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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황동규 시 오늘 입은 마음의 상처

by 빗방울이네 2024.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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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규 시인님의 시 '오늘 입은 마음의 상처'를 만납니다. 나의 상처, 그리고 타인의 상처에 대해 묵상하게 하는 시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황동규 시 '오늘 입은 마음의 상처' 읽기

 
오늘 입은 마음의 상처
 
- 황동규(1938년~ , 서울)
 
사람 모여 사는 곳 큰 나무는
모두 상처가 있었다.
흠 없는 혼이 어디 있으랴?
오늘 입은 마음의 상처,
오후내 저녁내 몸속에서 진 흘러나와
찐득찐득 그곳을 덮어도 덮어도
아직 채 감싸지 못하고
쑤시는구나.
가만, 내 아들 나이 또래 후배 시인 랭보와 만나
잠시 말 나눠보자.
흠 없는 혼이 어디 있으랴?
 

- 황동규 시집 「몰운대행」(문학과지성사, 1991년) 중에서
 

2. 일상에서 깨달음을 얻고 거듭나는 극서정시  

 
황동규 시인님의 시 '오늘 입은 마음의 상처'는 1991년 나온 시집 「몰운대행」에 실려 있습니다. 시인님 50대 초반의 시입니다.
 
시인님은 자신의 일상에서 크고 작은 깨달음을 통해 겪은 크고 작은 거듭남을 많은 시들을 통해 보여줍니다. 시인님은 이런 거듭남의 변화가 시 속에서 일어나는 서정시를 스스로 극서정시(劇抒情詩)라고 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 시에는 어떤 거듭남이 있었을까요?
 
사람 모여 사는 곳 큰 나무는 / 모두 상처가 있었다 / 흠 없는 혼이 어디 있으랴?

- 황동규 시 '오늘 입은 마음의 상처' 중에서


첫행의 ‘사람 모여 사는 곳’ ‘큰 나무’에 눈길이 가네요. 맞네요. 사람이 모여 살지 않는 숲 깊은 곳의 큰 나무라면 상처가 없겠네요. 또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이라도 작은 나무라면 상처가 없겠고요. ‘사람 모여 사는 곳’의 ‘큰 나무’여서 상처가 있었네요.
 
'흠 없는 혼'. 상처를 지니고 살아가는 '큰 나무'처럼 '흠 없는 혼'이 어디 있겠는지요. 사람과 사람이,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서로의 욕망이 얽히고 설켜 살아가는 '사람 모여 사는 곳'에서 말입니다.
 
오늘 입은 마음의 상처, / 오후내 저녁내 몸속에서 진 흘러나와 / 찐득찐득 그곳을 덮어도 덮어도
아직 채 감싸지 못하고 / 쑤시는구나

- 황동규 시 '오늘 입은 마음의 상처' 중에서

 
누군가 플래카드를 걸기 위해 살아있는 큰 소나무에 박아둔 못을 본 일이 있습니다. 그 오래된 못이 만든 상처에서 나무의 눈물처럼 진액이 나와 둥치를 타고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아프게 눈물을 흘리면서 나무는 스스로 상처를 감싸 치유하는 중일까요?
 
누구라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못이 박힌 소나무처럼 마음에 박힌 상처로 인해 우리 몸속에서 진액이 흘러나오는 것만 같습니다. 그 상처를 아파하는 되새김질 속에서 '찐득찐득 그곳을 덮어도 덮어도' 몸과 마음이 쑤신다고 하네요.
 
먼 타인보다 가까운 사람, 특히 가족에 의해 마음의 상처를 입는 경우가 많다는 문장이 떠오릅니다. 그만큼 가까이 지지고 볶으면서 사랑의 핑퐁 과정에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게 되는 것입니다.
 
나의 부족이나 실수로 내가 자초해서 입은 상처는 또 얼마나 더 아픈지요? 날마다 몸과 마음을 쑤시고 끙끙거리게 하는 크고 작은 정신적 외상들, 이 끊임없는 반복을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시인님?

"흠없는혼이어디있으랴"-황동규시'오늘입은마음의상처'중에서.
"흠 없는 혼이 어디 있으랴" - 황동규 시 '오늘 입은 마음의 상처' 중에서.

 

 

 

3. 랭보가 아들뻘이라는 생각, 그의 시 구절이 일상의 상처를 치유하다

 
가만, 내 아들 나이 또래 후배 시인 랭보와 만나 / 잠시 말 나눠보자
흠 없는 혼이 어디 있으랴?

- 황동규 시 '오늘 입은 마음의 상처' 중에서

 
'흠 없는 혼이 어디 있으랴?'. 이 구절은 시인님이 언급한 것처럼 장 니콜라 아르튀르 랭보(1854~1891, 프랑스)의 시에서 인용된 것입니다.
 
오 계절이여, 오 성(城)이여 / 결함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 랭보 시집 「지옥에서 보낸 한철」(최완길 옮김, 북피아, 2006년)에 실린 시 '오 계절이여, 오 성(城)이여···' 중에서

 
우리가 아는 랭보는 자유에 대한 끝없는 갈망, 그리고 새로운 변화에 대한 욕구로 반항과 방랑과 일탈로 점철된 삶을 살다 간 프랑스의 천재적인 시인입니다.
 
50대 초반의 황동규 시인님은 37세에 타계한 랭보를 떠올렸네요. 실제로는 랭보(1854년생)가 황동규 시인님(1938년생)보다 84년 더 앞선 세대지만, 랭보가 시를 쓰며 살았던 시기가 10대 후반에서 20세 무렵이니 시인님의 아들뻘 된다는 것을 떠올렸네요. 
 
'결함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라는 아들뻘 되는 랭보의 통찰, 거기에 '오늘 입은 마음의 상처'로 괴로워하고 있는 50대 초반의 자신을 견주어 보게 된 것입니다.
 
그러한 성찰 속에서 '오후내 저녁내 몸속에서 진 흘러나와' 나를 쑤시게 하던 '오늘 입은 마음의 상처'가 가라앉아버린 것입니다. 랭보가 아들뻘이라는 생각, 랭보의 시 한 구절이 시인님의 상처를 치유해 주었네요.
 
'흠 없는 혼이 어디 있으랴?'.
 
우리는 어쩌면 모두 삶이라는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 살고 있는 전사들인 것만 같습니다. 우리는 완벽한 전투병이 아니어서, 욕심 많고 질투적이어서, 사랑받고 싶고 소외되고 싶지 않아서, 무엇보다 나를 보호하고 싶어서 크고 작은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는 전사들인 것만 같습니다.
 
어차피 우리는 타인들과 얽혀 살아야 하는 '사람 모여 사는 곳 큰 나무'의 숙명이니까요. 그러므로 크고 작은 상처를 입은 부상병이 크고 작은 상처를 입은 다른 부상병을 사랑해야겠네요. 흠 있는 혼이 흠 있는 다른 혼을 말입니다.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황동규 시인님의 시를 더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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