'이라고 묘사했네요.

 

시에 따르면, 이때 통영 여행에서 시인님은 통영 특산품인 통영갓을 쓰고 통영장에 들러 맛있는 것도 사고 통영의 여기저기를 구경했습니다.

 

그때 '호기심 왕자' 백석 시인님이 동양 최초라는 '통영 해저터널'을 안 갔을 리가 있을까요?

 

'통영 해저터널' 축조 당시 해저도로 연간 교통량을 사람 90,000명, 우마차 1,000대, 자전거 100대, 자동차 1,000대, 가마 1,000거로 추정했습니다(해저터널 벽면에 있는 소개 자료).

 

시인님이 '통영 해저터널'에 갔을 1936년에는 사람과 자동차, 우마차, 가마, 자전거들이 바쁘게 오가고 있었을 것 같네요.

 

빗방울이네, 지금의 '통영 해저터널'을 걸으며 눈을 감고 사랑하는 백석 시인님을 떠올려 봅니다.

 

서울에서 온 34세의 노총각 백석이 장난스레 통영갓을 쓰고, 그녀를 만날 생각에 설레는 마음으로 '통영 해저터널'을 걸어가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사랑하는 이를 못 만나고 이렇게 떠나고 있네요.

 

'열니레 달이 올라서 / 나룻배 타고 판데목 지나간다 간다'

 

'통영 운하'라는 이름이 아직 낯설었을 현지인이 시인님에게 그곳을 예전부터 부르던 '판데목'이라고 알려 주었겠습니다.

 

그 '판데목' 위를 지나는 시인님의 가슴에 휑하니 구멍이 파였겠습니다. 

 

판데목 갯벌에서 바지락을 캐다 혼자 지는 해를 바라보던 '어린 박경리'도 '외롭고 쓸쓸하였다'라고 했습니다.

 

지금 연인을 만나지 못하고 나룻배를 타고 '판데목'을 지나는 '서울 노총각 백석'이 그리하였겠습니다.

 

그 아래로 '통영 해저터널'이 자리 잡고 있는 '판데목'은 삶의 쓸쓸한 사연을 많이 간직한 곳이었네요.

 

빗방울이네, 자꾸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어쩐지 박경리 작가님과 백석 시인님을 만날 것만 같네요.

 

두 분이 저만치 앞서 해저터널을 걸어가고 있는 것만 같네요.

 

그대도 아름다운 두 편의 시를 가슴에 안고, '통영 해저터널' 한번 걸어보지 않으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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