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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김종길 시 설날 아침에

by 빗방울이네 2024.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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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길 시인님의 시 '설날 아침에'를 만납니다. 가만히 두 손을 앞으로 모으게 되는 시입니다. 소리내어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김종길 시 '설날 아침에' 읽기

 
설날 아침에
 
- 김종길(1926~2017, 경북 안동)
 
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어름짱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미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던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세상은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 해가 지고
또 올지라도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 김종길 시집 「황사현상(黃沙現象)」(민음사, 1986년) 중에서

 
김종길 시인님(1926~2017, 경북 안동)은 194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습니다. 시집 「성탄제」 「하회에서」 「황사현상」 「달맞이꽃」 「해가 많이 짧아졌다」 「그것들」 등을 발간했습니다. 산문집으로 「산문」 「현대 영역시 산책」, 시론집 「시론」 「한국시의 우상」 「시와 시인들」 등이 있습니다. 고려대 교수, 한국시인협회장 등을 역임했고 목월문학상, 인촌문학상, 대한민국예술원상 등을 받았습니다. 

 


 

2. 어떤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할까요?

 
시 '설날 아침에'는 1969년에 나온 김종길 시인님의 첫시집 「성탄제」에 실렸습니다. 시인님 40대 초반 즈음의 시네요.
 
매양 추위 속에 / 해는 가고 오는 거지만 / 새해는 그런대로 따스하게 맞은 일이다

- 김종길 시 '설날 아침에' 중에서

 
어찌 춥지 않겠는지요? 몸도 마음도 춥지만, 새해니까 그 추운대로, 그 추운 가운데서도 따스함을 찾아보라고 하네요. 새해를 맞는 일, 추운 가운데 따스하게 맞으려는 마음가짐이 소중하다는 말씀이네요. 
 
어름짱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 파릇한 미나리 싹이 /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 김종길 시 '설날 아침에' 중에서

 
'고기'와 '미나리'. 얼음장 아래서도 '고기'는 숨쉰다는 것을, 얼음장 아래서도 '미나리'는 파릇한 싹을 틔우고 있다는 것을 머릿속으로 떠올려봅니다. 곰곰 생각하면, 그 차가움을 얼마나 꾹 참고 있을지요. 
 
'참는 일'과 '꿈꾸는 일'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삶의 가풀막을 참고 올라가는 것, 그 비탈진 고개 너머에 봄/꿈이 있음을 믿는 것, 이 두 가지를 새해 아침에 가슴 깊이 간직해봅니다. 그 두 가지를 품고 천천히, 게으름 피지 않고, 큰 열매를 바라지 않고 새해의 시간 속으로 나아가는 자세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오늘 아침 / 따뜻한 한 잔 술과 /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던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 김종길 시 '설날 아침에' 중에서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 먹는 일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소박한 음식이라도 진심으로 감사히 받아들이는 삶, 맛있는 것을 찾아다니지 않고, 위장의 팔할 정도만 채우는 섭생에 대해 생각합니다.  
 
소유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물건에 대한 무집착의 삶을, 그리하여 단출하고 가벼운 삶을 살아가는 일을 설날 아침에 곰곰 생각해봅니다.
 

"어린것들잇몸에돋아나는고운이빨을보듯"-김종길시'설날아침에'중에서.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 김종길 시 '설날 아침에' 중에서.

 

 

3. 새해엔 '좀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세상은 /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 좀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 김종길 시 '설날 아침에' 중에서

 
이 시의 가장 높은 곳, 우듬지입니다. 새해 한 살 더 먹은 우리에게 시인님이 당부하는 두 가지가 인상적입니다. '착하고 슬기로울 것'. 
 
'착함'에 대해 생각합니다. 언행이나 마음씨를 곱고 바르며 상냥하게 하는 것을 생각합니다. '천도무친 상여선인(天道無親 常與善人)'이라는 도덕경의 문장이 떠오르네요. 하늘은 누구를 편애하지 않지만, 항상 착한 사람(善人)과 함께 한다는 말입니다.  
 
'슬기'에 대해 생각합니다. 사리를 바르게 판단하고 일을 처리하는 것,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씨짓'이 되어 차후 어떤 꽃으로 열매로 맺어질 지 알고 그에 대비할 줄 아는 지혜에 대해 생각합니다.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 한 해가 지고 / 또 올지라도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 고운 이빨을 보듯 /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 김종길 시 '설날 아침에' 중에서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이 구절, 참 아름답네다요. '새해'가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이랍니다. 우리 삶에서 새해가 아이 '이빨'처럼 차례로 돋아나는 것이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만 같네요.
 
바알간 잇몸뿐이던 곳에 새하얀 이가 올라오는 일은 얼마나 기적같은 일인지요. 그 기적 같은 일을 보는 마음은 또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 마음인지요.  
 
지난해 돋은 새해, 지금까지 돋은 새해들은 이미 튼튼히 뿌리를 내려 우리 삶을 받쳐주는 기둥이 되었습니다.

우리 삶을 받쳐줄 또 하나의 새해가 어린것들 이빨 돋듯 돋아났으니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 마음인지요.

그 반갑고 고마운 마음에서 피어나는 표정은 얼마나 환하게 핀 꽃같을지요.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라고 하네요.
 
‘설날 아침에’ 이렇게 멋진 영감을 주신 시인님, 감사합니다!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정호승 시인님의 시 '봄길'을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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